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삼랑성에서 마주한 웅장한 침묵

시간의 문을 찾아서

by Black and Navy

강화도 삼랑성의 이른 아침, 자욱한 안개가 세상을 덮은 날 그곳을 찾았습니다. 과거 정족산성이라 불리던 이 오래된 성곽은 오늘 나에게 단순한 유적지가 아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문이 되어주었습니다.


안개라는 막이 걷히며 나타난 다른 세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시야를 가로막은 짙은 안개는 마치 세상의 소음을 모두 흡수한 듯 고요했습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공기의 질감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고, 그 자욱한 장막 너머로 '둥' 하고 거대한 성문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개 속에 신비롭게 서 있는 삼랑성 문의 전경]


안개는 멈춰 있지 않았습니다. 성벽을 따라 흐르는 안개의 움직임은 마치 견고한 돌덩이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듯했습니다.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성벽을 바라보며, 나는 현실의 경계를 넘어 다른 시간대로 발을 들이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천 년의 울림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안개 사이로 드문드문 고개를 내민 소나무들이 마치 이 성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보였습니다. 흙길을 따라 올라갈수록 안개는 더욱 깊어졌고, 어느 순간 주변의 모든 풍경이 아득해지며 둥근 터널 같은 길이 열렸습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기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멈춰버린 듯한 안개 속에서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소리들.


무거운 돌을 옮기며 내뱉는 거친 숨소리와 노동요.

정으로 돌을 쪼며 모양을 잡는 날카롭고도 일정한 타격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성을 쌓아 올리는 수많은 민초의 외침.

그것은 단순한 환청이 아닌, 이 땅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의 박동이었습니다. 적으로부터 가족과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그들의 긴장감과 당당함이 안개를 타고 전해져 왔습니다.


시간의 문을 나서며 얻은 당당함

삼랑성의 축조 현장을 마음으로 바라보며 깨달았습니다. 이 거대한 성벽은 단순히 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 극복 의지와 호국 정신,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강인한 마음을 쌓아 올린 결과물이라는 것을요.


시간의 문을 돌아 다시 현재로 돌아온 지금, 내 손에는 보이지 않는 선물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성벽을 쌓아 올렸던 그들의 강인함과 당당함입니다. 오늘 내가 만난 삼랑성의 안개 길은, 나에게 오늘을 살아갈 새로운 용기를 건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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