연극 <신의 아그네스>
믿는 자와 믿지 못하는자, 그리고 믿고 싶은 자의 이야기. 수녀원에서 발생한 영아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 <신의 아그네스>는 반전을 거듭하며 인간의 신념과 상처, 종교관을 하나씩 열어간다.
정신과 의사 닥터 리빙스턴과 원장 수녀 미리암, 살인 혐의를 받는 수녀 아그네스의 대화는 빈틈없이 치밀하다. 인터미션없이 이어지는 120분 중에 일분 일초도 버릴 것이 없다.
천주교 신자였다는 극작가 존 필미어는 오랜 시간 신앙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그래서인지 작가의 깊은 고민과 상념이 극 전반에 걸쳐 인물들을 통해 거침없이 드러난다. 범죄심리극에 이런 종교적 주제가 더해진 것이 흥미롭다. 무신론자 리빙스턴과 기적을 바라는 미리엄의 대사는 어쩌면 작가 스스로의 의문을 써내려간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된다.
리빙스턴이 아그네스의 아픔을 껴안는 과정, 원장 수녀의 비밀, 그리고 아그네스가 가진 본질적 두려움이 모아지면서 극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아그네스가 두 팔을 벌리며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외치는 장면은 인간의 본능적 두려움과 종교적 두려움, 상처가 한데 얽혀 심장을 쾅 두드리고 지나간다. 등장인물의 감정 속 밑바닥을 들춰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 3명만 출연하는 연극임에도 토월극장 무대를 꽉 채우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정교한 대사, 배우들의 열연, 적절한 순간에 울려퍼지는 성가와 음악, 여백마저 계산된 듯한 무대가 모두 모여 걸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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