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을 찾아서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서해대교를 건너면, 충청남도 당진의 삽교호 관광지가 우리를 반깁니다. 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예전의 기억과는 달리 깔끔하게 정돈된 전형적인 관광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진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된 이곳에서 저는 매끈하게 닦인 데크 길을 따라 현대적인 정취를 느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사실, 이렇게 새롭게 단장된 곳에서는 과거의 흔적이나 '시간의 문'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정해진 위치에 있고, 정해진 표정으로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매끄러운 데크 길의 끝에서, 저는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썰물로 인해 속살을 드러낸 서해 갯벌은 얼핏 보면 정지된 화면 같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고정하면 그 안의 움직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끔 정적을 깨며 날아드는 갈매기의 날갯짓, 그리고 저 멀리서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바다의 물결은 이 공간이 결코 멈춰 있지 않음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강렬한 태양 아래 흑백으로 대비되는 삽교 갯벌의 장엄한 풍경.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던 찰나, 묘한 감각이 저를 덮쳤습니다. 흑백의 프레임 속에서 하늘은 마치 개기일식이라도 일어난 듯 어둠이 내려앉았고, 바다의 움직임조차 숨을 죽인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제가 서 있던 현대의 데크는 사라지고 새로운 '시간의 문'이 열렸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막막한 바다 위, 조그만 나뭇배 한 척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곳에선 은은한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어부들이 박자에 맞춰 그물을 끌어 올리는 모습은 마치 정교하게 연출된 축제의 한 장면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재현된 연극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코끝을 훅 끼고 들어오는 비릿한 바다 내음, 그리고 조금 전의 정적인 공기와는 다른 생생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땀방울과 바다의 짠기가 뒤섞인 그들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은,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숭고한 노동의 활력 그 자체였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관광지의 풍경 너머에서 제가 만난 것은, 박제된 풍경이 아니라 거칠게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이었습니다. 갯벌은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제 안의 것들을 키워내고, 어부는 그 순리에 몸을 맡기며 삶의 궤적을 그려 나갑니다.
시간의 문을 열고 마주한 그 광경은 제게 묻는 듯했습니다. 당신의 시간은 지금 어떤 냄새를 풍기며 흐르고 있느냐고 말이죠. 비릿하지만 정겨운 그 바다 내음을 기억하며, 다시 현실의 데크 길로 발을 내디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