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외로운 날들, 친구가 되어주는 책

산문 리뷰

by 이소

올가을 나는 흔들렸다. 동여매고 있던 마음이 풀려 시가 귀를 간지르고 소설은 나를 유혹했다. 조금 특별한 하지만 별것도 아닐 수 있는 일들에 일상이 하찮게 나뒹굴었다. 하지만 역시나 낙엽이 떨어지듯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잦아든 마음의 출렁임이 오히려 아쉬워 산문들을 잔뜩 가까이 했다. 누군가 다시 흔들기를 바라듯. 산문은 의미들을 직조해 해석을 요구하는 소설(뭐 아닌 것도 많지만)과도, 때론 외국어 같은 시랑도 다르다. 직접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음을 흔든다. 다양한 문신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문장으로 홀리듯 이야기를 하니 뛰쳐나가 누군가를 만날 필요도 없다.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와 느끼던 더 좁은 방에 갇혀버린 갑갑함과 스산함에 자주 기울어지지 않아도 된다. 나는 산문을 잃으며 번지듯 넓어지고 넉넉해진다. 사람들을 만나고 난 후 쉬웠던 입에 어지러운 죄책감과 어리석음으로 머리를 흔들 일도 없다. 그렇게 매력적인 친구들이 건네는 말에 오늘도 나는 위로받는다.


운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시인의 산문은 촉촉하다.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그의 언어는 울음을 품고 있어 보고 있자면 아프다. 일상의 표정을, 스쳐가는 마음을 서걱서걱 주워담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울음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이 친구는 제대로 자주 울어본 자다. 이별이 모두 그에게 얼음처럼 박힌다. 비단 남녀간의 이별만이 아니라 누나, 지인들의 죽음 앞에서도 울음을 참지 않는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자신이 잘못했던 일과 추억으로 여전히 몸살이 날 듯 여리다. 울어본 자는 타인의 울음에도 민감하다.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스스로의 마음을 더 괴롭게 할 때, 속은 내가 속인 나를 용서할 때, 가난이나 모자람 같은 것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되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제야 나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사람을 귀이 여기는 그는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는데 그렇게 관계를 소중히 다룰 줄 아는 사람인 만큼 타인에게 받는 상처도 크다.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며 고독은 스스로를 만나는 것이라며 안아들고 나이먹어 감을 긍정한다.


마음의 폐허에서 나는 다시 새로운 믿음들을 쌓아올릴 것이다. 믿음은 밝고 분명한 것에서가 아니라 어둡고 흐릿한 것에서 탄생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밤이 가고 다시 아침이 온다. 마음속에 새로운 믿음의 자리를 만들어내기에 이만큼 좋은 때가 없다

아직은 30대. 청춘의 그림자가 다 거두어지지 않아 여전히 시름시름 앓는 모습이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다. 무수한 마음에 공평히 나이를 나눠주고 싶다는 그가 이러한 감수성을 놓치 않았음 좋겠다. ‘검은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유서처럼 그 수많은 유언들을 가득 담고 있을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는 밤’을 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걷는 사람 하정우


사람이 그러나 마음만 바라보다가는 병들기 십상이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미세한 마음의 균열을 떨치고 세상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현실과 책의 엇갈림에 현기증을 느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이 남자 하정우는 단단히 땅에 발을 딛고 그런 현기증 같은 것은 개나 줘버려 하는 듯하다. 씩씩한 그의 기운에 절로 나도 만보기를 사들고 걸으며 가벼워지고 싶다.

한때 나는 열정을 잃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나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묘하게도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이 친구는 ‘공황장애’와 ‘자살’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이렇게 살아남고 있다.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한 수단으로 걷기를 택한 것이다. 시인이 방구석에서 외로움을 재료삼아 그 풍경을 그려내고 있을 때 외로움을 이기는 것은 걷기야 라고 소리치고 분연히 떨치고 걸어나가는 행동주의자의 모습에 문득 세상 모든 고민은 불필요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루틴의 힘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잠식하거나 의지력이 약해질 때 우선 행동하게 하는 데 있다. 내 삶에 결정적인 문제가 닥친 때일수록 생각의 덩치를 키우지 말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살다보면 그냥 놔둬야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어쩌면 인생에는 내가 굳이 휘젓지 말고 가만 두고 봐야 할 문제가 80퍼센트 이상인지도 모른다. 조바심이 나더라도 참아야 한다.

