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노동 외 3권
벌써 5월이 지나갔다. 5월에 시작한 서평 수업도 무사히 끝났고, 그 사이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많이 읽었다고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숫자로만 보자면 적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꽤나 생각할 여지가 많은, 혹은 그간의 독서 패턴과는 방향성이 다른 책들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5월 내내 하려고 했던 일들을 모두 하지는 못했다. 일단 서평 수업과 함께 진행될 거라 생각했던 '편집자의 시선으로 릿터 같이 읽기' 수업은 인원을 모두 모으지 못해 6월로 밀렸고 지난 월요일에 첫 수업을 진행했다. 취업의 갈피라도 잡아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요원한 듯 면접 근처도 가지 못했다. 독서 모임도 조금 방향성을 헤매고 있는 분위기다. 시작해야지! 하고 되뇌었던 검도는 결국 일정이 밀리다 내일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5월이 실패한 시간은 아니었다. 서평 워크숍에서 앞으로 써야 하는 서평의 방향성을 조금이나마 찾았다. 원래 6개월에 한 번은 만났는데 브라질에서 주재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오래 보지 못했던 형님을 뵙고 같이 조촐하게 술 한 잔을 나눴다. 친구 외조부상에 조문객으로 가 도움을 주며 옛 우정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고 십 년을 넘게 보지 못했던 중학교 동창들을 마치 몰아서 만나듯 5월에 모두 보기도 했다. 그리고 5월 말일 독서 모임부터 시작해 6월 4일 중학교 동창들과의 여행으로 끝나는 대장정까지. 이렇게 보면 바쁘게 살았고 힘들게 살았다. 그럼에도 아직 써야 할 글은 많다. 수요일에 연재되는 나의 군 시절 이야기, 조금 시간이 지난 인천 아트북페어 후기, 그 외 신변잡기적 글들. 내가 써 내려가는 문장이 훌륭하다고 말하진 못해도 글을 쓰는 이 과정이 즐겁기에 마냥 가시밭길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좀 속도를 내야 한다. 특히 아트북페어 끝난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언제 쓸 거야.
1. 진짜 노동 적게 일해도 되는 사회, 적게 일해야 하는 사회
자음과 모음 사에서 나온 『가짜 노동』의 후속작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법한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참신하고,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말하기에는 진부한 느낌의 도서라고 해야 할까. 특히 탑다운 체제가 확실한 한국 사회에서는 여러모로 온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번아웃'과 '월급 루팡'은 비단 근로자들의 게으름만으로 만들어진 현상이 아닌 사회생활을 겪은 이들이 보이는 마음의 병이다. 그렇기에 이에 대해 접근하려면 한국 사회를 조금 더 디테일하게 진단하고 파고들어야 하는데 이 책은 서양의 기업 문화를 조준하고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분명 의의가 있다. 해외의 기업들은 어쨌든 근로자들의 생활 패턴에 긍정적 변화를 위해 힘쓰고 있고, 한국의 기업들 또한 이런 시대적 흐름을 느리게나마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 -과해서 문제라고 할 수도 있지만-과거처럼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고 비관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사회적 해결책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사실. 그리고 스스로 앉은자리에서 바뀌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 또한 탑다운이 확실한 곳에서 일했고 찍어 누르는 방식이 흔한 곳에서 일했다. 그리고 내가 전역하기 직전에는 이런 체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은 어찌 보자면 이런 사회 구조의 변화에 대한 진단과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도서가 아니었을까 스스로 생각해 본다.
2. 영화도둑일기
미디어버스 사에서 나온 책으로 낡은 문체와 고급화와는 거리가 먼 패키징, 그리고 이에 걸맞은 이야기들로 채워진 도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영화의 불법 공유, 토렌트를 이용한 공유와 배포는 한국 사회에서는 금기시되는 이야기에 가깝다. 모두 영화를 그런 방식으로 봤고, 보고 있으며, 앞으로 볼지도 모르지만 이에 대한 어떤 철학적, 미래지향적 담론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불법 공유를 통한 보존과 후세에 이어진다는 가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또 이런 시선이 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나 또한 불법으로 게임을 다운로드하면서 그 당시에는 구하지 못했을 과거의 게임들을 구해 플레이했고, 이 경험을 글이나 말로 풀어내기도 했다. 미디어가 일회성이라 느껴질 정도로 많은 작품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정말로 '의도된 일회성'을 키워드로 가진 작품들, 혹은 이제는 뒷방 늙은이 수준이 아닌 과거를 추억하는 칼럼에서 겨우 이름이나 거론될법한 작품들, 후세에 보여주고 싶지만 이제는 구할 방법이 없어진 작품들, 나는 이런 작품들이 후세에 암암리로라도 남기를 원한다. 법적으로, 도의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우연히 칼럼을 읽다 눈에 띄는 작품이 있어 인터넷에 찾아봤지만, 이제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나 같은 사람이 더는 없었으면 한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워크숍에 제출했고 꽤나 혹평을 받았다. 자세한 것은 워크숍 후기에 적어뒀다. 하지만 나는 그 강평을 듣고 내가 진정으로 적고자 했던 이야기가 부족했음을 다시금 느꼈다. 내가 지금 당장 이 책의 서평을 다시 쓴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다시금 내공을 쌓았을 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레거시가 될 작품들의 보존과 공유, 그리고 미래에 대한 담론을.
