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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달 Sep 18. 2019

욕망의 괴로움을 맛보다

산책이 필요해

     

보슬이는 4살, 사람으로 치면 28살을 먹은 푸들이다. 나름 욕망을 절제할 줄 아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칭찬받지만 괴이한 행동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알 수 없게 하는 복잡한 성격을 가진 녀석이다.

 

나는 누구인가


모두가 집을 나설 때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배웅하고 밥 먹을 때 안아주면 식탁의 음식에 달려들지 않는 품위를 지녔다. 일단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낑낑대다 자리에 앉아서 부들부들 떨며 무엇인가를 줄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부터 펄쩍펄쩍 뛰면서 얼른 달라고 보채는 눈치코치 있는 면모도 지녔다. 공을 던져달라고 쫓아다니며 그 사람 앞에 떨어뜨리지만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금방 포기하고 잊을 줄도 아는 대인배다. 하지만 똥을 싸고 난 후 자신의 몸에서 이런 것이 나오다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미친 듯이 집안 곳곳을 뛰어다녀 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저러는 것인지 똥이 무서운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게 만든다. 단 한 번도 예외가 없는 것을 보면 지 딴엔 어떤 생각이 있긴 있는 것도 같다.

   

나도 개생각이 있다구


언젠가 지인들이 집으로 찾아와 족발을 시켜먹을 때였다. 보슬이는 그날따라 자기도 한번 먹어보자며 옆에서 온갖 종류의 신음소리를 냈다. 애원을 하다 울어대다 팔목을 발로 긁어대다 벼라별짓을 다해 결국 거대한 뼈다귀를 쟁취할 수 있었다. 다행히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게 마루구석에서 열심히 뼈다귀와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녀석은 우리가 잠시 쳐다보기만 해도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흡사 쳐키와 같은 괴물 같은 소리와 표정으로 광포해졌다. 근처에 가려고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사납고 무서운 개의 모습으로 우리를 경계하니 그깟 음식에 주인이고 뭐고 의리도 없는 것이 그래서 개자식이란 말이 나왔구나 싶었다. 음식에 대한 과도한 욕망으로 불안과 광기에 휩싸인 강아지의 모습을 보며 참으로 무엇인가를 가진다는 것은 더 불행한 일이 아닌가 무소유가 이래서 행복한 것인 게야 라며 괜히 인생살이까지 갖다붙여 이야기하며 우스워하였다. 뼈다귀를 품에 안고 모두 다가오지 못하게 하던 욕심꾸러기를 어찌할까 고민하다 산책을 가자고 꾀이니 극도의 갈등을 보이다 이내 산책을 선택한다. 산책이 그렇게 좋았던 것인지 스스로도 욕망이 버거워 벗어나고 싶었던지는 영원한 미스테리다.     


욕망의 괴로움을 톡톡히 맛본 보슬이에게 뼈다귀는 애초에 없었으면 좋았던 것일까. 평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복선은 있었다. 사료를 즐겨 먹지 않음에도 누군가가 먹는 시늉을 하면 극도의 경쟁심에 화를 내며 허겁지겁 그제서야 먹어댄다. 빼앗길 수 있다는 마음이 들어야 그 가치를 느낀다고나 할까. 아마도 뼈다귀도 누군가 그것을 빼앗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어느 순간 내버리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을 거다. 욕망은 관계 속에서 파생되거나 혹은 극대화되는 부분도 있다. 소유가 불행의 씨앗이기는 하나 더 큰 문제는 누군가 빼앗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었던 거다.   

  

사료 때문에 잔뜩 경계한 모습



생각해보면 온몸을 다해 무엇인가를 원했던 적은 없었던 거 같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 한 적도 그리 없지만 나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다. 이런 지키고 유지하려는 마음이 보수성을 가져오고 보슬이처럼 때론 그것이 광포한 형태로 표출되기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불안감은 많아지고 외부에 대한 경계심이 상승된다. 그것이 어쩔 수 없다면 지키려는 ‘욕망’의 숨구멍으로 누구나 산책과 같은 무엇이 있어야 그나마 덜 불행하지 싶다. 나는 그게 무엇일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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