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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산문화재단 Nov 15. 2021

vol.14 가치의 저울질

부산문화재단 

창의예술교육 랩

 

vol.14  가치의 저울질                         



  부산문화재단의 2021년 <창의예술교육랩 지원사업>은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문화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콘텐츠 모델을 연구‧개발‧실행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작년 AI(인공지능) 기반의 과학기술과 지역문화예술인 부산농악을 접목하여 빚어내어 <AI 농악>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면 올해는 이를 교육 현장에 접목, 확산시킬 것입니다. 이에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하여 모였습니다. 브런치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에듀테크(edutech)를 구현하는 지난한 과정이 어떻게 나아가고 기록되는지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부산문화재단은 시민 여러분의 새로운 사고를 일깨우고 행복을 제공하는 데 보탬이 되겠습니다.


이미지 1 <커리어스 게임>

    

 

  커리어스 게임은 한때 외국에서 유행하는 보드게임입니다. 시작하기 전 플레이어는 보유한 점수 200점을 사랑, 명예, 돈 등의 가치에 분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사위를 굴려 말을 이동시키는데요. 도착한 지점이 사랑과 관련된 곳이라면 플레이어는 최초 사랑에 분배한 만큼 점수를 얻습니다. 반대로 사랑을 부정하며 명예나 돈에 투자한 플레이어라면 단 1점도 얻지 못하겠지요.  


  커리어스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이지만 우리네 인생의 일면을 닮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성공 내지는 행복의 척도로 삼고 있나요? 그리고 그 가치를 각각 얼마큼씩 분배하고 있나요?     




  부산문화재단 창의예술교육 랩(이하 창의랩)은 작년 기획한 <AI 농악>을 학교 현장으로 확산하고자 합니다. 부산농악과 AI의 접목이라는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동시에 많은 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보편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지요. 고유한 정체성과 보편성, 그리고 현실성까지. 마치 커리어스 게임에서 가치를 분배하듯 한정된 시간 속에서 창의랩은 저울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그램을 가장 쉽게 확산시키는 방법은 기존의 틀을 답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자칫 <AI 농악>의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장 오래된 것과 최신의 것을 접목해 새로움을 만들어내자는 <AI 농악>의 정신은 너무나도 독보적이어서 각각의 전문가를 두지 못하는 학교 현장에서 그대로 살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각각의 가치를 적절한 선에서 섞어 균형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연구원 모두 조바심이 납니다.         



창의랩 연구진들



최윤정   저번 회의에서 말씀드린 대로 프로그램의 난이도를 구체적으로 나누어보았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알기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이해하기고요. 세 번째 단계는 체험하기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실제로 제작해보기입니다.      


남서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최윤정   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부산 농악의 배경과 특징을 알아볼 것이고요. 두 번째는 언플로그 코딩의 원리를 이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어요. 세 번째는 실제 로봇을 활용한, 피지컬 블록코딩을 통해 부산 농악 콘텐츠를 체험할 것이고요. 네 번째에는 인공지능과 부산 농악 콘텐츠를 접목하여 로봇을 직접 코딩해보려고 합니다.      


이지훈   학교 보급 문제를 같이 살펴봐야하지 않을까요?     


최윤정   네, 컴퓨터를 자유롭게 쓸 수 없는 학교가 굉장히 많다는 점이 걱정입니다. 특히 초등학교는 교실에서 컴퓨터를 쓰기가 상당히 어렵고요. 그렇다고 컴퓨터실에서 우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쉽지 않을 듯해요. 핸드폰을 소지하지 않은 아이들도 제법 있어서 부산 농악을 언플로그드 코딩 활동으로 접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윤정 연구원이 말하는 언플로그드 활동이란 컴퓨터 없이 컴퓨터 과학의 개념과 사고력(Computational Thinking)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컴퓨터 대신 놀이 중심으로 이론을 학습하면서 컴퓨터 과학의 기본을 이해하는 교육이지요. 

  언플로그드 활동은 단순한 놀이에만 그칠 수 있는 부분을 충분히 경계한다면 컴퓨터 과학 개념을 아주 쉽게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데요. 컴퓨터로 인한 아이들의 집중력이 분산되지도 않고, 간단한 도구로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입니다. 그래서 저학년부터 수업이 가능하지요.          



