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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지만 그냥 너의 취향인 걸로

유열의 음악캠프

by 이소

제정신이라면 스타벅스 벤티 사이즈 아메리카노를 밤 10시에 들이키고 나서 잠잘 생각을 하지는 않지. 심지어 vod에서 뒤적뒤적 쓸만한 무료 영화를 건져내볼까 하는 생각이 설마 가능할 거라 믿진 않았겠지.


이 영화에 무려 2000원 상당의 돈을 투자해서 새벽을 바칠 결심을 하게 된 건 오로지 너가 재밌다고 해서였어. 온갖 악플과 영화만듦새에 대한 손가락질을 꺽어버릴 만큼 너의 영화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이 남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는 못생긴 영화도 미덕이 있다는 주의거든. 게다가 추억에 절절매는 너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과거집착녀이기도 하니까.


옛날에 불행이 불행을 자석처럼 더 마구 끌어오는 사람을 알았더랬지. 발딛은 터전이 험해서였기도 했지만 온몸에 흐르던 불길하고 음습한 기운이 좋은것들을 지치게 만드는 아이였어. 근데 주인공 현우는 끝내주게 잘생기다 못해 참 밝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라니. 모든 불행을 극복시킬 기적같은 일이라고 해야하는걸까. 미수는 또 어떠하니. 둘이 이루어질 수 있게 반대로 걸리적 거릴 가족 한명 없는 혈혈단신 여인이였던 게야. 둘이 이루어질 수있는 두가지 조건은 그것이 아니였을까라고 말하는 내가 너무 매서운 현실주의자인걸까.


거듭되는 지겨운 우연의 연속들을 비난할 필요도 굳이 없을 만큼 이야기들은 빽빽히 억지스럽다만 그 와중에 추억속 노래들은 덥석 안아주고 싶게 반갑더라. 그래 잊혀질뻔한 지난 사랑을 현실에서 이루어주고 음악을 즐기는 것으로 이 영화의 소임은 사실 끝난걸거야.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은 없고 다치도록 뛰어가면 잡을 수 있다니. 판타지는 분명 마음에 위로가 되긴 해. 그게 난 재미있었나봐.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 란 단어가 콕콕 찌르는 아쉬운 기억들이 두더지처럼 불쑥불쑥 올라오는 시간을 제공해주고 그것을 때릴수 있게 해주니.


그래도 난 너처럼 이메일 비번을 안알려줘서 만나지 못하는 상황 같은 엇갈림에 마음이 내려앉아 이 영화의 못남을 덮어줄만큼 재밌지는 않았어. 남친의 과거를 알고 고민하는 이수의 고뇌의 깊이가 너무 얇은데다 현우는 지나치게 해맑고 친구들은 비현실적으로 나쁜 게 걸린다. 둘이 좋아하는 과정도 넘 현우의 잘생김에서만 시작된 기분이구. 유열이 시작한 음악캠프를 들으면서 기적이라고 말한다는것도. 좀 어색한건 내가 쓸데없이 트집쟁이여서일지도. 근데 자꾸 말도 안되게 헤어지고 만나는 건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을 일이지 않냐.


어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중요한 현우처럼 너도 그런것일텐데. 그것이 너의 취향의 생김새겠지. 그건 나쁜 것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사실이고 오히려 긍정적인 구석도 있는 거 같아 맘에 들어.


솔직히 나 역시 밀어내려해도 자꾸 루시드폴의 '보이나요'가 들리는것을 보면 그 설레임이 아직도 죽지않고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긴 한가봐.


벤티. 덕분에 새로운 매거진이 시작되었고 너 때문에 그 첫주자는 이 어중간한 영화가 되었지만 큰뜻을 품고 시작되는 것보다 가벼워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