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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독서모임 후기

『정영진의 시대유감』

by 카레맛곰돌이

2월 말, 3월 초순까지만 해도 한겨울 추위에 몸을 떨었는데 3월 독서모임이 다가오니까 날이 갑작스럽다고 해도 될 정도로 빠르게 풀렸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데 입 밖으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봄이 먼저 찾아온 것이다. 봄이 오면 가족들이 으레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학교 교과서에 늘 실려있던 동요 '봄이 오면'이다.


아침 밥상에서 "봄이 오면 흠흠흠흠 하는 노래가 뭐였지?" 운을 던졌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형은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한 소절을 부탁했는데 꽤 긴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누구는 힙합, 밴드를 좋아하고 누구는 올드 팝을 좋아하고, 다른 이는 트로트를, 좀처럼 음악 취향이 겹치지 않는 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함께 부르고는 하는 노래답다.


모두 식사를 끝내고 독서모임으로 향하는 길, 나도 즐거운 마음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나는 아직도 다음 가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첫 소절만으로도 가슴을 울린다. 다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독서모임을 찾아올까. 벌써 독서모임이 시작된 지도 1년이 되어 가는데 이제는 매 독서모임이 즐거워져 달에 한 번 있는 이 모임 날이 기다려지고는 한다.




늘 모이는 사당의 한 카페에서 모두 오늘의 책을 꺼냈다. 오늘의 책은 『정영진의 시대유감』이다. 일단 독서모임에 들어가기 전 내가 정영진씨의 이력을 길게 읊었다. 삼프로 TV, VODA, 매불쇼와 같은 유튜브 컨텐츠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진행자, 시니컬한 말투와 행동거지가 매력이라고 불리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도중 선글라스에 대한 일화를 이야기해 주는 회원님도 있고. 아무래도 이번 책은 특정 인물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보니 인물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긴 사전 설명이 끝나고 다들 어떻게 읽으셨나요? 질문을 던진 후에 조심스럽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참고로 나는 이 책이 굉장히 별로였다. 2월 독서 리뷰에서 유일하게 3.5점을 준 책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말이다. 모두의 시선이 모였기에 책을 간단히 요약했다. 이 책은 23년에서 25년까지 인터넷에서 이슈가 된 주제들을 엮어다가 자기 생각을 적은 책이다. 하지만 책으로 나올 수준은 되지 못하고 그냥 블로그에나 끄적거리면 되는 수준의 이야기만 담겨있다,라고.


평소 웬만한 책, 웬만한 컨텐츠에 호평을 주는 나기에(사실 스스로도 다양한 것들에 굉장히 후한 평가를 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번 책도 적당 적당히 웃으면서 읽고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일단 다양한 주제를 정리한 저자는 자기가 말하고 있는 주제의 뒷배경과 이전 배경이 어떻게 깔려있는 지조차 모른 채로 아는 척 떠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관된 주제들에 대해 줏대가 없다. 분명 A 주제에 대해 이런 태도를 보였다면 A-1 주제에도 비슷한 논조를 보이는 게 정상인데 A-1 주제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떠든다. 그리고 A-2 주제로 넘어가면 또 전혀 다른 논조를 보이고.


정리하면 인터넷에서 목소리가 큰 녀석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생각인양 적어주고 더러는 자신의 타겟 독자층-보통 이 인물을 좋아하는 독자층은 40, 50대 독자다, 특별한 포인트가 있다면 정치 유튜브도 병행했기에 남성 독자층도 일부 그를 지지한다는 점-이 듣기 좋으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는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불쾌함을 금치 못했다. '이 사람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기의 생각은 만든 게 맞나? 그냥 뻐꾸기마냥 남의 이야기나 떠드는 게 최선인 사람 아닌가? 진행자가 자기 역할을 넘어 페널이 해야 할 발언까지 대신하고 있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나?'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올린 생각이었다.