발표 중인 최윤정 공동연구원



최윤정    레벨 1은 부산 농악의 배경과 특징을 아는 단계라 말씀드렸는데요. 부산 농악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놀이를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전체 농악을 먼저 다루고 그 다음 농악의 구성을 배우고 지역의 차이도 살펴보는 것이지요. 제가 판단하건대 악기, 장단, 진법, 상무 이 네 가지가 농악의 주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해요. 그런데 이 농악 단어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카드 놀이 형식으로 농악 언어를 배우면 어떨까 해요. 

            레벨 2는 언플로그 코딩과 부산 농악을 엮어 보드 게임 형태로 만들면 어떨까 해요. 예컨대 주사위를 던져 노란색 1이 나오면 각각 장소마다 연결해 앞으로 나아가는 구조인데요. 학생들이 무척 재밌어하거든요. 사실 그런데 재미와 별개로 이것들이 전부 언플로그 코딩과 관련되어 있어요. 저번에 같이 오조봇을 살펴보았지요? 색깔로 이루어진 선을 학생들이 직접 표현하고 그 선을 따라 오조봇이 따라가는 방식도 재밌을 것 같아요.     


연구진    오조봇 말고 다른 로봇은 어떤가요?     


최윤정    사실 우리 프로그램에 더 걸맞은 쪽은 햄스터 로봇이예요. 이 로봇은 엔트리(entry)로 블록 코딩이 가능하고요. 자가 센서가 있는데 특히 음성 인식 센서가 있습니다. 장구 소리를 들으면 왼쪽으로 움직인다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장애물이 있으면 부딪치기 전에 멈추거나 우회하는 근접 센서가 있어요.      

            엔트리는 네이버 커넥트재단에서 개발하고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교육 플랫폼을 가리킵니다. 학교에서의 코딩 교육 플랫폼을 전제로 개발한 만큼 현재 다수 학교에서 실제로 교육에 활용하고 있지요. 햄스터 로봇은 바로 이 엔트리를 활용해 가지고 놀 수 있는 로봇이라는 것이지요.      

햄스터 로봇

 


김덕희    발표 잘 들었습니다. 저도 햄스터 로봇을 떠올렸거든요. 우리가 작년 활용한 오리 로봇을 바로 이 햄스터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을 듯해요. 악기를 두드려서 낸 소리에 맞춰 오리 로봇이 장애물을 피하는 것이지요. 악기 소리마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코드를 미리 심어놓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장단을 배우는 코너도 고민해보았어요. 우리가 작년에는 발로 터치해 장단을 맞췄잖아요? 올해는 발이 아니라 손으로 터치하는 방식으로 아두이노와 센서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생각해본 것은 농악에서 옷을 입는 순서가 중요하더라고요. 바로 이 의상을 입는 순서를 가지고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 해요. 부산농악에서 조끼가 파란색이더라고요. 이런 색깔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RFID 리더기를 쓰면 어떨까요? 이 센서는 우리가 교통카드 찍을 때 인식하는 그 센서인데요. 색을 인식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정해진 위치에 옷을 걸면 농악이 나오는 그런 그림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최윤정    그런데 햄스터 로봇 코딩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요. 예를 들어 저 멀리 있는 악기채를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한다고 하면, 앞으로 가서 집게를 펼쳐서 사물을 잡은 후 다시 뒤로 빠지고 코너를 돌고……. 별로 안 어려워 보이지만 보기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요. (웃음)     


김태희    맞습니다. 제가 많이 해봤거든요. 하나하나 하려면 생각보다 잔잔한 일이 많습니다. 세심해야 하고요. 로봇이 섰다가 잠깐 기다리고 또 뒤로 빠지고 이런 걸 일일이 지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이렇게 일일이 지시하다 보면 절차적인 사고능력을 키울 수가 있어요. 특정 공간에 가려면 일단 어느 지점까지 갔다가, 뭔가에 부딪치기 전에 올라가고, 타고 내려오고, 이런 걸 일일이 지시자가 고려해야한다는 거죠. 어떤 순서여야 문제를 풀 수 있는가에 대한 학습입니다.         



