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독서모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니 정확히는 점심에 일어났을 때 내가 어떻게 집에 들어왔나 잠깐 고민을 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전날 저녁 8시에 중학교 동창들과 모였고, 1차로 가볍게 하이볼을 몇 잔 연거푸 들이켰고, 그 후에 텍사스 홀덤도 하고 맥주 마시고 볼링치고 증류주 마시고 노래방에 가고... 그리고 집에 들어와 잠깐 눈 붙인 후 점심. 눈을 뜨니 어제 뭐 했냐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린다. 진짜 오랜만에 이렇게 마신 거 같은데.
그래도 다행인 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 입에서 술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둘, 머리가 아프지 않고 아주 개운하다. 전날 먹은 RU-21의 힘이 이렇게 위대했다는 말인가. 뭔 6000원이나 하는 알약을 먹으면서까지 술을 마시냐 욕하던 지난날의 멍청함에 반성을 하게 된다. 그나저나 일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떴다. 빈 속에 국 몇 숟가락, 밥 몇 숟가락. 과연 이거로 정상 컨디션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늦지 않기 위해서는 욱여넣는 수밖에 없다.
머리에 물을 끼얹고 나온 후에는 바로 버스에 툭. 잠이 몰려오더라도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번 선정 도서인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말해야 하고, 또 며칠 전에 있었던 강연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해서 말해야 한다. 모든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밥 몇 숟갈로 깨운 뇌를 다시금 재우지 말아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벌써부터 졸린데. 이번 독서모임은 아마 시작 전부터 가장 힘든 독서모임이 아니었을까 싶다.
혹시 다들 이 책에 나오는 학생과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참고로 저는 있습니다.
나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나왔다. 요즘 말로 특성화 고등학교지 옛날 말로 하자면 공고다. 풍기공고, 지금은 경상북도의 자랑이라 불리는 경북항공고등학교의 전신이다. 나는 그 학교가 지금의 위치에 서기 전, 아직 자리를 잡고 있을 때 학생으로 있었다. 학교가 자랑하는 항공정비과 대신 자동차과가 존재했던 시절, 지방 학생들을 일부 뽑아야 한다는 법 때문에 입학한 지방 학생들과 외지 학생들의 백분위가 50% 이상 차이가 나던 시절, 지금은 돈 줘도 안 간다는 부사관이 안정적인 직장이라 불리던 시절. 학교는 미래가 창창한 이부터 가난한 이까지 다양한 학생들을 모아 군인으로 양성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이 책에 나오는 학생들과 비슷한 사례의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모임에 나온 이들 중 일부는 진짜 이런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반문했다. 그리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 확신을 가진 목소리로 답했다.
진짜로 있어요.
공고는 취업률이 높을수록 교육부에서 많은 지원을 받는다. 그렇기에 좋은 직장, 나쁜 직장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꽂아 넣는데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대체해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악용하는 일부 사업주들이 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저임금 노동자처럼 학생들을 부려 먹는다. 그리고 이런 노동 환경에서 탈락하는 학생들은 선생들에게 요주의 인물이 되기에 그들은 이 착취의 시간을 억지로 버티며 보내게 된다.
말이 좋아 특성화 고등학교지 기틀이 잡히지 않은 학교는 아직도 과거 공고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학생들은 더 불법적이고 위험한 일자리로 내몰리게 된다. 선생들은 자신의 품을 떠난 학생들에 대해 아무래도 좋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래왔고, 앞으로도 이럴 예정이니까.
우린 그나마 기틀이 잡힌 학교였고, 군인을 양성하는 학교였기에 그런 일자리보다는 대다수가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가정의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돕지는 않아도 되는 학생의 삶과 가정에서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닌 지원을 해야 하는 학생의 삶이 크게 나뉜다. 실제 내 동기 중에는 자기가 번 돈의 대다수를 동생 학비와 집안 카드 빚 지원에 쓰는 친구가 있었다. 그들에게 미래란 사치스러운 단어와 같다. 군은 미래가 없다, 인구가 줄어든다, 바깥이 더 좋다. 물론 군이 고강도 저임금 노동 일자리보다는 낫지만 그렇다고 좋은 자리라고는 할 수 없고, 실제로 이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군을 떠나고 있지만 그들만큼은 군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가 발을 빼는 순간 지탱하는 가정이 무너지니까.
아마 이번 모임에서는 내가 말이 제일 많았다고 생각한다. 책에 나오는 예시도, 특성화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들에 대한 사례도, 저임금 노동에 몰리는 학생들의 모습도, 가장 익숙하고 가까운 삶을 산 게 나였으니까. 내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다른 분의 입으로「다음 소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고등학교 현장실습생이 겪는 고통과 비극을 다뤘던 영화. 참고로 나는 그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껐다. 주위 다른 공고 학생들이 겪었다는 일과 너무도 유사했기에 보고 싶지 않았다.