내 다소 불쾌한 경험이었다는 이야기를 곰곰이 듣던 다른 회원님은 저자의 디테일 부족에 대해 공감의 목소리를 냈다. 그분은 예전에 다른 전공을 하시다가 사회복지 쪽으로 진로를 바꾸신 분이었는데 단순히 쉬는 청년들에 대해 너희들의 정신력이 부족해서다, 부모들이 오냐오냐 봐주니까 형편없는 짓이나 하고 있는 거다, 와 같은 그의 논조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한국에서는 최근 쉬는 청년을 고립 청년과 은둔 청년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사회에 피치 못할 영향으로 단절되었는지, 아니면 스스로 단절을 택한 건지의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최소한 저자가 쉬는 청년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면 이런 부분들까지는 생각해 보고, 또는 고려해 보고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단순히 쉬는 청년이 많다는 이야기에 '너네가 힘든 시절을 안보내봐서 그래! 공사장에서 막노동이라도 해봐라!'라는 이야기는 젊은 이들의 고충을 상상해보지도 않은 전형적인 꼰대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닌가. 전문가라고 불리는 페널들을 만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그들에게 배운 것들도 있을 텐데 적어도 사회복지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으리라 생각이 들지는 않으니, 저자가 그들의 목소리에서 배운 점이 없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책의 세일즈 포인트에 대해서는 칭찬의 목소리를 냈다. 어쨌든 이 책은 타겟 독자가 명확하고 타겟 독자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를 많이 담아놨다. 아마 그를 좋아하고 유튜브를 즐겨 보던 시청자라면 팬심으로라도 기분 좋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가 하는 이야기를 경전처럼 받아들이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고. 당시 리뷰수나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를 봐도 지금 정세를 무난하게 타면서 판매고를 올린 책으로 보였다.


그리고 저자의 용감함에 대해서도 박수를 쳤다. 저자는 스스로가 시니컬하다고 정의 내렸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시니컬보다는 사회에 불만이 많은 소인배로 보였다. 뭐도 싫고, 뭐도 싫고, 그렇지만 사람들이 싫은 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나는 좋은데? 너네가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소인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반발이 나올 수도 있는데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책에 실어 올리는 것은 굉장한 용기일 것이다. 혹은 자신의 주력 독자층에서는 그런 반발의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을 테니 괜찮다는 마음으로 책을 낸 것일 수도 있고.


독서모임이 끝날 때쯤 우리는 알라딘과 교보문고에서 이 책에 쓰인 리뷰를 읽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하나 찾았다. 이런 글은 일기에나 쓰시길.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싶다면 최소한 이 주제에 대해 연구하거나, 조사하거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이는 소설가 김영하가 가장 강조했던 이야기다. 그는 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사전 조사에 사용한다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적어도 책을 쓰고 싶다면 김영하 작가만큼은 아니어도 그에 절반이라도 노력을 쏟아야 하지 않았을까. 독서모임이 끝난 이후 알라딘에서 얼마에 이 책을 받아줄지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다소 공격적인 후기가 나왔다. 사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다른 분들도 불만인 포인트가 있었지만 내가 유달리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이런 글을 적었다. 그래도 21세기북스는 분명 기분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책은 잘 팔렸을 거니까. 명성 있고, 이런 목소리를 내도 클레임이 들어오지 않는 저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 시니컬하다고 자처하면서 사이다-혹은 욕받이-역할을 자처하는 저자는 더더욱 찾기 힘들고. 그렇기에 이번에는 작은 재미를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다음 독서모임은 4월 초순이다. 3월 독서모임이 예정일보다 2주나 미뤄졌는데 참가하시는 분들이 사정이 생기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다 중순에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4월 독서모임은 그냥 봄볕이나 쬐면서 따사로이 이야기를 나누자는 의미에서 도서를 선정하지 않고 한강 둔치에서 모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2주 동안 특정 책을 읽어오라고 이야기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봄의 한강에서 이야기나 나누고 가볍게 쉬자는 취지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우리 독서모임이 딱 이맘때쯤 시작했다. 3월 말, 벌써 1년이 지났구나. 문득 시간의 흐름이 강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몸으로 느껴진다. 지금 나는 꽤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디자인 학원을 다니고 밤에는 검도를 가고 있다보니 개인적으롭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해도 될 정도다. 오늘은 피곤하기도 했고 쓰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서 하루 검도에 가지 않았지만 달에 열댓 권이 넘는 책을 읽고도 서평을 쓰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빨리 나도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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