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이 소설을 읽고 권여선의 전작 ‘이모’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마리아와 이모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의해 아무렇게나 대해졌다. 마리아는 있는 집안에 태어났어도 ‘여자’라는 이유로 지워진 존재로 살아야 했고 그녀가 선택해서 간 파독 간호사의 삶 역시 가혹하기만 하여 남편의 급사와 함께 아이를 입양시킨 후 귀국해야 했다. 돌아온 이곳에서도 ‘미천한’ 존재로 대우받던 그녀는 정신병을 앓는 아들을 입양해서 품고 그의 딸까지 키우며 품을 팔아 산다. 암에 걸려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은밀한 기쁨은 누구도 사지 않는 태극기를 팔러 다니는 것이었다. ‘이모’는 어떠한가. 그녀는 아들의 귀함에 집착하는 봉건적인 집안의 어머니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하고 결국 뛰쳐나와 본인의 삶을 살아가려 하지만 그 역시 ‘췌장암’이란 암초를 만나 좌절된다. 2년에 불과이지만 그녀는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을 살게 한 ‘고약한’ 힘에 보란 듯이 반항한다. 그녀들에게 태어나자마자 소속되었던 가족은 끊어내버릴 지긋지긋한 탯줄이고 이제 부재함으로 그녀들을 그녀답게 한다.
두 주인공을 바라보는 ‘베르타’와 ‘나’는 이에 반해 인생의 친절한 낯을 보고 살아온 인물이다.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와 부침 없는 인생을 살아온 그녀들 역시 ‘여자’라서 겪는 일들을 소소하게 경험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남편 가족들의 번잡스러움에 시달리거나 ‘약사’라는 직업을 쉽게 버리고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일이 당연하게 그려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아가고 있다. 깨어나 분연히 페미니즘을 부르짖지 않아도 우리를 안내하는 일상들은 촘촘히 여자라는 이름으로 조금은 불공평하게 흘러가고 있기에 불편함을 막연히 느끼는 정도다. 여자로 강도 높은 차별을 받은 주인공들의 삶이 그로 인해 일그러졌으나 그들을 바라보는 시점의 그녀들을 인식을 바꿀 정도는 아니다. 각자가 대하는 타인에 대한 거리만큼 슬퍼하고 이내 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리아에게 있어 ‘태극기’는 어떤 의미일까. 한번도 존중받지 못하던 가족에게서 벗어나 처음으로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대우받았던 기억은 강렬하여 그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긴 최초의 사건의 중심에 ‘태극기’는 놓여진다.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작가가 말한 ‘명랑함’의 자리에 있을 태극기에 대한 집착은 그리하여 당연하다. 이모가 글쟁이로서의 삶을 끝까지 바라보는 것과 같이.
하지만 마리아는 이모와 달리 자신에게 그렇게 매섭게 대한 세상에 인상을 구기지 않는다. 그녀의 고귀함은 ‘각자의 계절을 나려면 각자의 힘이 들지요’라고 하며 포기하지 않는 긍정과 에너지에서 나온다. 먹을 사람을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 줄 아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천국에 가지 못할 거라는 겸손함을 견지하는 이 바보스러운 선함이 안쓰럽지만 하늘 높에 아름답게 휘날릴 고귀함은 이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말할 수밖에. 이렇게 자신의 손에 담배를 지져대던 이모의 분노와는 다르게 마리아는 숨막히는 선함으로 세상에 반항하고 있다.
‘인색함을 버리고 제법 철이 들어 너그러워졌다’고 여기는 베르타에게서 나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뒤에서 남의 말을 쉽게 해버리는 사람들과는 나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본인만을 위한 고상함을 획득하려 버둥대지만 다른 것이라곤 ‘고귀하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의식이 있다는 것뿐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과 그것을 내면화하여 내 삶에 끼어넣는 것은 다르기에 부끄럽게도 내내 고귀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게 하는 거울 같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