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을 찾아서
일상의 틈새에서 발견한 수면의 문 도심의 소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흩어지는 늦은 오후, 빽빽한 빌딩 숲을 등지고 걸음을 옮깁니다. 매일 반복되는 팍팍한 일상에 지쳐갈 때쯤, 나를 부르는 듯한 고요한 물결을 따라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오늘 저의 기행문은 현대의 스카이라인과 자연이 맞닿은 경계, 수원 축만제에서 시작되는 짧고도 깊은 시간 여행에 대한 기록입니다. 저수지 어귀의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 아래로 들어서는 순간, 주변의 차가운 공기가 한결 부드러워지며 귓가를 때리던 자동차의 엔진 소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습니다. 바람이 잔잔한 수면을 스치며 만들어낸 찰나의 윤슬은 마치 다른 세계로 향하는 비밀스러운 문처럼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1799년의 바람이 불어오는 평온의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그 투명한 수면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눈앞을 가득 채웠던 현대의 건축물들은 아지랑이처럼 흩어지고 눈부시게 맑은 하늘과 너른 들녘이 펼쳐졌습니다. 1799년, 조선 정조 임금의 애민 정신이 깃든 시간으로 온전한 타임슬립을 한 것입니다. 이곳의 시계바늘은 바깥세상보다 한참이나 느리게 흐르는 듯했습니다. 화성 서쪽의 거대한 국영 농장인 서둔으로 흘러가던 맑은 물줄기는 척박한 땅을 적시고 백성의 고단함을 달래는 생명수 그 자체였습니다.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간절한 염원과 풋풋한 흙내음이 축만제의 젖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쳤습니다.
[고요한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이 천 년의 찰나를 잇습니다.]
물가에 서서 저수지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섬을 바라봅니다. 수면은 거울처럼 맑아 섬의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고스란히 비춰내고 있습니다. 새 한 마리가 고즈넉한 평화로움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당대 최고의 토목 기술로 다져진 단단한 둑방길을 걷노라니, 찰랑이는 물소리가 2백여 년 전 농부들이 불렀던 풍요의 노래처럼 귓가에 잔잔히 울려 퍼집니다. 치열했던 현대의 삶에서 벗어나, 과거의 깊고 정적인 시간에 온전히 안겨 위로받고 정화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문을 닫으며, 다시 스며드는 현재의 온기 그 고요한 풍경 속에 얼마나 머물렀을까요. 별안간 수면을 차고 오르는 철새의 푸드덕거리는 힘찬 날갯짓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눈을 한 번 깜빡이자 과거의 아스라한 풍경은 수면 아래로 스며들듯 사라지고, 다시 저 멀리 현대적인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철새들의 쉼터로 변모하여 나뭇가지가 희게 물든 섬의 모습은, 이곳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오늘날 수많은 생명을 품어내는 도심 속 생태의 요람임을 조용히 일러줍니다. 예로부터 서호낙조라 불리며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름다운 석양빛이 현대의 빌딩 위로 저물어갑니다. 수면이라는 시간의 문을 닫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내 손목시계의 시간은 들어갈 때와 별반 다름없이 째깍이고 있었지만 마음의 시간은 훌쩍 세기를 건너온 듯 조금 더 깊어지고 평온해져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