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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May 14. 2024

13.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 세종서적

이 책을 읽은 후 서문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내게 죽음은 그리 먼 단어가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외할머니도 세상을 떠나셨다. 외할아버지는 그래도 우리 곁에 오래 머무르셨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후에 돌아가셨으니. 소주, 자욱한 담배 연기, 어항에 살던 작은 자라, 놀이동산. 어린 시절 내게 죽음이란 키워드로 파편화된 기억이었다.


 성인이 된 후 죽음이 내게 가까이 다가온 적이 있었나 싶다. 아니, 블루칼라의 특성상 사실 죽음이란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다. 특히 엔진과 같은 무거운 물건을 들고, 고치고, 시동을 거는 직업 특성상. 그렇기에 나는 가까이 다가온 죽음을 때로는 외면하고 때로는 모른 채로 지나갔겠지.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직면한 것은 직업 때문이 아니었다. 한 번은 같은 중대 병사의 자살, 한 번은 존경하던 선배 어머님의 부고 소식.


 30에 가까워진 지금, 불현듯 죽음이라는 단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듣기만 해도 오싹하고 등에 소름이 돋는다. 이제는 환갑을 넘긴, 여전히 담배를 즐기시는, 블루칼라로 살고 계시는 아버지 때문이리라. 똑같이 환갑을 넘긴, 다리 수술 이후 더욱 발걸음이 느려지신, 여전히 저녁까지 일을 하시는 어머니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오늘따라 유달리 서문에 손이 가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하기에. 아버지가 오래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과 아버지의 손을 평생 잡을 수도, 그 손을 꽉 쥐고 버틸 여력이 있을지 나 스스로 확신할 수 없는 21세기의 아들이기에.




152X225, 여기에 적었던 서평 중 처음으로 가져온 신국판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둘러보고 한 생각은 생각보다 두껍지 않고,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383p, 작은 판본이었다면 에세이치고는 두껍다는 생각에 압박감을 느꼈을 법도 한데 이 넉넉함은 판본의 넓이가 주는 넉넉함이 아닐까 싶다. 내용 또한 어렵게 흘러가지 않는다. 전미도서상에 뽑혔던 30년 전이라면 몰라도 24년 현재의 기준에서는 의학, 혹은 병에 대해 조금의 관심을 가져봤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핵심은 의학 이야기가 아니다. 애초에 의학 이야기가 전부였다면 이 도서는 에세이가 아닌 교양서적에 꽂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등줄기가 차게 식는 기분을 느꼈다. 본 도서와 비교해서 읽을만한 재미있는 도서가 있다면, 나는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비교해서 읽으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골든아워'와 본 도서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다. 죽음을 직면하는 의사, 가까이에서 발생하는 죽음과 멀리서 발생하는 죽음, 자신이 손 쓸 수 없는 이야기들. 하지만 두 도서는 독자에게서 끌어내는 감정이 다르다.


 '골든아워' 1권의 도입부는 대략 이렇다. 응급의료학에 대한 장황론을 대신할 한 집안의 가장인 어부 이야기, 굵은 밧줄에 묶여 온몸이 으스러졌지만 그는 환자를 살려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스승의 날, 그는 환자의 아내를 통해 그가 결국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다시 건강을 되찾고 일을 시작했다가 우연히 큰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는 이야기를. 이야기는 한 겨울의 바다처럼 차갑다. 블루칼라의 삶이 으레 그렇듯 살았지만 생존을 위해 다시 돌아갔고 그 과정 중 죽었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를 읽는 독자의 머리에는 뜨거운 피가 돈다. 어떤 독자는 본인처럼 블루칼라인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을 억지로 참기도 하고, 어떤 독자는 가장의 무게에 입을 꾹 다문다. 어떤 독자는 남겨진 가족의 허망함을 떠올리고, 어떤 독자는 화자인 이국종 교수에게 몰입한다.


 그에 비해 본 도서는 똑같이 주위에서 발생하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휴머니즘이 담긴 '의사'의 이야기를 전달해 준다. 자신을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순간, 형의 죽음, 마지막까지 의연했던 한 환자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에는 휴머니즘이 담겨있지만 동시에 차갑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죽음을 직면하게 된다. 더러는 죽은 이를 떠올리고, 더러는 함께하고 있지만 언젠가 죽을 이를 떠올린다. 그렇기에 독자는 그의 덤덤한 이야기에 비로소 외면했던 죽음을 떠올리고 언젠가 찾아올 미지의 공포에 잠시 떨게 된다.


 본 도서와 '골든아워'는 같은 배경을 보이지만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차갑게 직면하는 죽음의 공포를, 하나는 죽음에서 건져낼 수 있었던 이에 대한 한과 고통, 슬픔을. 의사들의 수기는 대게 이렇다. 특히 죽음을 직면하는 의사일수록 깊은 늪에 잠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거나 이미 그 늪에 잠긴 채로 초연히 빛이 들어오는 하늘을 주시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따뜻하지 않다. 오히려 언젠가 내 곁을 떠날 가족이 떠올라 두려움이 올라올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최근 일반인의 시야에서 가려진 죽음이 양산되어가고 있다고, 병원에서 아무도 모르는 채로 죽어가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씌운 죽음의 그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죽음은 자연의 섭리처럼 인정해야 하는 것이며, 마지막 순간 사랑했던 이들과 함께하고 이를 인정하며 사랑, 슬픔, 위로와 같은 감정을 나눠야 비로소 존엄성 있는 죽음이 되고 아름다운 죽음이 된다고 말이다.




근래에 유튜브에서 간병인과 관련된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간병인의 일당이 크게 올라 이제는 달에 400~500 수준을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 현실적으로 많은 가정이 이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데 멀지 않은 미래에 노령 인구가 늘어나면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예전에 어머니가 무릎 수술을 하셨을 때 모든 이가 일을 했기에 하는 수 없이 간병인을 고용한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비용이 장기적으로는 가족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적지 않은 비용이었다고 한다. 죽음, 병원, 간병인,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제는 섬찟하고는 한다. 정말 극한의 상황이 우리에게 닥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내가 가진 것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번 5월 독서모임 야간타임 선정 도서다. 과거 한겨레출판스쿨 수업 당시 30대, 50대, 70대 미혼 여성 작가의 삶을 취재하는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학우가 있었다. 나는 그때 70대의 삶은 현재 20대들이 보고 멋짐을 느낄만한 삶이 아닐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를 떠올렸다. 환갑을 지나 이제는 60대 중반이 되신 아버지, 손가락 마디가 조금씩 뒤틀려 파스로 버티시는 아버지, 틀니를 쓰다 보니 식사도 불편해하시는 아버지. 책을 읽으며 느꼈던 섬찟함은 아마 앞으로도 나를 따라다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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