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을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솔직히 쓸 말이 없었다. 이 책을 읽은 이유도 이런 말을 들어서였고. "지금 에어컨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와서 밖이 점점 더워지고 있어. 모두 에어컨을 틀고 있는 와중에 우리만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손해라고. 지금 당장 에어컨을 틀자." 어떻게 밖이 뜨거워지고 있으니 우리도 손해 보지 않도록 에어컨을 틀자는 말을 할 수 있지.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가히 악마적인 발상이 섞인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크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책의 마지막을 덮을 때까지 '아, 빙하는 녹고 얼면서 계속 움직이는구나. 지금 빙하가 많이 녹았구나. 그래도 지금 점심 기온이 36도여서 에어컨을 끌 수는 없겠는데.' 이 생각밖에 없기도 했었고. 아마 이번 여름을 겪는 이들에게 에어컨을 끄고 자연 바람으로 참아보자는 말을 한다면 종교적 어휘 구사 없이 단어 그대로 돌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이번 여름은 유독 끔찍했다. 35도, 36도를 넘나드는 점심과 열대야가 20일 넘게 지속되는 밤을 진짜 창문만 열어서 생활해 보자고? 창문을 열면 뜨거운 바람이 방 안에 들어와서 방 안이 찜통이 되는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서평을 쓰려고 앉았다. 몇 개의 뉴스와 최근 연락한 친구 때문이었다. 최근 고교 동창에게 복숭아 한 상자를 선물 받았다. 고등학교 친구니 벌써 10년은 훨씬 넘게 알고 지내기도 했고, 경상도에 내려갈 때면 가끔씩 얼굴을 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그 친구의 아버지가 파신다는 사과즙을 매 년 수 박스씩 사 마셨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 친구도 내게 전화할 때 고객님, 올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라는 명목에서 보낸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상도 사나이답게 친구 생각나서 보내준다는 말은 절대 안 한다.
그 친구가 사는 곳은 경북 영주다. 영주는 사과의 산지로 유명한 장소로 추석에 영주 사과라는 타이틀이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사과값이 금값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그 도시의 사과가 대단하다는 건 몇 개 얻어먹어본 내가 자부한다). 하지만 이제 10년 후에는 영주에서 사과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제주도에서 자라는 귤이 영주에서 자랄지도 모른다는 말은 덤으로 나오고 있고. 00년도 즈음에 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특산물 지도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사실도 알고 있는가? 기억 속의 특산물 지도는 틀렸다. 지금은 그 지도의 내용물을 조금씩 위로 다 올려야 한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작년 말에 뉴스를 보던 사람이라면 오징어 어획량이 점점 줄고 있고 어민들이 오징어 배를 아예 처분하려고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오징어의 어획량은 불과 3년 전, 4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토막 났다. 오징어를 잡는 어민들의 수가 줄어서 그런 걸까?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보통은 수온 상승을 주된 이유로 생각하고 있다. 강릉에서 잡히던 오징어가 수온이 상승하면서 산란을 위해 위로 북상하게 되고, 이런 오징어들을 북에서 무차별적으로 잡히기에 전반적인 어획량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의 핵심 키워드는 수온 상승이다. 만약 작년 말에 뉴스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를하면 더 좋을까. 이번에는 더 가까운 이야기를 가져오려고 한다. 올해 해파리 쏘임 사고는 3000건에 가깝게 보고되었다. 이 수치는 3년 전에 비하면 500건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일부 지자체에서 해파리 단속 체계를 도입하면서까지 선제 대응을 했음에도 이 정도의 수치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이유도 해수 온도 상승이다. 특히 올해는 수온 상승이 유독 심해 독성을 지닌 노무라입깃해파리가 동해안 전역에 출몰했다는 기사가 빈번히 나올 정도였으니,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어민들의 이야기는 추가로 가져오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땅에서의 기후 변화는 어떨까. 당장 이번 여름의 더위에 대한 이야기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역대 8월 전체 폭염 일수가 2번째로 많은 날이라는 이야기부터 열대야가 역대 최다로 많은 여름이었다는 이야기까지... 사실 이건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모두 겪었으니 알고 있겠지만. 더 정확하게 기온 변화를 볼 수 있는 예측은 한반도의 지역별 농산물 생산에 대한 미래 예측이다. 작년 사과의 절반 이상이 경북 지역에서 나왔다. 하지만 농촌진흥청의 예측에 따르면 10년 후에는 사과의 최대 산지가 경북에서 강원도로 변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나나와 망고가 제주도에서 자라고 있다는 소식은 익히 뉴스를 통해 봤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원래 그 자리를 차지했던 귤은 어떻게 될까. 제주도의 특산품이라 불리는 귤은 10년 후 남해안 대부분 지역으로 재배지를 옮길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반도의 과수 재배지가 전반적으로 북상하는 것이다.
