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겨울이 끝나간다. 겨울 내내 코트만 입겠다고 말했던 나는 강추위에 롱패딩을 꺼냈고 눈 내린 서울을 거닐다 이제는 공식 모임장소가 되어버린 사당의 카페에 먼저 들어갔다. 눈이 깔린 날이면 언제나 모든 이들이 몽리 수 있을까, 작은 걱정을 먼저 품게 된다. 혹여 오는 길에 사고가 나는 사람은 없을까, 길이 많이 얼었던데 오는 길에 넘어지시는 분은 없으시겠지. 걱정 섞인 잡생각을 이어가다 커피가 나오면 그제야 생각을 끊어낸다.
오늘의 도서는 『탱크』였다. 제2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품. 이 책을 선정하신 회원님의 선정 이유는 간단했다.
"여러분이 읽고 어떤 감상을 남기는지 듣고 싶어요."
대체 어떤 소설이길래, 잠시 생각했던 나는 책을 모두 읽은 후에야 왜 그분이 단순히 감상을 공유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선정했는지 알았다. 나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들 어떻게 읽었을까, 재미있거나 재미없거나, 지루하거나 지루하지 않거나, 그런 수준을 넘어 다양한 생각이 들법한 소설이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처음 책을 낸 작가스러운 문장과 전개가 있었지만 반대로 처음 쓰는 책이기에 담을만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며 커피를 한 모금, 홀짝 마시는 사이에 하나 둘, 회원님들이 테이블에 앉았다.
"길이 얼었던데 다들 잘 오셨나요?"
오늘은 모인 인원이 생각보다 적었다. 소설을 고르면 모이는 사람이 줄어드나, 우리 독서모임의 새로운 징크스가 아닌가 혼자 생각할 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2월 초순, 강추위에 장독대가 깨진다는 입춘을 향해 가고 있는 날이었기에 다들 차림새가 두툼해 넘어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다행히 무사히 잘 온 모양이다.
오늘은 소설을 다루는 독서모임이었기에 가장 먼저 문장과 전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문장은 작가의 데뷔작답게 풋풋한 느낌도 있었고 반대로 답답한 느낌도 있었다. 과연 이렇게 긴 지문을 들여서 이 부분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었고 때로는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의 전개 방식, 어딘가 익숙한 냄새가 났다. 떠오르는 작가 이름이 있으신가요? 넌지시 던진 질문에 회원님들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고 바로 각자 기억나는 이름을 꺼냈다.
내가 꺼낸 이름은 김애란, 김애란 작가였다. 예전에 김애란 작가의 최신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 대한 짧은 리뷰를 적은 적이 있었다.(https://brunch.co.kr/@curry-bear/100 참고) 나는 김애란 작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을 흩뿌리듯 배치하는 인물이라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같은 시간축을 공유하지만 같은 공간축을 공유하지는 않아 이리저리 각자 사건을 마주하다 가끔 세계선에서 겹치고, 또 겹치면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는 전개 방식. 단편에는 어울리지만 장편에는 어려운 전개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소설이 그런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다른 회원님의 소설 초반부가 다소 지루하다는 평도 이런 전개 방식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인물이 마땅한 설명 없이 던져져서 각자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실제로 1장을 읽을 때 이야기를 전개하는 주인공이 계속 바뀌어 혼란을 겪기도 했었고. 이런 전개의 숙명이라고도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이런 전개가 익숙하다는 다른 회원님께서는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을 봐서는 호불호의 영역에 걸친 평가였다고 생각한다.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소설은 마치 한국형 종교 미스터리의 클리셰를 가져온듯한 작품이라고.
"한국형 종교 미스터리 클리셰라는 말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으시면 해외의 종교 미스터리 클리셰를 먼저 떠올려보시면 편할 거예요. 주변 도시와 이격 해있는 한 시골 마을에 넓은 앞마당을 가진 전원주택이 하나 있는데 그 집 지하에는 피로 그려진 육망성이 있고, 거기에는 고깔모자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종교 집단이 매일 밤마다 종교 행사를 지내고 있고... 뭐, 그런 클리셰요."
내 이야기를 들은 회원님들이 조금 웃었다. 한국형 종교 미스터리 클리셰는 이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해외 종교 미스터리 클리셰의 코드와 유사하다. 어디 으슥한 산골에는 정체불명의 사이비, 혹은 사이비와 유사한 무언가가 있는데 이 종교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색채를 띈다는 것이다. 이 정체불명의 무언가에는 당연하지만 심취한 이들이 있고 일부 인물은 거기에 빠져있는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뛰어든다는 전개 방식, 그리고 너무 깊은 곳을 봐버려 동화되거나, 일부는 종교 탈출, 생존자로 미디어에서 얼굴을 비춘다는 이야기. 큰 틀을 쫓아가보면 이 소설 또한 이런 흐름을 띄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정확히는 가톨릭의 형태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종교가 아닌 개인 수양과 같은 작업이라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 작가가 구교, 그러니까 천주교 신자거나 개신교 신자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의 말에 적혀 있더라고요. 천주교 신자라고."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생각은 작가는 과연 어떤 종교관을 가지고 있을까였다. 그리고 나는 개신교보다는 가톨릭에 가까운 성향을 띠고 있다고 생각했고. 한국에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중 자기 수양과 참회, 내면을 돌아보는 행위를 하는 종교는 가톨릭이 가장 가깝다. 예전에 신부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느님께 성공을 비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도구로 온전히 살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성공과 바람이 따르는 거라고. 아마 이 이야기가 내가 소설을 읽을 때 가장 많이 떠오른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인공들은 탱크를 신처럼, 존재를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성공과 소원을 위해 마음을 정리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고 그게 탱크였다는 전개가 마치 괴로움을 지닌 가톨릭 신자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는 과정과 비슷했기에 과거 함께했던 신자들이 비쳐 보였다. 탱크는 종교가 아니었고 그들도 종교가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탱크는 종교의 역할을 충실히 대체하고 있지 않았나. 어떻게 수상할 수 있었는가 이유가 보이는 대담한 작품이었다는 게 독서모임의 결론이었다.
독서모임이 마무리되고 안타까움을 담은 목소리가 회원님들에게서 나왔다.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정작 책을 선정하신 회원님이 못 나오셨네요."
"그러게요. 다른 이들의 감상평을 듣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막상 이걸 다 읽고 나니까 제가 그분의 감상평이 듣고 싶어 지던데요."
그렇다. 정작 이 책을 고른 회원님이 오늘 나오지 못하셨다. 다른 이들의 감상평을 듣고 싶다고 말씀하셔 놓고서는 나오지 못하시다니. 그래서 오늘 이렇게 우리의 감상평을 길게 남긴다. 다음 독서모임에 오신다면 꼭 짧게라도 감상평을 들려주시기를.
다음 선정 도서는 『정영진의 시대유감』이다. 나는 정영진이라는 인물을 몰랐기에 들은 후에 저자를 찾아봐야 했고, 유튜브에서 꽤나 이름 날리는 mc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삼프로, 매불쇼 뭐 그런 많은 이들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의 mc. 이름 있는 인물들의 책이 으레 그렇듯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이들에게 읽혔고, 또 많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다음 독서모임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이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때가 되었다. 나중에 날이 더 포근해지고 좋아지면 한강에서 모두 모여 독서모임을 열자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 봄에 독서모임을 시작했을 때는 정신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지만 이번 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작게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