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갑자기 피쉬앤 칩스가 먹고싶다고 한다. 거의 무언가 지정해서 먹고싶어한 적이 없는 아이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고 하여 검색을 해보니 술집메뉴로만 보이고 끼니로 사다먹는 경우가 없나보다. 하긴 외국이나 밥으로 먹지 느글느글한 감자랑 생선튀김만을 주식으로 먹는건 우리나라 정서가 아니다. 얼마전부터 주말마다 요리를 하기 시작한 아빠에게 얘기해보라고 아이를 꼬드긴다. 할일없이 누워있던 남편은 아들의 주문에 당장 마트로 장을 보러간다. 뒤통수가 어쩐지 생기있어 보인다. 장을 보며 계속 전화를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까먹고 가장 중요한 대구살을 안살뻔했단다. 에구 저런 정신머리라니 하지만 나도 딱 그래가고 있다.
요리를 시작하면 주방은 점점 폭파직전으로 치닫는다. 치우면서 하는 법을 알기엔 공력이 짧다. 동시에 두가지 음식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미션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레시피 그대로 1도 변형하지 않고 착하고 성실하게 요리를 한다. 심지어 칼질 잘하는 법을 유트브로 보고 신경써서 따라하는 것을 보면 나하고 달라도 정말 다른 사람이구나 한다. 예전에 같이 요리를 하나 만드는데 남편은 레시피 그대로 하기를 주장하고 나는 어느정도 순간순간 생략과 변형을 하며 타협하길 종용했다. 그 요리는 결국 맛이 없었다.
" 역시 레시피대로 하면 맛이 없어"
"역시 레시피 그대로 했어야 했어"
우리 둘은 똑같은 상황에 이다지도 다른 결론을 얻었다.
그뒤로 웬만하면 우린 공조해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 남편이 요리를 한다고 할정도로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한달 남짓이긴 하다만 예전의 그런 기억을 교훈삼아 서로의 특징을 존중하고 터치하지 않는 것이 평화로우리란 것을 서로 말하지 않고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요리를 시작하게 된것은 주말에만 일을 집중해서 하는 나의 스케줄의 영향이 크다. 그것도 내심 이런 결과를 위해 준비된 부분도 이제와 생각해보면 없지 않다. 작년에 휘몰아친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며 나는 여성으로서 피해자의 얼굴만 하고있는거에 반발했다. 한편으론 뿌리깊게 옛스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것인가 스스로를 의심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남편에 대한 불만이 스며들었던 성싶다.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고 탁구만 치러다니는것을 왜 당연시했나부터 자기는 바쁘고 힘들다며 힘겨운 육아초보맘의 우울증을 무시했던것이 어디인가 앙금으로 남아있었다. 툴리의 남편처럼 게임만 보던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화가 치민다. 하지만 나는 주부를 선택했다면 의당 집안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쪽이다. 사회생활의 고달픔을 알기에 이길을 스스로 택한 것이고 역할분담의 차원에서 우리가 해야할 몫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맞벌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똑같은 조건하에서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당했다면 아마 투사로 변했을지도. 어쨋든 나는 대단히 훌륭한 주부가 되려는 생각이 없고 불량주부에 가까운 것이 부끄럽던 시절에서 좀 당당해졌기에 그리 주부생활이 어렵진 않았다. 그래도 어느정도 맞벌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때 집에서 집안일은 나몰라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궁금했다. 꿈틀대며 일을 해 남편을 부엌으로 인도하고 싶었다. 다행히 강에는 강으로 대처하는 남편이지만 스스로 변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는사람이라 이제 주말부엌은 자연스레 남편의 자리가 되었다. 아마도 내가 강한어조로 따지고들었다면 얼굴만 붉히고 절대 지금 부엌에 서있지 않았을 거다.
남편과 나는 살수록 참 다른 사람이란 것을 깨닫는다. 뭐든 한번 하면 제대로 해야하고 고지식한 남편과 달리 뭐든 대충대충 하고 자유로운 나는 아슬아슬할 때도 많고 아직도 서로 눈치를 보며 겨우 평화를 유지한다. 서로 닮은 것은 눈치볼줄 안다는것과 강요하면 더 엇나간다는것. 부부중 누구 한사람이 너무 행복하다면 한사람이 지나치게 참고 있다는 증거라 했다. 우리는 둘다 참고 있으니 일단 결혼의 파국은 오지 않을 듯 하다.
"이제 나중에 내가 놔두고 여행가도 혼자 잘해먹겠네"라며
피쉬앤칩스를 ( 느끼해서 나는 그닥이지만 ) 칭찬하며 요리하는 남편의 성장을 기대한다. 나보다 설겆이도 빤짝빤짝 잘하고 음식도 다양한 시도를 잘하는데, 그 재능 썩힐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