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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Apr 19. 2024

8.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 현암사

나는 세계사를 게임으로 배웠다. 문명,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대항해시대... 그중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게임은 대항해시대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세계지도를 머리에서 그리면 대항해시대 언저리의 시간대로 지도를 그리고는 한다. 여기가 지브롤터 해협, 여기가 흑해, 여기가 홍해, 여기가 카리브해, 여기가 마젤란의 세계일주 루트.


 사실 세계사라는 것이 그렇다. 공부하자니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고, 좋아하는 시기만 파자니 과거 시대와 연관이 되어 짧은 한 시대만 아는 멍청이가 되고는 한다. 그래서 흥미를 따라 공부를 시작하면 역사서를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고, 결국 모든 이야기는 로마로 이어진다.


 나는 이 책을 펼치면서 짧은 지식으로 프랑스를 그려본다. 인상주의 화가와 프랑스 대문호들이 함께했던 그 시절, 예술가들이 공부하고 소통하는 시대.


 벨 에포크. '참, 그 시절 아름다웠지.'라고 말하는 시대가 어떤 나라든 있었던 것처럼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당신은 1870년 프랑스 파리의 한복판에 떨어진다. 종전, 불바다가 된 파리, 코뮌 혁명. 난도질당한 파리에서 우리는 꽃을 찾을 수 있을까.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1871-1900(이하 벨 에포크)는 현암사의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 도서다. 역사학자인 메리 매콜리프의 원고를 가져와 국내에서 시리즈로 묶어낸 케이스인데, 읽어본 독자는 모두 호평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읽기는 힘든, 그런 느낌의 도서다. 무엇보다 나는 애초에 이 책으로 벨 에포크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책을 펼쳐 읽을 때만 해도 벨 에포크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고, 어렴풋하게 '시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인가?'정도로 생각하며 읽고 있었다. 그런 도중 지나가는 형이 책 제목을 보고는 연극톤으로 말을 던졌다.


"아, 벨 에포크. 아름다웠던 파리여!"


 사실 벨 에포크라는 말을 잘 모르더라도 문학사, 미술사를 어렴풋하게 아는 독자라면 1871-1900이라는 년도만 봐도 어떤 시대인지 예측이 가능했을 것이다. 바로 인상주의의 태동기이자 인상주의가 가장 꽃피었던 시기, 그리고 프랑스의 대문호들이 살았던 시기다.


 서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책을 펼치면 저자는 독자를 1870년 프랑스로 내던진다. 폐허가 된 파리와 코뮌 혁명,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패배로 인해 억눌린 그럼에도 다시금 일어서는 시민들. 그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웠던 수많은 미술가와 작가, 음악가들의 이야기, 이 책은 독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이해할 만큼의 사전지식을 요구한다. 빅토르 위고의 위상과 그 후 문학계에서 빛났던 에밀 졸라, 그리고 모네, 마네, 시슬레, 베르트 모리조, 르누아르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한 간략한 지식, 파리의 만국박람회. 늘어놓으면 끝이 없지만 사실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한 번쯤은 들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은 592페이지로 굉장히 굵은 편에 속한다. 글자도 촘촘하고, 이야기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인물들을 조명해 주면서 정신없이 흘러간다. 갑자기 모네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에펠의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한다. 이는 '1876~1877'과 같이 해당 연도에 있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작가의 서술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의 제목을 보고 이 책을 예술서라고 착각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엄연히 예술 역사서다. 예술과 관련된 기법이나 예술가 한 명의 깊은 이야기, 삶과 예술 방식을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째서 그가 이런 방향으로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 다루면서 넘어간다. 그렇기에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 중에서도 모네와 마네, 시슬레와 같은 인물들이 초기, 중기, 후기에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렸는지를 안다면 훨씬 재밌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이 책의 가장 큰 장벽은 592페이지의 많은 장 수와 집어 들었을 때 느껴지는 무게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후 프랑스사에 대해 간략하게 알고 있다면, 예술사에 대해 고등교육정도의 수준으로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면, 시대와 예술이라는 묶일 수밖에 없는 카테고리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라면. 프랑스의 대문호라고만 알고 있던 에밀 졸라의 인간적인 이야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눈물 나는 삶(실제로 인상주의는 태동기인 1870년 중반부터 1880년 중후반까지도 화제성은 있어도 좋은 평을 받지 못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번 사람보다 있던 돈마저 날리면서 빌빌거린 화가들이 더 많았다),  자유의 여신상과 만국박람회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 책은 그 두려움을 떨쳐내고 펼칠 만큼의 가치를 가진 도서라고 확신할 수 있다.




최근 이사때문에 독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날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집을 사는데 큰돈을 보태서 이제 내 주머니는 텅 비었지만, 그래도 평생의 소원이던 가족들이 머물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생각에 기뻐하시는 부모님, 그런 부모님을 보고 걱정을 덜었다고 웃는 형, 그런 가족들과 함께 있는데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앞으로 가족들의 행복이 조금 더 오래가기를. 나도 다시금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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