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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제작소 Aug 25. 2021

사라져 가는 추억의 조각들에 대하여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여름의 조각들>

어머니 엘렌의 75세 생일, 각지에 흩어졌던 가족이 파리 근교의 어머니 집에 모인다. 숲속 호숫가 집은 세 남매가 나서 자란 곳이며 추억과 함께 집안 대대로 타고난 예술적 안목으로 모아 온 미술품과 고가구가 있는 곳이다. 


엘렌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처리할 물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고스란히 유지하고 보관해 왔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만 세 남매는 큰 관심이 없다. 집안에 있는 명화와 스케치, 아르누보 양식의 가구들과 꽃병 등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고, 어울려 살았던 터라 세 남매에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공간을 꾸미고 구축해 놓았을 어머니의 자산 속에서 ‘일상이었던 기억'들은 자식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적인 생활공간에서 일상적인 소품으로 자리 잡고 있었을 것들. 세월의 때를 뒤집어 쓴 ‘기억’의 가치는 늘 그 자리에 있어왔기에 별다른 빛을 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품과 유물에 대한 텍스트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주며 큐레이팅이 어떻게 되어야하는가를 드라마로 짚어 주고 있다. 사물의 가치에 텍스트(스토리, 과정)가 더해질 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넓고 깊은 세계로 들어감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어머니의 생일에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들이 정원 식탁에 둘러앉은 모습 속에서 일상의 소품이거나 배경이 되어 예술작품들은 늘 그래왔듯이 자리 잡는다. 그날의 날씨와 공기, 나누었던 대화와 시선들과 함께 어머니의 자산은 사회적인 의미 이전에 가족들의 기억이 서려있는 일상적인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어머니의 부고를 접하고 가족들은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모인다. 여기서 세 남매는 ‘일상적 의미’를 지녔던 것들의 ‘사회적인 의미’를 고민하게 된다. 유품의 금전적 가치에서부터 상속할 시에 지불해야할 막대한 세금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앞에 두고서 자잘한 갈등이 일어난다. 그리고 미술관 기증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지극히 사적인 것들이 공적인 공간에 놓이게 되면서 잃어버리는 것들과 얻게 되는 것들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개인의 추억이 담긴 물품도 사회∙문화적인 가치를 지니면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적절한 조명에 가치있는 위치를 점하고 전시되는 사물(미술품, 유물)을 바라보면서 그 사물이 애초에 놓였을 위치와 환경, 주고 받았던 추억들은 어찌할 것인가. 쓰다듬고 바라보았을, 바람과 공기와 냄새가 함께했던 추억을 만들었던 무형의 것들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미술관이라는 공적인 공간에 자리잡는 유품들. 보존과 전달, 교육의 측면은 성취했지만 그 속에 누락된 한 가족의 추억은 전달되지 않는다. 사적인 시간을 보내왔던 것들이 공적인, 어쩌면 영원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이동해 버린 것이다. 일상의 용도에서 공적인 용도로 가치를 획득한 것들의 변화를 통해 장남은 “그래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사람들도 잘 보고 있지 않느냐”고 위로한다. 


일상을 함께 보냈던 것들의 빛이 사라지고 찬란한 역사의 빛을 획득하는 순간에 대한 은유다. 사라진 빛 속에서 기억들, 비밀들, 이젠 아무도 재미있어 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함께 사라진다.


지금 미술관에서 감상하고 있는 작품이 어떻게 어떤 경로로 이곳에 전시되고 있느냐의 과정에 대한 영화다. 그 과정 속에서 그 작품과 함께 했을 사람들의 추억과 숨결이 어떻게 전달되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것이 더해질 때 작품은 깊이를 더하고 또 다른 아우라를 품는다. 


이 영화를 사라지는 것에 대한, 혹은 추억에 대한 세대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라고 좁혀서 본다면 아까운 영화가 되어 버린다. 유형을 형성한 세월의 무형의 것들에 대한 전달 방식에 대해서 환기하는 독특한 지점을 점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작품과 유물에 대한 텍스트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주며 큐레이팅이 어떻게 되어야하는가를 드라마로 짚어 주고 있다. 사물의 가치에 텍스트(스토리, 과정)가 더해질 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넓고 깊은 세계로 들어감을 알 수 있게 해준다.


2008년 개봉한 이 영화는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20주년 기념작으로 기획되었다. 미술관의 적극적인 협조로 제작된 이 영화에는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그림, 조각, 가구 등 다양한 실제 작품들을 활용하여 촬영이 진행되었다. 영화 속에서 오르세 미술관의 진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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