빙하에 대한 책의 서평을 쓰면서 왜 이렇게 한반도의 기온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고 있을까. 왜냐하면 빙하의 이야기를 툭 던져봤자 아무도 크게 공감을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뿐만 아니라 비단 나까지도. 이 책은 그렇게 재미있는 책이 아니었다. 글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뒤표지에 적힌 열정이 담긴 소개글에 비해 책은 차분하고 진중하게, 때로는 빙하에 관련된 과학적인 이야기들로 지루하게 지나갔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역시 이런 극한의 환경에서 탐사를 하는 탐사대원들은 대단하구나 라는 감탄과 빙하가 녹고 있구나 라는 다소 뜬구름 같은 걱정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도 이 책에 대한 긴 서평과 감상을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이 나를 조금 변화시킨 부분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상 기후에 대한 뉴스를 읽게 되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뉴스를 읽게 되었다는 것. 평소 같으면 '아, 오늘도 날이 더웠습니다. 라는 뉴스가 나오는구나' 정도의 감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 영향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최근 빙하 장례식이라는 다소 특이한 기사를 봤다. 이제는 빙하라고 부를 수도 없는 정도의 척박한 대지가 되어버린, 빙하가 있었던 장소에서 인류학자들과 빙하학자들이 빙하 장례식을 열었고 이 특이한 행사가 소멸하는 빙하를 지도화하는데 기여했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빙하가 사라지고 있고, 이 빙하들이 다시 생성되기보다는 앞으로 더욱 가속해서 녹을 확률이 높다는 다소 슬픈 전망도 더해서 말이다. 이런 모든 기사들을 읽고 이 이야기를 묶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빙하가 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자 많은 이들은 추상적으로 얼음덩어리가 깨지고, 북극곰이 아슬아슬하게 빙하 위에 서있는 다큐멘터리 장면을 떠올릴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몸으로 겪는 이야기를 섞는다면, 아마 많은 이들은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어떻게 해야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추상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이고, 차를 덜 끌고 다녀야 하고... 아마 많은 이들이 똑같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 수준이 전부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논의가 더 큰 공동체에서 이루어지고는 있다지만, 이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다양한 견해들이 뒤섞이면서 제대로 된 논의가 어려워지고, 극단적으로는 지구온난화라는 것 자체가 허구라는 말을 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사실 나는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 자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빙하가 녹는다. 기온이 상승한다. 해수 온도가 오른다. 우리가 겪어온 것들이 이제는 달라진다. 이 큰 사실들.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는 사실을, 혹은 무신경하게 생각하고 지나가는 일들을 다시금 생각하고 이에 대해 잊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일 아닐까. 누군가는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그들에게 고마움을 가지면서 큰 일은 아니어도 아주 작은 일, 그러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려운 환경이라면 하이브리드 차량을 구매해서 잘 관리하고 오래 타는, 그런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은 다소 많은 기사를 가져와봤다. 실제로 내가 이 책을 읽은 후에 우연히 지나가면서 읽은 기사들이었고, 이 기사들이 내가 글을 써야겠다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한반도의 특산품 지도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은 익히 들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망고가 나온다는 이야기부터 사과의 특산지가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부터 해마다 오징어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고 이미 명태와 같은 물고기들은 찾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까지.
나는 농사를 짓지 않으니까, 애초에 이런 날씨 변화까지도 생각하면서 농사, 어부 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라는 다소 시니컬한(또는 폭력적인) 이야기를 하는 무신경한 사람들과 달리 농사와 연관도 없는 경기도민인 내가 이런 부분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역에 사는 지인들의 생각이 나서. 복숭아를 선물해 준 친구도 농사를 짓고 살지는 않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직까지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신다고 한다. 충주에서 근무 중인 내 다른 동창의 부모님도 경상도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걸로 기억하고 있다. 만약 기온 변화가 계속 이뤄지면서 재배지가 바뀌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내가 이 현상을 앞장서 바꿀 수도 없고,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해줄 수도 없지만 그런 작은 걱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이런 걱정은 나만의 바보 같은 걱정일 수도 있다. 그들도 분명 새로운 길이 열리면 새로운 곳으로 향할테고, 사실 나 스스로의 걱정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시대에서 남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건 바보 같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여름이 끝나간다. 아니, 사실상 여름이 끝났다. 아마 다음 주면 30도에 걸리거나 그 아래로 내려가면서 더위가 확실히 꺾일 것이고, 나도 그쯤 되면 카메라를 메고 다시 출사를 나가는 일도 잦아질 것이다. 그 후에는 추석, 그리고 가을을 지나 겨울로 향할 것이다. 이런 더운 여름의 끝에서 아, 이번 여름은 더웠다. 다음 여름에는 덥지 않았으면! 하고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도 있지만 이런 여름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은 그런 사유를 할 시간을 만들어준다는 이유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