비겁하게 문제를 내팽개치라는 것이 아니라 한발자국 떨어져있기를 권유하는 것은 이미 나 역시 그러자고 스스로도 생각했었던 것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더 깊이 들어온다. 특히나 루틴의 힘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일단 도전을 시작했을 때 어려움에서 도망가려는 마음을 직시하고 계속 나아가라고 하는 부분에 이르러 찔리면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시간을 쌓아가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지나온 여정과 시간에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지만 결코 나 자산의 상태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는다. 어쩌면 확신은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오만과 교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머뭇거리지 말고 걸어가라고 말하는 그의 자신감은 노력한 시간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그런 시간이 참으로 부족한 내게 교훈적인 말임이 분명하기에 나는 박준에 의해 몰랑몰랑해졌던 새벽의 어스름과 같던 시간을 통과해 일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는 리뷰지에서 데뷔했을 때부터 지켜보던 작가다. 처음부터 신선함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것은 단지 문학계에서였고 지금처럼 세상천지 다 아는 연예인급이 될 줄은 몰랐다. 그가 가진 잡학다식함이 아마도 이 시대와 잘 맞았으리라. 호기심을 담은 다소 변태스럽던 눈빛이 50대에 이르러서 안정된 것을 보면 시간을 제대로 잘 쌓아올렸구나 하며 같이 늙어가는 마당에 부럽다. 이 친구는 여행을 유독 많이 하기에 이런 책은 언제고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 역시 여행을 좋아하지만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미지근한 답만 그때그때 내놓을 터인데 이 책은 신화와 경험을 토대로 제대로 분석하고 있다.

인물의 내면 부분에서 내가 제일 고민하게 되는 항목은 ‘프로그램’이다. 노아 루크먼은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은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니는 신념보다 자기도 모르는 믿음에 더 좌우된다


작가는 어린 시절 이사가 잦았다. 이런 유년기에 의해 그에게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비로소 받아들여졌을 때 느껴지는 것으로 프로그램되었다고 한다. 미세한 언어의 감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 머물며 모국어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편안해지려 한다. 일부러 영감을 위해서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겪었던 경험들이 언어가 되어 생각으로 탄생하기에 여행은 이후의 작업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나에게는 그렇게 공감할 수 없는 작가 김영하가 말하는 여행의 이유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는데 여행은 유용하다. 여행 중에 우리는 그 순간에 닥치는 자극과 문제를 받아들고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분주하기에 그 공간에서의 나는 이전의 모습으로 서있을 수 없다. 그것은 노바디로 개별적인 인간이라기보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에 의해 분류되는 존재로 느끼는 감정과도 연계된다. 우리의 정체성은 견고하여 이곳에서 는 벗어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래, 그렇다면 떠날 수밖에. 잠시의 착각이라고 할지라도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나이가 들면서 점점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

작가의 말처럼 여행은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으로 낯선 세계에 들어가 이러저러한 내면의 변화를 겪고 안전하게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와 살아가며 문득문득 깨닫는 것이다.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은 여행을 좋아하듯 다른 세계를 엿보고 궁금해 하는 사람으로 어쩌면 둘다 좋아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나도 50을 넘으면 내 행동양식에 대한 이런 분석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질투 나는 친구다.


연필로 쓰기


이 시대 진정한 어른을 만나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스럽게 지혜로워지지 않는다. 김훈은 보수의 의미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는 것이라 정의내린다면 본인은 그러하다며 꼰대라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뚝뚝하지만 진솔하게 이야기해준다. 그가 역사와 사회인식을 토대로 묵직하게 내려놓는 이야기들을 묵묵히 듣고 있으면 절로 겸손해진다. 감히 그분이 겪은 지난 시간을 꼰대의 과거사라고 무시하기에는 무겁고 여전히 현재다. 우리는 ‘보퉁이 같은 현재’만 끌어안고 있단 사실을 깨닫고 더욱 그의 말을 곱씹어야 할진데 사실 만만치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저 조용히 꾸준히 욕심내지 않고 그분의 책을 가까이 하리다.


너무 늦기는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날이 저물어서 빛이 물러서고 시간의 밀도가 엷어지는 저녁 무렵의 자유는 서늘하다. 이 시간들은 내가 사는 동네, 일산 한강 하구의 썰물과도 같다. 이 흐린 시야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연히 드러난다.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늘어놓고 나니 다 남성 작가들의 산문이다. 여성친구들이 주변에 즐비하니 남성의 언어가 그리웠던건가. 무엇보다 다양한 세대의 생각들을 들으며 나는 이 밤 외롭지 않다.


운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 박준

걷는 남자 하정우 / 하정우

여행의 이유/ 김영하

연필로 쓰기/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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