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중독』
9월이 되었는데도 날씨가 덥다. 분명 가을일텐데, 가을은 어디로 갔는지.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시간, 평소와는 다른 장소에서 모이기로 약속했다. 늘 가는 서울청년센터가 아닌 을지로의 한 카페, 그리고 점심이 조금 지난 2시가 아닌 아침 10시. 을지로까지 거리가 좀 되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버스에 몸을 던진다.
오늘의 도서는『생각 중독』이다. 생각 중독,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고민으로 변모하는 현대인을 위한 책. 그러고 보면 예전 출판편집스쿨 당시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편집자는 일상적인 긴장감을 가지고 모든 이야기와 이슈를 읽어야 한다. 남들은 가볍게 아, 그렇구나 정도로 넘길만한 이야기도 편집자는 다른 사례나 근래의 이슈, 과거의 이슈와 이야기를 엮으면서 이를 기획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재창조하거나 다양한 풀의 키워드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아마 이 책과 가장 반대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이미 마음속으로 내린 채 버스에 올라탔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독서모임을 준비했을까? 독서모임은 언제 모여도 즐겁다.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온전히 책에 대해서, 그리고 책을 읽으며 떠올릴 수 있는 이슈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러기에 독서모임을 가는 전 날이면 언제나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잠자리에 들게 된다. 버스 자리에 앉은 후에는 잠시 책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요즘 꽂힌 곡은 muse의 euphoria. 귀를 찌르는 강렬한 기타 리프는 언제나 무미건조한 버스 안 행복을 가져다주는 나의 오랜 친구다.
다들 잘 지내셨나요? 이제는 매 모임마다 말하다 보니 식상하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인사말이 되었다. 아니, 사실 오늘은 내가 꼴등으로 모임에 도착했기 때문에 인사말이라기보다는 독서모임이 시작된다는 포문을 여는 말이 되었지만. 책을 유심히 읽었다는 인원은 생각 이상으로 적었다. 오히려 진부하고 어디서 늘 봤던 그런 내용들이 적힌, 그렇고 그런 자기개발서 같다는 의견이 우세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왜 한때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을까. 오늘의 주제가 이쪽으로 흐를거란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그 물살이 빠르게 들이친 기분이었다.
책에 대한 공통적인 결론은 비슷했다. 유튜브에서 하는 개인의 마인드 컨트롤과 사회 적응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낸 느낌이라는 점, 책을 자주 읽지는 않지만 가끔씩 베스트셀러나 자기개발서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책을 읽었다는 자기만족과 유튜브를 대신해 글자로 이런 마인드 컨트롤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는 -플라시보적인-효능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게 전부라는 점. 안타깝지만 추후에 ABC분석 기법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마저도 과거 자기개발서에서 흔히 다루던 평범한 접근 방법이라는 점에 대한 지적. 즉 정리하면 과거 시중에 나왔던 자기개발서와 비슷한 궤를 보였다는 결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나는 이에 대해서 오히려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혹은 필요한 책이었다는 의견을 냈다. 내 주위에 있었던 걱정이나 생각이 많은 지인들을 떠올려보면 이 책이 던지는 말은 그들에게 충분히 필요한 조언이었고, 또 그런 이들이 현 사회에 적지 않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그들에게 이런 조언은 단순하지만 현실성이 있는 조언이고 오히려 어렵지 않은 이야기기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에 독서모임에 참가했던 이들이 어느 정도 동조의 의견을 보냈다. 생각해 보면 유튜브에 올라오는 이런 마인드 컨트롤과 관련된 영상에 많은 조회수가 찍히는 점, 이는 현대 사회의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건 사실 나도 어느 정도 경험했던 부분이다. 정비사로 일할 당시 선배와의 트러블, 중간 관리자로서의 문제, 다양한 상황을 직면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 아마 그 당시에 이런 조언을 들었다면 단순하다고 혀를 차기 보다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역시 단점 또한 책의 내용이었다는 말이 모두의 입에서 나왔다. 생각 중독은 개인적 요소, 환경적 요소, 유전적 요소로 인해 발생하는데 환경적 요소와 유전적 요소는 거의(혹은 절대로) 바꿀 수 없으니 개인적 요소에 집중하자는 이야기와 함께 순응하거나, 적응하거나, 자신의 마인드셋을 바꾸거나, 어떻게든 하자는 식의 언지가 사실 이 책의 신뢰도를 가장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모임에서 제일 많이 나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생각(혹은 걱정) 중독은 개인의 문제로 발생하는 요인보다는 사회, 환경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보는데 이런 부분들은 -어쩔 수 없으니-제쳐놓고 일단은 사회에 적응하거나 아니면 이를 다른 방향으로 발산하자니. 