3.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삶의 마지막 순간에서의 가르침)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한 의사의 시선로서의 시선에 오싹함을 느꼈고, 다음으로 인간으로서 저자의 시선에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떠올렸다. 한 사람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한 사람은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두 사람 모두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단지 한 명은 수많은 죽음을 봐온 연로한 의사로서 과연 인간적인 죽음은 무엇인가, 존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던진다면, 한 명은 아직까지도 필드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깎아내며 가는 목숨줄을 잡고 있다는 점 정도. 그렇기에 둘은 비슷하지만 다른 글을 내게 보여준다. 어쩌면 젊음이 소진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최근 타인의 죽음,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 미래에 대한 전망, 나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다 보니 이런 주제에 대해 다소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30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죽음이 낯설다. 너무 어린 시절에 봐온 기억이 전부고 미래에 대해 막연한 희망뿐 준비는 미비하다. 오늘 친구들과 모였을 때 나중에 가족들이 모셔질 장소를 미리 봐두는 것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막상 일이 생겼을 때 납골당을 찾으려고 해도 쉽게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다들 그런 생각까지 하며 살고 있는 걸까. 아직 내가 애인 걸까. 모든 것을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부족한 시간을 잡으려고 손을 뻗어봐도 모래알처럼 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뿐임을 느낀다.
4. 양들의 침묵
보면 최근 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도서는 늘 소설인 것 같다. 이번에는 불후의 명작이라 불리는 양들의 침묵, 독서모임 후기에서 남긴 이야기 대신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신원 미상의 한 이야기를 담고 싶다.
대충 요약하면 전군에 6kg짜리 단검을 보급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지휘관은 코웃음을 치지만 자신의 병력은 기사 20,000명에 육박하는 무력을 지녔다, 그리고 300명의 군사로 5000명에게 포위섬멸진이라는 작전을 통해 공격하겠다는 이상한 정보를 듣고는 갑자기 불현듯 오한을 느끼며 물을 모으라는 명을 내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정보에 떠는 지휘관을 휘하 장교는 이해하지 못해 움직이지 않았기에 그는 친히 이 정보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
"300명의 레콘 부대가 온다."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시리즈를 읽었다면 이해가 갈만한 장면이다. 인간 병사 수백이 주둔한 성채조차 레콘 셋이면 공략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레콘은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인데 그런 괴물이 300이나 온다니.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혀를 깨물고 평온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이야기는 바보 같은 설정과 실패한 캐릭터 설계를 비꼬는 게시글이다. 최근 많은 작가들이 전후무후한 천재, 전후무후한 무신을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현대식 카타르시스'를 주려고 하지만 그 욕심이 과해, 혹은 천재라고 보기에는 너무 멍청한 우를 범하고 있음에도 '어쨌든 주인공이기에 해냈어!'라는 전개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다. 6kg짜리 단검, 적은 군사로 많은 적들을 포위해서 섬멸하는 전술. 이 글을 디테일하게 해부해 보면 실제로 이런 실수를 범하는 작품들이 있었고 이에 대한 디스임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작품들의 반대에 서있는 작품들 중 하나가 양들의 침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계관 공인 최고의 지성이라고 모두가 이야기하는 살인마 한니발 박사, 그는 왜 자신이 천재인가에 대해 타인, 작가의 입이 아닌 자신의 입으로 이를 증명해 낸다. 천재라 호소하지만 천재를 표현하지 못해 주위 캐릭터를 바보로 만드는 현대의 장르소설 작가들에게 필요한 책은 작법서가 아닌 『양들의 침묵』이 아닐까?
사실 위에서 언급한 책 이외에 지금 읽고 있는 책도 꽤 많다.
1. 한국 현대문학사
2.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3. 체호프 희곡선
4. 릿터 46호
그리고 이번에는 이번 달에 읽으려고 계획한 책들.
1. 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
2. 신사 숙녀의 자기방어술
3. 악인의 서사
4. 초예술 토머슨
5.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막상 책을 쭉 늘어놓으니 읽고 있는 책도 많고, 읽어야 할 책도 많다. 『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의 경우 서평단으로 신청한 도서다. 위에서 이야기한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이어지는 독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평단에 선정되지 않는다면 읽지 못하겠지만. 『신사 숙녀의 자기방어술』은 인천 아트북페어에서 구매한 도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인천 아트북페어 후기에서 남기겠다. 『악인의 서사』, 『초예술 토머슨』은 이번에 시작한 '편집자의 시선으로 릿터 읽기' 수업에서 언급된 도서들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야기들이기도 하기에 즐거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은 올해 초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후 꽤나 오랜 시간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문 예술서다. 나도 매번 읽고 싶어 도서관을 확인하지만 빌려가는 이들이 많아 빌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 달에는 빌려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작은 소망을 품고 있다.
사실 그 외에도 읽어야 할 책은 많다. 6월에는 읽는 책도, 읽을 책도 많으니 조금 더 분발해서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나열하니 벌써 위기감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또 서평 쓰기도 다시 시작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