가난과 방황, 이런 시련을 딛고 일어나 예컨대 꿈이라고 불리는 것들, 행복한 가정을 꿈꾸기 위한 최소 조건들, 어떻게 해야 이런 것들을 학생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결국 학교의 역할 강화라는 다소 고리타분한 답을 꺼냈다. 하지만 이 고리타분한 답은 10년 전에도 정답이었고, 20년 전에도 정답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10년 전, 20년 전부터 이런 일들을 준비해와야 했다. 하지만 준비는 미비했고, 선생님들의 노동력에 비해 임금은 제자리걸음 수준이었으며, 이제는 선생이라는 역할 자체가 축소되었다. 24년 현재, 정부는 어떤 답을 구상하고 있을까. 어떤 답이든 모래사장에 건물을 짓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해하고 있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며 독서모임 파트는 간단히 마무리했다.
그 후에는 서로 잘 지내고 있냐는 인사부터 최근에 어떤 활동을 하고 있냐는 이야기까지 서로의 일정에 대한 스터디가 이뤄졌다. 난다 여름편집자학교 강연에 대한 이야기와 전시전을 갔던 이야기. 서평활동과 도서선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얼어있는 취업 시장에서도 서로 노력해서 취업하자고 다시금 응원하는 이야기까지.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노력하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나아가고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생각을 다시금 가져본다. 사실 당분간은 대외활동이라 할 만한 일들이 많이 없다. 가장 큰 국제도서전도 끝이 났고, 여름편집자학교 강연의 경우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해봤자 8월 말에 있는 군산 아트북페어 정도. 다들 방향성을 좀 잃을 법 하기에 이런 상황에서 다시금 돈독하게 뭉치면서 차분히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할 것이다.
다음 도서는 『생각 중독』, 특별한 주제 없이 서로 선정한 도서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내가 안건으로 제출한 도서는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였다. 원래 내가 좋아하던 책이기도 했고, 이번 여름편집자학교에서 소개된 책이기도 했기에 다른 이들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낸 안건이었는데 뽑히기에는 다른 책들이 너무 쟁쟁했다. 나는 내심 『사고는 없다』에 마음이 갔다. 특히 최근 다양한 사고 관련해서 끊임없이 정치권에서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많은 시민들의 눈길이 쏠리는 사건이 많았기에 좋은 주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는 했는데... 한편으로는 이번 주제부터 다음 주제까지 사회 쪽으로 가게 되면 너무 분위기가 진중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에 차라리 다른 책이 잘 선정되었다는 이중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튼 SF 게임』이라는 김초엽 작가의 에세이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번 국제도서전에서 소개된 도서임과 동시에 최근 전시전에서 구매했던 도서 또한 김초엽 작가의 작품임이 기억나 깊은 고민이... 아, 이번에도 버릴 도서가 없는 투표였다.
모두 들어올 때부터 오늘 날씨가 왜 이렇냐는 말을 할 정도로 심각하게 더운 날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 자리를 통해 전하고 싶다. 다음 모임은 9월 7일에 예정되어 있다. 다음에는 아마 더위가 한풀 꺾인 가을에 보게 되지 않을까. 이제 곧 하반기 취업 자리가 나오는 시즌인데 그때는 한 명씩 출판사에 자리 잡았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열심히 준비해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모임이 끝난 후에 치킨, 맥주와 함께 간단한 뒤풀이를 했다. 뭐 쓸모없지만 쓸모 있는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예컨대 연애라던지, 걱정이라던지, 상처라던지. 그러고 보면 어제저녁에 술을 한참 마실 때에도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거 같은데. 연애라던지, 걱정이라던지, 상처라던지.
이야기를 하다 가끔 말문이 막혔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한두 번은 말한 거 같은데, 다음부터는 전날에 술을 퍼마시는 일은 없도록 해야지...
쓸 글이 많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지난 글에서 써놨지만 최근 글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다. 뭐,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최근에 계속 약속이 있어서 그런데... 중학교 동창 모임, 독서 모임, 고등학교 동창 및 후배 만남, 중학교 동창과 식사, 장례식 운구, 수영장까지 일정이 계속 생기고 생겨서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겠다. 사실 오늘도 서울에서 알고 지내던 보드게임 패밀리와 만난 후 피곤한 상태로 글을 쓰고 있다. 더 다듬어야 하는데, 더 고민해야 하는데, 안타깝지만 오늘은 머리가 더 굴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내일은 또 수영장을 다녀올 거고, 그 후에는 새로운 글을 또 써야겠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자꾸 풀어내지 못하니 나도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하나하나 차분하게, 처음부터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