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하는 건축』
벌써 올해 마지막 독서모임이 왔다. 맨 처음 독서모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다들 좋아하는 책이 너무 다르면 어떻게 하지...', '독서모임을 운영하는데 막상 다들 너무 의욕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모두 재미없다고 떠나면 어떻게 하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지만 이제는 순수히 즐거운 마음으로 와주시는 것 같아 나도 즐겁게 독서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이번 독서모임은 평소보다 한 주 늦어졌다. 보통 첫 주 토요일을 모임 날짜로 잡는데 독서모임에 참가하려고 하셨던 회원님들이 감기나 몸 상태의 문제 때문에 참가하시지 못하고 다들 요양에 들어간 것이다. 날이 너무 추워졌다 보니 갑작스레 감기에 걸리신 것도 이해가 간다. 나도 당장 지난달 중순쯤에 감기가 너무 심하게 들어서 한 주는 콜록콜록, 한 주는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상태로 보냈으니. 그래서 당시 검도를 일주일 정도 나가지 못했는데 복귀한 날 관장님께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이네? 연말이니까 송년회 참가한다고 매일 술 마시러 다녀서 못 오는 걸로 알고 있었어~"
제가 어디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매일 송년회에 참가할 일이 어디 있고 매일 술 마시러 다닐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아파서 몇 주째 못 나왔죠. 무엇보다 나는 아직도 관장님이 왜 내가 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계신지 모르겠다. 물론 운동하는 날에 술 약속이 자주 잡혀서 점심에 혼자 개인 운동을 뛰고 저녁에 마시러 가기는 했는데!
아무튼 이번 독서모임에서 다룬 책은 『연결하는 건축』이었다. 이제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모두와 함께 읽고 싶은 개인의 취향이 담긴 책을 선정하자고 이야기가 나온 지 조금 시간이 되었고, 그 이야기에 맞춰 내가 선택한 세 번째 책이 이 책이다. 건축, 거리와 관련된 서평을 쓸 때마다 이야기하지만 나는 건축 문화와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건축학과만큼 역사를 꿰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이야기에 담긴 개인의 사상과 철학, 직업윤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고른 책이 안그라픽스 출판사에서 나온 구마 겐고의 여러 책 중 한 권이었다. 대담집이라 다들 조금 어렵지 않게 읽으려나, 책을 고르고 집에서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했었는데 다들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사당까지는 꽤 거리가 되어서 출근하는 가족들보다 더 빨리 일어났고 아침 버스에 몸을 던졌다.
"제가 어떻게 독서모임 시작을 열었죠?"
사실 어떻게 시작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다들 잘 지내셨나요? 오늘 책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마치 독서모임의 포문을 열듯 툭 던지는 상투적인 인사말이다. 단지 오늘 이런 인사로 시작을 열지 않은 이유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상기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연말이기도 하고 올해의 마지막 독서모임이어서 그런지 모두 마주하는 자리가 즐겁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모였고, 나도 책 이야기는 뒤로 미뤄둔 채 한참을 떠들다 시작하려니 상투적인 인사말을 꺼내기가 싫어 장난스레 던진 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참여하신 분들 모두 각기 다른 경력을 가지고 있고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기에 이번 모임은 대담집에 담긴 이야기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정치인과의 대담을 시작으로 건축의 역사, 형태, 지역의 발전, 관광, 문화, 그리고 재난과 치유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렇기에 각자가 가진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먼저 던진 이야기는 지역의 발전이었다. 기획도시와 신도시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다. 독서모임이 열리기 직전 부산에 성묘를 다녀왔다. 조부님과 조모님의 산소가 부산에 있기 때문이었다. 한 분은 정읍에, 한 분은 금정에. 정읍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신도시가 조성되어 있다. 지역을 크게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눠서 한 구간에는 아파트를 배치, 한 구간에는 거대한 공장 지구를 배치, 한 구간에는 생활공간을 배치하면서 마치 게임에서 공간을 나누고 건물을 배치하는 것처럼 배치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물론 도시의 특색을 살린 건축과 지역 조성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게 과연 서구화된 현대식 도시에 비해 좋은 방안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지만 천편일률적인 도시 조성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내 주된 이야기였다.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꾸준히 서평에서 다루고는 했다. 블록 단위로 나눠진 신도시의 형태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런 형식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이야기에 대해 다른 회원님은 새로운 대답을 보여주셨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대답을 말이다. 일본은 개항 이후 메이지 유신 시기를 통해 근대화를 이뤘다. 이후 여러 차례 지진과 해일, 다양한 재난으로 문제를 겪었고 건물이 무너지고 다시 건설되었지만 그런 기간도 벌써 150년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한국은 제로에서 시작해 현대까지 이제 겨우 70년 수준이다. 서구화된 신도시의 형성도, 도시의 특색을 살리는 기획 도시도 아시아의 형태에 온전히 맞는 것인지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고 지금은 그 과도기가 아닐까? 라는 대답.
