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빠진 맥주 같은 기분일 땐 '하루의 취향'
모두가 옳은 세상에 어지럽다
며칠동안 조국 사태에 연신 시달리다 김연수의 ‘시절일기’를 들었다놨다 하다 꿉꿉한 글을 끄적이다 “아...유쾌한 책이 필요해!” 라며 어지러운 책장에서 ‘하루의 취향’을 다시 찾아냈다.
책의 진지함과 깊이를 내맘대로 1에서 10으로 놓는다면 김연수의 이번 책은 5정도로 평소에 내가 기대하는 김연수의 농담이 담긴 에세이의 3, 4보다 무거웠다. 안 읽히는 이유가 취향이 안 맞아서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내가 무식해서인가보다 자책하고 밀어두니 여러모로 김빠진 맥주가 된 기분이다. 에잇 그럼 3의 점수를 가진 책이나 읽어보자 싶어 간택된 ‘하루의 취향'. 모든 책에는 기운이 있다. 이 책은 읽고 있음 세상 뭐 있어 이렇게 밝게 살아야지라는 긍정에너지가 샘솟는다. 센스 있는 상큼발랄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당장 진지한 친구는 남편 하나로 족하다. 매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근거를 틈만 나면 이야기해 “나도 검색 능력 있거든” 해도 어쩔 수가 없나보다. 한쪽에선 막무가내로 저열한 언론플레이를 해대며 망신주기에 한마음이 되어 있으니 그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어지럽다. 모두가 옳은 세상이 피곤하다. 누군가와 논쟁을 하는 것은 내 취향에 안 맞는 일이다.
취향은 냄새다
저자 김민철은 카피라이터다. 짧게 치고 빠지는 문장 구사력에 가독성이 훌륭해 앉은자리에서 바로 처음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주파하게 하는 능력자다. 그만큼 곱씹으며 머무르게 하는 문장은 없긴 하지만 그것까지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지 않겠나. 뭐든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하루의 취향’은 오늘 하루 가장 나답게 하는 것이 취향이라는 점에서 뽑아낸 제목이다. “우리에겐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으로 가득 찬 각자의 행성이 필요하다”라는 카피를 내세우고 취향이 단순한 개인의 호불호가 아닌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려주는 지도 같은 거라고 이야기한다.
“단순히 옷을 하나 고르는 것도 취향의 영역이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취향의 영역이다. 옷을 고를 때 내 마음을 의식하는 것처럼, 나머지 모든 일에 있어서도 내 마음의 방향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 방향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리하여 남의 시선을 배제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접어두고 나의 마음을 꼼꼼히 파악하여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이런 저런 그녀의 취향을 한 개씩 이어붙이다 보면 만나지 않아도 구체적으로 김민철이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려진다. 요즘 취향은 냄새 같은 거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그들이 풍기던 부정할 수 없는 냄새. (거기서 냄새는 계층이였지만서도) 생각보다 그 사람에 대한 단서를 많이 풍겨서 아무나에게 함부로 들키고 싶지 않아도 다들 귀신같이 맡고야 말겠지. 감춘다고 감출 수 없는 것이 있으니까. 내 인생의 냄새가 나 자신도 모를 것이 아닌 마음에 드는 것이기 위해선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예민한 후각을 가져야 하겠다.
취향의 공통분모 찾는 재미는 덤
그녀의 취향을 읽다보면 완벽하게 겹쳐지지는 않지만 보통보다 조금 많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향이나 맛이 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인지 나도 고수나 홍어, 엔쵸비에 홀릭한다. 최근 “오늘 뭐 먹지” 책에서 권여선의 입맛과 놀랄만한 싱크로율을 확인했던 참인데 유명한 술꾼인 그녀 역시 그러했다. 그러고보니 서양에서 취향이란 단어로 ‘taste’를 사용하고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입맛에 맞다’가 먹을 때만 쓰이지 않는 것을 보면 동서양이 합심하여 입맛을 취향의 대명사로 여기나보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말도 안 되지만 다른 어떤 취향보다 입맛이 비슷한 사람은 다시 돌아보게 되고 어쩐지 쉬이 친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삼십 이전에는 고통과 격정에 완전히 자신을 맡겨야 한다.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그렇다! 털 뽑힌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안 그럴 경우, 맥없는 고양이일 뿐이다.
-루이제린저 ‘생의 한가운데’
고등학교 때 뭣 모르고 루이제 린저에 빠졌었다. 저자도 한때 좋아했었던지 저 문장을 마음에 새기고 용기를 내어 평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나는 30대 전까지 좌충우돌 모험이랍시고 여기저기 부딪히다 저 문장 같은 마음을 버리고나서야 결혼을 했는데 해석이 이다지도 다르다니 참으로 재밌는 일이다.
그들은 우리가 꾸며놓은 집을 보는 순간, 단숨에 우리의 선언을 이해했다. 그때 알았다. 원하는 대로, 내 취향대로 살아버리는 것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선언이라는 것을, 내 인생을 선언할 권리는 결국 나에게 있다는 것을.
좋은 날이 오면 최대한 늘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이밖에도 책을 읽다보면 그녀가 극찬한 육전을 파는 술집얘기에 당장이라도 망원동에 가 거기에 앉아있고 싶다. ‘술꾼도시처녀들’을 읽으면서도 가보고 싶은 수많은 술집들이 그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버킷리스트로 인생의 어느 한때 망원동에 살면서 그들이 말한 다양한 안주와 술을 섭렵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무튼, 망원동’이란 책도 있던데 그저 궁금한 노릇이다.
그녀처럼 ‘싫어하는 사람한테 내 시간을 쏟는 것은 억울하니 내 시간의 한톨도 쓰지 말자’를 실행하려고 노력한다거나 ‘이미 실패해버린 거, 나를 비난해서 어디에 쓰겠는가? 다음에 안 그러면 되지, 뭐’라며 실패를 미화하는 일의 일인자가 되는 것도 내가 원하는 바다. 결코 오르지 않아도 상관없는 집을 사서 취향대로 꾸미며 나를 선언하는 것도 멋질 거 같다. 일단 내 취향이 무엇인지 한줄한줄 적어보고 싶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