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행궁, 눈 덮인 담장 너머 1795년의 문을 열다

시간의 문을 찾아서

by Black and Navy

차가운 겨울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오후, 복잡한 도심의 소음이 서서히 잦아드는 지점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수원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를 지나 마주한 풍경은 마치 현실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마당과 저 멀리 보이는 기와지붕의 곡선,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겨울 햇살은 이곳이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과거로 통하는 거대한 '시간의 문'임을 암시하는 듯했습니다. 오늘 저는 이곳에서 일상의 시계를 잠시 내려두고, 200년 전 조선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려 합니다.


[앙상하지만 강인한 가지를 뻗은 고목과 그 사이로 비치는 햇살, 눈 덮인 행궁의 담장이 고요한 시간을 품고 있다.]


누군가가 먼저 남긴 발자국을 따라 조심스럽게 마당 안쪽으로 들어섰습니다. 뽀드득거리는 눈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순간, 거대한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 눈부신 빛무리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 찰나, 주변의 공기가 달라져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들리던 도시의 자동차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웅장한 취타대의 연주 소리와 수많은 사람의 환호성이 귓가를 메웁니다. 저는 어느새 1795년 을묘년, 정조 대왕의 행차가 당도한 그날의 화성행궁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화려하고도 장엄했습니다. 조선 시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행궁답게 수많은 관료와 군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있었고, 봉수당에서는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만들어낸 이 공간은 단순한 왕의 임시 거처를 넘어, 백성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왕의 위엄이 서린 정궁의 형태를 갖추었으면서도, 곳곳에서 느껴지는 들뜬 활기는 이곳이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임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저는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저 나무는 정조 대왕의 효심 어린 눈빛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병원과 학교로 사용되며 행궁이 처참하게 훼손되던 아픔과, 현대에 이르러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의 끈질긴 생명력 또한 묵묵히 지켜보았겠지요. 나무 둥치를 쓰다듬자 거친 껍질 너머로 역사의 맥박이 쿵쿵거리는 듯했습니다. 과거의 영광과 상처를 모두 품어 안은 채, 나무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1795년의 바람을 현재로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불어온 매서운 찬바람에 퍼뜩 정신을 차리자, 왁자지껄하던 환청은 사라지고 다시 고즈넉한 겨울 행궁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화려했던 깃발 대신 앙상한 나뭇가지가, 수많은 인파 대신 하얀 눈 위에 찍힌 몇 개의 발자국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시간의 문은 닫혔고 저는 다시 2026년의 오후로 돌아왔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힘든 묵직한 울림이 남았습니다.


행궁을 빠져나오는 길, 무심코 손목시계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늘은 겨우 한 시간을 지났을 뿐이지만, 제 마음의 시계는 수백 년의 세월을 관통한 듯 깊고 아득해져 있었습니다. 문을 닫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지금, 등 뒤로 비치는 햇살이 마치 정조 대왕이 건네는 따뜻한 작별 인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수원 화성행궁은 그저 옛 건물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를 그 찬란했던 기억 속으로 데려다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살아있는 시간의 통로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죽주산성 성곽 길, 안개 너머 고려의 시간을 마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