21세기 사회인들에게 어느 정도는 포기하면 편하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 않은가? 실제로 그런 내용이기도 했고. 거기에 재미있는 지적이 하나 더 붙었다. 추천사를 앞장에 얼키설키 배치했다는 점. 저자의 떨어지는 신뢰성을 추가로 보충하기 위해 국내 전문가의 추천사를 앞에 배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나는 굉장히 재미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자기개발서를 자주 읽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보통 책과 필요 없는 이야기의 경우 맨 뒤에 배치하거나 책 뒤표지에 배치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시선으로 책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자면 그간 베스트셀러 자기개발서로 보였던 장단점을 그대로 보여줬고 이에 대해 특별히 발전한 부분을 찾을 수는 없었다는 점, 하지만 과거에 비해 전반적인 자기개발서를 향한-알맹이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거세졌음에도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건 이런 이야기가 여전히 사회에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이런 정리가 되었다. 독서모임 도서를 정해주신 분도 베스트셀러에 올라와있는 책이어서 무언가 내용이 더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평이해 독서모임서 다루기 애매한 책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오히려 우리가 도움이 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좀 기이하지만 훈훈한 마무리 장면이 나왔는데, 생각해 보면 어떤 책이든 이야기를 나누면 도움이 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책 본연에 대한 분석을 넘어 트렌드 분석이라던지, 사회 현상에 대한 고민이라던지.
그리고 서문에서 말했던 일상적인 긴장감에 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를 회원님들에게 꺼냈다. 만약 편안함이 0이고 생각 중독이 100, 110, 120 수준이라면 아마 날카로운 사고를 위한 일상적인 긴장감은 70~80 정도에 위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트레스와 과도한 고민으로 발전하지 않는 정도에서 자신이 아는 한도 내로 답을 찾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구상하고, 지식을 향해 한 발짝 진보하는 행위. 이는 아마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진짜 마인드 컨트롤의 영역이 아닐까. 다들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랜만에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린 듯 작게 웃었다. 사실 이 이야기가 이번 독서모임의 보물이 아니었을까 스스로 자평해 본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고 다음 달부터는 한 분이 책을 임의로 정해서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간 우리가 같이 읽어온 책들을 리스트업 해보고 알았는데 이미 인문사회, 역사, 예술, 고전, 현대소설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한 명이 정하는 책으로 가도 되겠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모두가 책 선정에 부담을 느끼지만 않는다면 그런 방향도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기 모이는 모두가 애독가기도 하고 각자 독서 취향이 확연히 다르다 보니 근래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도 전혀 다른 장르가 나오고는 한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책을 한 번씩 접할 수 있으면 좋은 책도 찾고 덤으로 더 시야도 넓어지지 않을까?
이후에는 광화문까지 가는 길에 점심을 먹고, 교보문고에서 다 같이 책을 보면서 최근에 유행하는 책들, 베스트셀러, 장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덤으로 다양한 문방구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광화문 교보문고는 예쁜 책만큼 예쁜 펜과 문구를 보러 오는 곳이기도 하니까. 나는 독서대에서 늘 책을 읽다 보니 잘 몰랐는데 책이 접히지 않도록 중간에 놓는 문진이라는 물건도 생각보다 많이 팔고 있었다. 단순히 둥그런 형태부터 자동차, 비행기의 형태까지 이런 물건들은 책 읽는데 방해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문진들. 애독가들을 위한 재미있는 물건은 많구나. 오늘도 느끼고 간다.
독서모임의 끝에서 한 회원님이 최근에 서류 합격을 해 면접을 보러 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부디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만약 편집자가 되어도 우리 독서모임과 스터디모임 버리지 말아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우리 모임의 동료가 취업이 되는 일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다. 나는 여기 있는 모두가, 그리고 나오지 못했던 분들까지 전부 원하는 바를 이뤘으면 좋겠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할 때에도 모두 시간을 내서 독서모임에서 얼굴을 보면 좋겠다. 이제는 단순한 독자가 아닌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료들, 그게 우리의 최종 목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