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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제작소 Mar 11. 2021

슬픔의 두께와 넓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링 위의 법칙이 있다. 오른쪽으로 돌기 위해 왼발에 힘을 줘야하고, 손을 뻗기 위해 그만큼 뒤로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나의 균형을 잃지 않고서 상대의 균형을 무너 뜨려야 한다.’ 우리 인생의 법칙과 너무나 닮았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인생은 사각의 링과 같은 것인가.


권투 영화이지만 ‘록키’나 ‘분노의 주먹’과 같은 스펙터클함이나 인간 승리의 가슴 벅참은 없다.


슬픔의 두께는 절제할 때 더욱 더 슬프다. 권투의 법칙과 닮았다. 그런점에서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권투의 법칙에 가장 충실한 영화이며, 그 법칙 속에 인생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한쪽 눈을 잃어버린 퇴역 복서 출신의 스크랩과 컷맨(권투선수의 상처를 응급처치하고 지혈을 담당하는 코너맨) 출신의 권투도장 관장 프랭키에게 권투가 유일한 희망이라는 서른 한 살의 여자 매기가 찾아와 ‘보스’라고 부르며 권투선수로 성장하길 희망한다.


스크랩이 읊조리는 권투의 법칙 속에서 프랭키와 매기의 조율이 시작되고, 어느 권투 영화에서 있는 희망을 향한 한 라운드 한 라운드의 전진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정점에서 감동에 벅차야 할 시점에 뜻하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조금의 희망도 이야기할 수 없는 숨막히는 슬픔이 밀려온다.

메기에게 모쿠슈라(Mo Chuisle)라는 단어가 새겨진 가운을 입힌다. 훗날 그 의미는 '나의 소중한, 나이 혈육'이라고 알려준다.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슬픔을 이야기하되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권투를 이야기하되 성공과 승리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주는 슬픔의 무게는 아프고 두텁다.


슬픔의 두께는 절제할 때 더욱 더 슬프다. 권투의 법칙과 닮았다. 그런점에서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권투의 법칙에 가장 충실한 영화이며, 그 법칙 속에 인생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내가 승리하기 위해 상대를 눕혀야만 하는 권투 경기장에서 ‘자신을 먼저 보호하라’는 트레이너 프랭키의 반복되는 암시가 뼈저리다.


반어적이고 이율배반적인 권투의 법칙처럼 끝끝내 눈물 흘리거나 슬픈 표정을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는 그 우직함에서,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고 불이 들어왔을 때까지 가슴을 뻐근하게 한다.


“서른 한살의 여자가 발레리나를 꿈꾸지 않듯, 권투 선수를 꿈꿔서도 안된다”라고 권투도장을 찾아온 매기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프랭키에게 “예. 제가 좀 주제 파악이 안되기는 하죠.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고, 오빠는 감옥에 있고, 여동생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정부를 속여요. 그럼 나만이라도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하는데, 권투가 너무 좋은걸 어떡해요. 서른 한 살이 늦어서 안된다고 하시면, 나한텐 이제 아무것도 남은게 없어요”라고 응수하는 매기. 영화 결말에서 프랭키가 매기의 꿈을 꺽지 않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시련을 지켜보면서 가장 뼈저리게 후회나는 장면이며, 매기는 가장 아름다운 만남으로 기억하는 장면의 대사이다.


적어도 프랭키의 후회 속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크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권투하면 떠오르는 한 가지. 헝그리 정신!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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