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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Mar 25. 2024

3/22 90기 독서모임 주간 1회차 후기

되살리기의 예술

"다들 지난 한 달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책은 즐겁게 읽으셨나요?"


"어후, 그런데 조금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읽다가 어? 하게 되고 다시 뒤로 돌아가게 되고..."


"이게 또 번역 상태가 그렇게 좋지 못하잖아요?"


"그리고 또 인명, 지명도 많이 나오고, 거기에 TMI 스러운 이야기까지 넘치고..."


독서모임에 모인 이들 모두가 이 대화에 대해 적지 않은 공감의 메시지를 보냈다.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 이 책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오늘의 책의 후기는 이렇게 요약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책 이외의 이야기가 남았다. 다이애나 애실과 우리, 편집자 지망생들의 이야기다.




3월 22일 독서모임 1회차, 2월 29일에 한겨레 출판편집스쿨 90기 수업이 끝난 이후로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2월 말까지만 해도 겨울이라 단언할 수 있었던 날씨는 벌써 봄에 가까워졌고, 모두의 차림새 또한 마지막 모임보다 많이 가벼워졌다.


나는 솔직히 첫 모임 자리를 준비할 때만 해도 걱정이 앞섰다. '행여 다들 할 말이 없어서 조용해지면 어떻게 하지. 무언가 준비해야 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 그간 어떻게 지냈냐는 상투적인 인사말 뒤에 각자 한마디씩 책에 대해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어? 이러면 시작 인사말 삼아 쓰려고 했던 멘트도 쓰지 못할 거 같은데?'


2시 15분, 모든 인원이 모이고 나는 첫 질문을 던졌다.


"시간 내서 모여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드리면서 이제 첫 독서모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먼저 이 책의 제원입니다. 128x188, 46판 사이즈죠? 거기에 315p는 되는 책입니다. 디자인도 정말 수려하게 잘 뽑혔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이 책을 읽기에는 어떠셨나요? 혹시 독서대에 올려놓고 읽으신 분?"


무거웠다, 괜찮았다, 오래 읽기에는 조금 부담이 갔다. 독서모임에 과연 이 질문이 필요할까? 누군가는 나에게 이 질문의 의도에 대해 물어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이게 우리 모임의 본질에 가까운 질문이라고, 그렇게 대답할 만큼 이 질문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더 나아가서는 어떤 상황에서 읽기 좋을까,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불편하지 않을까, 책의 두께가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판본의 크기가 내용에 비해 너무 크거나 작지는 않을까, 수많은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질문이었다 생각한다. 물론 오늘은 내용에 대한 목소리가 시작 전부터 나왔기에 그 부분이 크게 강조되지는 않았겠지만.


본회가 시작되고 나서는 차례의 배치와 특이한 위치를 배정받은 추천사-1부-2부 순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그중에서도 유독 1부의 이야기가 길어져 배정된 시간보다 1시간을 더 추가했다. 1부의 내용 전개 방식과 저자 다이애나 애실의 편집자적 면모와 인간적인 면모, 굳이 독자가 알아야 할까 싶은 이야기들에 대한 생각들과 해당 원고를 18년 전에 책으로 냈던 '열린책들'의 '그대로 두기'와의 간략한 비교(물론 06년도 책을 찾아 읽을 시간까지 마련하지는 못해 미리보기를 통해 찾아 읽은 정도지만).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기에 그녀의 삶과 행적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든 부분은 따로 있었다. 무어 살인사건의 취재와 이에 대한 편집자의 윤리관과 직업관. 편집자는 어떤 생각으로 책을 내야 하는가, 과연 이 책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어디까지 판단해야 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편집자는 직업의 일부인데 만약 여기에 자본의 개념이 개입했을 때 어떻게 신념을 지킬 것인가.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법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조차 사명감보다는 직업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시대에 편집자에게 투철한 사명감과 수준 높은 윤리의식 아래 책을 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낡은 가치관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대화에 대한 범용적인 대답은 각자 윤리의식과 가치관을 세우고 업무에 임하자, 그렇다고 방대한 에고를 지니고 원고와 저자에 대한 동일시는 피하자. 이 정도가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나머지는 각자의 생각으로.


2부는 다이애나 애실이 만났던 기억에 남는 작가들과 그들과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나는 내심 해당 시대,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영국과 세계 문학사, 출판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라면, 그정도는 아니어도 세계사에 어느정도 관심을 가진 이라면 생각보다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 가지고 있던 세계사 지식을 같이 대입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편집자는 작가의 사생활적인 부당한 요구도 모두 수용해줘야하는가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들. 사실 이야기를 풀자면 남미 문학과 아프리카의 탈식민지화, 이에 따른 출판사들의 업계 확장 시도에 대한 이야기, 탈식민지화 했음에도 그들의 인식 내부에 뿌리박힌 카스트에 대한 이야기들.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지만 본회도 예상보다 길어졌기에 2부는 1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루며 넘어갔고, 이 후기도 본회의 마지막처럼 가볍게 마무리지으려고 한다.




내 독서모임에 대한 총평은 책은 내용 외적인 의미로 어려웠지만 회의는 풍성했다는 점, 그리고 모두 모인 자리가 즐거워보여 자리를 만든 나도 행복했다는 점이다. 이 시간이 끝나면 다음 모임은 2주에서 3주 후 저녁반, 혹은 4월 마지막주의 2차 독서모임일거고, 나는 또 인원과 장소를 구하기 위해 꾸준히 신경을 써야겠지.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는 이들이 있다면 자리를 마련하는 한 때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여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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