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 작은 소동
오늘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제 시선에서 아버지를 정의했던 첫 단어는 아마 엄격함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형제들 교육에 엄격하셨던 아버지, 다소 무뚝뚝한 반응을 보이셨던 아버지, 형이 심하게 무례한 행동을 했던 날 방에 끌고 들어가 매로 엄하게 다스리시던 아버지. 저는 아직도 그 시절 형의 울음소리와 어머니가 억지로 키운 TV소리, 그리고 이불속에서 두려워하던 저 자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단어는 예의였습니다. 아버지는 늘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사람이 되어라.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라. 다른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말씀하셨죠. 제가 부모님과 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아버지는 언제나 나이가 많은 어르신께 자리를 먼저 양보해드리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성장하면서 이제는 저희가 먼저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시는 분이셨고요. 그 외에도 타인에게 언제나 존댓말을 사용하고 다른 이들이 불쾌하지 않도록 말을 다듬어서 하시는 버릇, 지금까지도 제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마지막 단어는 가족입니다. 엄격함, 예의, 어린 시절 들었던 회초리, 이 단어들을 조합하면 으레 나오는 묶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부장입니다. 아버지는 벌써 예순을 한참 넘긴 나이시고 그 시대에 태어나신 부모님들이 으레 그렇듯 아버지도 가부장적인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밥상 앞에는 가장 먼저 앉아 계시는 분이셨고, 밥상 위부터 대화 자리까지, 가족들 간의 규율과 위계질서가 형제들까지 조율하고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가족은 화목했습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형제들과 친목을 다지기 위해 늘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고, 저녁 시간이면 카드를 가져와 같이 게임을 권하셨거든요. 카드를 넘기면서 대화를 나누고, 역사 프로를 함께 보면서 아는 이야기를 풀어주고, 야구를 보면서 함께 응원하고... 아버지는 알게 모르게 가부장적인 규율을 유지하면서도 형제들의 교육, 가정의 화목을 이끄는데 일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머니의 자리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누가 어머니를 도와드렸을까요.
며칠 전부터 냉장고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며칠 전은 아니고 한 달 전부터. 냉동실의 냉기가 부족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었지만 그때 잠깐만 그랬을 뿐 다시금 얼음이 멀쩡히 얼었기 때문에 그때만 잠깐 그랬겠거니, 혹은 터치패널을 잘못 작동해서 문제가 잠깐 생겼겠거니 하고 넘긴 것이다(사실 여기에는 내 문제도 있었다. 내가 근래에 요리를 하다가 터치패널을 실수로 여러 번 만졌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내 잘못이라고 말하면서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추석 직전에서야 발생했다.
기온이 35도 근처를 육박하며 다시금 여름이 온 며칠 전, 냉장고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예 냉동 기능이 되지 않을 정도로 냉기가 부족하고 냉장실도 냉기를 아예 잃어버릴 정도로. 가전제품은 늘 더위가 절정일 때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음식을 가장 많이 보관하는 명절, 추석에 냉장고가 죽어버렸으니. 어머니는 급히 AS를 불러보자고 이야기를 꺼내셨고 밤에는 AS를 받지 않냐, A사같은 작은 브랜드를 써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니냐, 몇 번에 걸쳐서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다들 피로감이 더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부른 AS센터 수리기사의 한 마디, 고치려면 추석 지나고 주말쯤에야 되겠는데요.
거기서부터 고치냐, 새로 사냐의 말다툼이 나와 어머니 사이에서 계속 발생했다. 삼십만 원이면 고치는데 고치고 더 쓰는 게 낫지 않냐. 지금 5년, 6년 썼는데 뭘 또 새로 사냐. 이거 한참 더울 때만 이러는 거고 지금 AS기사가 왔다 가면서 청소하고 나니 냉기가 좀 돌아오지 않았냐. 그리고 김치냉장고도 잠깐 이용하면 충분하지 않겠냐. 추석은 이대로 버티자. 지극히 돈과 관련해 이성적으로 말하는 나와 추석을 어떻게 이런 상태로 버티냐. 부품을 갈아 끼운다고 또 금방 고장이 안 난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 A사같은 작은 브랜드에서 사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니냐. 이번 기회에 사자. 이야기하는 어머니.