김덕희 공동연구원



김덕희    그리고 하나 더 게임을 말씀드리자면, 꿩을 찾는 게임을 구상했는데요. 컴퓨터가 꿩을 찾을 수 있도록 아이들이 분류 기준을 정하는 것이지요. 분류는 엄청 많잖아요? 생물과 무생물, 생물도 상상속의 생물과 실제 생물이 있겠고요. 포유류, 조류 등……. 예시를 몇 가지 주고 이 중에서 네 가지를 골라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컴퓨터가 꿩을 찾는 건 어떨까요?      


김태희    분류 컨셉 재밌네요. AI를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에 과연 컴퓨터가 사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인지하도록 정보를 줄 것이냐 하는 그런 측면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예컨대 회사가 있다면 사원이란 무엇인가, 어떤 데이터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러면 이제 이름이나 주소, 성별, 직급 등 몇 가지 데이터로 개별적인 사원을 분류하는 것이지요. 다분히 철학적입니다. 이런 사고 체계를 확립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으로 하여금 유도해야겠습니다.

            오늘 나온 아이디어를 접하고 나니, 우리가 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면서 방향을 추려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내용이나 프로그램, 콘텐츠만 내세울 게 아니라 근본적인 지점과 문제를 풀어나가는 교육 방향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안하자면, 로봇 이야기를 정리해야 할 텐데요. 예컨대 시장에 이미 있는 기성 로봇을 사용한다면 학교마다 로봇을 구입하는 데 한계가 있을 텐데 과연 바람직할까 의문이 듭니다. 근데 또 학교 현장에서 제작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누가 만들어서 공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제작도를 공개하는 것이 가장 좋을 텐데 올해 그러한 교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지 살펴봐야겠고요.           



정만영 공동연구원



정만영    저 역시 오조봇 등 기성 제품을 마냥 활용하는 게 긍정적으로만 보이진 않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들어요. 창의랩에서 우리가 스스로 연구해서 뭔가를 만들면 그걸로 확장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요?     


이지훈    그렇기는 한데 너무 문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요.     


정만영    확산과 더불어 어떤 방식으로 변주해야 할지도 같이 고민해야 할 듯해요. 사실 부산 농악도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국에서 농악하던 사람이 다 모이면서 새로운 농악으로 꽃핀 것 아니겠습니까. 부산농악이 뭔지 살펴보면 이런 고유한 특징이 있는 거지요. 부산농악과 AI, 서로 시간적 간극이 어마어마한 이 두 개념이 만나는 게 우리 창의랩 프로그램인데요. 언젠가 이지훈 연구원이 말씀하신, ‘창조가 되려면 무엇과 무엇을 연결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남서아    기성 제품을 사용하면 할수록 창의랩만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없다는 점에 깊이 공감해요. 다만 일정이 난관인데 작년 프로그램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여전히 갈피가 잡히지 않는 것 같아요. 올해 목적 중 하나가 보급이니까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이 더 필요해보여요.     


김태희    오늘 새로운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습니다. 다 의미가 있고 좋은 말씀입니다. 분명 작년 것을 활용했을 때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같이 검토해봐야겠고, 아울러 기성 로봇을 한번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남서아    필요한 물품을 알려주시면 최대한 빨리 구해보겠습니다.     


연구진   그러면 오조봇과 햄스터 로봇을 한번 테스트해보고 싶습니다.          




  저울질을 끝마치지 못한 채 이날 창의랩 회의가 끝났습니다. 섣부르게 무엇 하나를 우선시하지 못하는 까닭은 프로그램을 대충 만들고 싶지 않은 창의랩 연구진의 의지 때문일 것입니다. 근본적인 사고 능력을 키우면서 동시에 저마다의 학교 현장에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요. 다음번에는 기성 로봇을 직접 살펴보자는 합의를 끝으로 연구진은 또 각자의 책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과연 어떤 영감과 직관을 얻게 될 것인지, 다음 회의도 기대해주시고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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