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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독서모임 후기

『휘말린 날들』

by 카레맛곰돌이

독서모임 후기를 미루고 미루다 이제 적는다. 사실 미루지는 않았다. 하루 건너 하루 꼴로 사람을 만나러 다니고 약속이 없는 날이면 몸이 아파 누워있다 보니 적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 지금도 감기 때문에 고생 중이다. 지난번에 감기로 심하게 고생해 이번 겨울에는 감기로 고생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또 감기에 걸리다니. 감기 걸린 친구를 차에 태우고 다니는 게 아니었는데.


독서모임에서 다룬 책은 『휘말린 날들』이다. 평소 병, 의료, 소수자들의 이슈에 대해 관심이 많은 회원님이 선택하신 책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분의 취향에 맞을 거 같은 도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도서라 근래에 있었던 이슈에 대한 이야기도 다뤄지고 있었고.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다.


이제는 1월, 신년이기에 마음이 따뜻한 것과는 별개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사람은 언제까지 코트를 입으며 겨울을 지낼 수 있을까. 이번 독서모임에도 코트를 입고 나갔고 아침부터 날이 추워 조금 고생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눈이 이렇게 오는데 다들 오실 수 있을까. 5일 아침, 세상은 이미 하얀 벌판이 되었고 도로 위의 차들은 앞으로 가기 위해, 저마다 위험천만하게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눈이 그치면 좋을 텐데. 걱정과 함께 버스에 몸을 던졌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신년인 만큼 인사도 색다르게, 서로 신년을 잘 맞이하고 있는지 안부부터 나누며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모두 여러모로 번잡스럽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신년만큼은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사실 나는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니려고 했던 디자인 수업이 뒤로 밀리고 밀리면서 수업을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라도 들으면 취업이 될까. 다른 이들처럼 나도 취업 때문에 정신이 없다.


『휘말린 날들』은 HIV의 역사, 그리고 질병과 싸워온 세계, 한국의 역사와 현재에 더 나아가 미래 담론까지 다뤄보는 책이다. 나는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 사실 HIV와 AIDS가 다른 것인지도 몰랐다고 자백하며 말을 시작했다. 사실 적지 않은 이들이 HIV와 AIDS를 구별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HIV/AIDS라고 적고 이를 에이즈라고 간단하게 부르기 때문이다. 사실 HIV는 AIDS를 발생시키는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인데 말이다.


다들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이 책의 장점은 병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디테일하게 다뤄준다는 점이었다. 특히 70~80년대 해외에서 HIV가 처음으로 언론에서 다뤄지기 시작한 이야기와 과거 주한미군 주거지 중심으로 발전했던 성매매 문화, 88 올림픽 전후를 기점으로 깨끗한 성이라는 대의명분 아래에 자행되었던 환자 동선 조사와 같은 이야기들까지(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코로나 바이러스 때와 비슷해 놀라기도 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들이 겪은 고초에 비하면 약과인 수준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가 많았다는 점에 대해서 모두 놀라고는 했다.


그리고 최초의 HIV에 대한 이야기도 꽤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흔히 떠도는 이야기를 봤다면 알고 있겠지만 최초의 HIV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침팬지를 사냥하던 도중 생긴 상처에 감염되어 생긴 병, 혹은 성적 접촉을 함으로 생긴 병이라는 설이 있었다. 이 설에 대해 저자는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문명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지역에서 수렵이라는 현대적이지 못한-직설적으로는 미개한- 행동을 하다 생긴 병, 이런 서구의 시선이 가득한 지역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담긴 해석이라는 의견을 내렸다. 내가 이 분야에 정확한 정보가 없기에 맞다, 틀리다 말할 수는 없지만 재미있는 해석 방식이라는 생각은 들었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회원님들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나와 다른 의견이 나온 부분은 재작년 이슈가 된 HIV 감염인의 전파매개행위 금지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이었다. 과연 합헌 처리된 이 법안이 사회적으로 옳은 것인가. 나는 합헌 처리가 어느 정도는 맞다고 생각했다. HIV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국민들이 아직도 많은 상황에 법이 먼저 개정된다면 아무래도 이에 대한 반발도 심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여기에 적은 것처럼 아직도 많은 이들이 HIV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 채로 무분별한 혐오, 혹은 두려움에 빠져 살고 있다. 약만 먹으면서 관리하면 타인에게 감염시키지 않을 만큼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고 멀쩡히 사회 활동이 가능한데 사회에 불만을 품은 슈퍼 전파자가 타인에게 바늘과 같은 것으로 감염시키면 어떻게 하냐는 논지들. 이런 사회 인식을 개선하기 전에는 법 개정이 어렵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다른 회원님들이 하신 이야기도 맞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소수자들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인내해야 하는가. 국내 발언권이 강한 기독교 단체는 매년 관리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HIV 감염자들을 사회 활동이 불가능한 구제불가의 인구로 폄하하고 다양한 활동으로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는데(실제 공익 광고로도 많이 다뤄지고 있다고 한다. 단지 TV를 시청하는 인구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공익 광고를 접할 일도 줄어들고 있을 뿐...) 기약 없는 더 많은 이들이, 사회 인식이, 이런 말보다는 법의 변화도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나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수자들을 위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올바른 방향일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법보다 인식을 바꾸는 게 먼저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고 그들에게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했겠지만 기다림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법을 먼저 바꿔서 사회 인식과 부딪히면서 개선해 나가야 하는 걸까. 나는 아직도 확신을 내리지 못했고, 아마 다음에 이런 질문을 받게 되더라도 똑같이 고민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표현에 대한 이야기들과 책에 나온 사례인 요양병원에 대한 이야기들. 특히 요양병원의 경우 내가 최근 검도관에서 회식을 할 때 부모님을 모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런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더 신경 써서 읽게 되었고 독서모임 자리에서도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요양병원에 부모님을 모시는 걸 많은 이들이 꺼려하는데 요양병원에 들어가고 싶어도 거부당하는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도 생생해 이들이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독서모임이 끝나고 지금도 신년회 같은 분위기였지만 다음에 신년회를 따로 열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원래 예정대로라면 오늘 신년회 삼아 가볍게 모여 이야기를 나눠야 했는데, 다들 컨디션이 좋지 못해 무산되었다. 당장 나도 감기 때문에 계속 약을 먹으면서 쉬고 있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조금 늦더라도 구정 이후에 신년회를 한다던지,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잡던지 하면서 또 모일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조심히 생각해 본다.


다음 독서모임 선정 도서는 『탱크』다. 독서모임에서 소설을 다루는 것도 『폭풍의 언덕』이후로 없었으니까 굉장히 오랜만인 거 같은데 회원님 중 한 분이 늘 소설을 골라주시고는 하셔서 가끔씩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소설을 읽어보게 된다. 다음 독서모임은 구정 이후, 디자인 수업이 2월 12일까지 밀렸으니 그 사이에 읽고 참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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