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을 찾아서
충청북도 음성군, 고요한 마을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앞에 섰습니다. 머리 위로 묵직하게 내려앉은 하늘과 그 사이를 가르는 비행운이 마치 현실과 과거를 가르는 틈새처럼 느껴집니다. 일상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언덕을 오르는 순간, 주변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서늘한 공기가 옷깃을 스칩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시간의 문'이 제 앞에 놓인 듯,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역광을 받아 검은 실루엣으로 드러난 성당의 첨탑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비행운, 그리고 우측의 소나무 가지]
성당의 거대한 붉은 벽돌 벽에 손을 얹자, 차가운 질감 너머로 뜨거운 기운이 전해져 옵니다. 그 순간, 눈앞의 풍경이 일렁이며 100여 년 전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이곳은 단순한 종교적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명성황후가 피신했던 아픔의 터이자, 일본군의 주둔지로 사용되었던 치욕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두운 역사 위로 한 푸른 눈의 사제가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임 가밀로 신부입니다. 그는 이 땅을 되찾아 성모님께 봉헌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밤낮없이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의 간절한 목소리가 바람결에 섞여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시간의 문 안쪽에서 바라본 성당은 장엄하다 못해 비장합니다.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뻗은 고딕 양식의 첨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뚫고 올라가려는 굳건한 의지처럼 보입니다. 1930년에 완공된 이 견고한 성전은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폭풍우도 견뎌냈습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제대 중앙의 성모상이 보입니다. 전쟁 당시 7발의 총탄을 맞고도 부서지지 않았다는 그 기적의 성모상입니다. 총탄 자국은 상처가 아니라, 이 공간이 지켜낸 믿음의 훈장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포탄이 떨어지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려 했던 옛사람들의 긴박한 숨소리가 기둥 사이사이에 스며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측에 드리운 소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다시 현실의 시간을 알립니다. 시간의 문을 다시 넘어 현재로 돌아오는 길, 성당의 실루엣은 여전히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습니다. 문을 닫고 나오는 발걸음은 들어갈 때보다 한결 무거우면서도 동시에 평온합니다. 백 년의 세월을 견딘 벽돌 하나하나가 건네는 위로 덕분일 것입니다. 내 손목시계는 변함없이 현재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100년의 기도가 남긴 깊은 울림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과거를 박제해 놓은 곳이 아니라, 간절한 기도가 시간을 초월해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닿고 있는 살아있는 성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