나는 이 답변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나 또한 서구적인 시선에서 해외의 다양한 문화들을 보면서 이런 문화와 형태가 국내에 도입되었으면, 이라는 생각을 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대한 대답은 한참 예전, 어떤 교육에서 답변을 받았었다.
'동네 서점의 문화를 만드는 것은 서점과 국가가 아니라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문화는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맞게 조성해 나가는 거예요.'
예전에 『유럽 책방 문화 탐구』의 저자이자 출판평론가 분의 강연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던가. 지역구를 구상하는 건축은 막대한 자본금과 국가적 지원이 기틀이 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기에 다른 말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런 지역구급 구상의 기반에는 인근 시민들의 생활 패턴과 생활 반경, 그리고 국민들의 행동 방식을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아예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도의 가속화, 빠른 철도 중심의 개발도 이런 것들에 대한 고려가 있었을 것이고(사실 지방과 도시의 업무 연결과 물자 수송, 발전이라는 측면이 더 크고 우선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예 이런 요소의 개입이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시작으로 후에 나온 이야기들도 꽤 재미있게 흘렀다. 일본 아파트의 형성과 거기에서 발전해온 정치, 한국의 아파트 문화와는 전혀 다른 주민들의 화합과 공산주의적 사상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 정치와 다도 문화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 특히 내가 『흑뢰성』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자주 이야기를 했다 보니 위 책을 읽어보고 그들의 다도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분이 계셔서 다도실에 대한 이야기도 꽤 재미있게 흘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뤄진 이야기는 화합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외된 이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단체 공간, 혹은 같은 입장의 사람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단체 공간에 대한 이야기. 책의 마지막에서 단체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왔는데 24년을 살고 있는 회원님들도 단체 공간과 그 안에서 생겨나는 커뮤니티의 가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신 느낌이었다. 구마 겐고가 말했던 단체 공간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면 회원님들은 이제 마음의 상처를 입은, 혹은 사회적 시선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곤란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차이일까.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모임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후에는 송년회 느낌을 내면서 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다음 모임에서는 어떤 책을 다루면 좋을까, 누가 책 추천해주실 분? 하고 서로 책을 추천하는 그림도 있었고. 다음 모임에서 다뤄질 책은 『휘말린 날들』이다. 평소 의료, 질병과 사람에 관심을 많이 가지셨던 회원님이 선택해주신 책인데 내가 의료와 관련된 책들을 올해 중순에 이 분 따라서 잠깐 읽었던 걸 생각하면 이번에도 재미있는 책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후에는 각자 일정이 있어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어떤 분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날이다보니- 집회 현장으로 나가셨고, 어떤 분은 공연장으로, 어떤 분은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각자 발길을 급히 옮겼다. 그리고 나는, 근처에 있는 서울 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건축의 장면이라는 기획 전시전에 방문했다. 이에 대해서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데 아마 이번 선정 도서의 서평에서, 혹은 따로 글을 하나 더 써서 다루지 않을까 싶다.
다들 올해가 끝나도록 열심히 달리셨는데 내년에도 함께 책 많이 읽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