사실 고쳐서 쓰자는 말 자체가 효자가 할만한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어머니는 급하게 산 냉장고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오래 쓰다 보니 냉장고 칠이 벗겨진다면서 몇 번 내게 투덜거린 적이 있으셨기 때문에. 나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로 치부할만한 불만사항이 아니었던 거겠지.
이 싸움은 결국 밤을 거쳐 아침에도 이어졌고 아버지의 중재 끝에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싸우냐. 냉장고 까짓 거 사면되지 않겠느냐. 오늘 하이마트 갈 거 생각하고 벌써 준비했다. 이번 기회에 예쁜 걸로 하나 사자. 나와의 다툼에 기분이 상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홀로 남은 대로 집을 청소했고 남은 시간 잠깐의 정적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는 냉장고를 고르신 다음 집에 왔다가 머리를 하러 가셨고 아버지는 못 먹은 늦은 점심을 나와 함께 드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이야기는 내 과거를 관통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네 말이 다 맞다. 삼십만 원주고 고치면 5년, 10년 또 쓸 거고 문제없을 거다. 하지만 너네 엄마는 주위에 자매도 있고, 자매 사는 모습도 봤음에도 거기에서 봤던 예쁜 가전들 우리에게 평소에 한 마디 하소연도 안 하는 여자다. 분명 마음에 들지 않아도 몇 년간 써왔던 거고 이번 기회에 바꾸고 싶었던 거뿐이다. 남자가 보는 가전과 여자가 보는 가전은 다르다. 이성적인 이야기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감성적인 이야기를 뺄 수는 없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이번 기회에 바꾸자고 하는데 못 해줄 게 뭐 있겠냐.
어머니가 늘 이렇게 가구 배치를 바꿔보고 싶다, 여기에 커튼을 달아보고 싶다, 이야기할 때 군말 없이 하시던 아버지는 언제나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으리라. 단지 그걸 바꾸는데 백만 원이라는 돈이 추가로 드니까. 나는 그 돈이라는 거에 아직도 엮여 있는 거겠지. 어머니의 짜증에도 화내지 않고 때론 웃으면서, 때론 무뚝뚝하게 넘기시던 아버지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형제들 사이의 관계 조율이 아니라 가족이란 틀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 나름대로의 방향으로 살아오셨다. 거기에서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감성, 혹은 어머니의 의견이라는 걸 언제나 지켜주는 방향을 보여주셨고 반대로 나는 그러지 못했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 생각이 났다. 연애를 하던 시절, 나는 언제나 돈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실용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이렇게 하면 더 실용적이고 좋을 텐데? 이야기를 꺼내고는 했다. 그게 그 사람에게는 내 싫은 점이었고 자기를 공감해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었지. 그러고 보면 최근에 전기료가 삼만 원 나왔다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는 동생에게 아버지가 쫌팽이도 아니고 여름에 삼만 원 가지고 뭘 그러냐, 에어컨 틀고 집에서 시원하게 있는 게 당연히 낫다고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쫌팽이라는 말이 나를 향하는 말 같아서 아직도 반성하게 된다.
새 냉장고는 내일이면 온다고 한다. 이제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헌 냉장고는 어디론가 팔려가겠지. 사실 백만 원으로 어머니의 행복을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늦게나마 생각해 본다. 내일은 새로 올 가족인 냉장고를 맞이하느라 바쁘겠네.
짧은 시간 휘뚜루마뚜루 대충 끄적여서 써본다. 다음 주부터 추석인데 휴일에는 검도 도장을 열지 않는다고 하니... 불행하다. 집에서라도 몸을 풀면서 추석을 보내야지.
방금 전에 도서관에서 『오늘 밤 이 세계에서 사랑이 사라진다해도』가 도착했으니 빌리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대체 예약기간을 얼마나 지나서 반납한 건지. 그래도 다행히 반납을 했다는 연락이 왔으니 이번 주말에는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추석에도 읽을 책이 풍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