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척 맨지오니의 ‘Fun and Games’를 들으며
그런 음악이 있다. 듣고만 있어도 연주자의 표정이 떠오르는. 척 맨지오니야 말로 벅찬 표정을 지닌 아티스트다. 톤암을 LP에 올려둔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줏빛 나팔바지에 붉은 셔츠를 입고 천정에 닿을 듯 높이 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입을 쩍 벌린 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은 해맑기 그지없다. 아마도 플루 갤 혼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악기에 입을 맞춘 채 미소와 숨과 영혼을 불어넣어 멜로디를 솟아나게 한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얼굴을 뒤덮은 맨지오니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아직도 장난질(Fun and Games)을 꿈꾸는 중이다.
그의 대표곡 ‘Feel so Good’에 중독된 사람들은 재즈의 힘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때때로 재즈는 잠자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밖으로 나가 자연과 만나게 돕는다. 바람과 강물과 구름 사이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고, 그래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이슬에 풀이 젖고 햇살에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선명한 아침에 듣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선사할 것이다. 음악은 죽어가는 모든 감각을 살려낸다. 아마도 그 감정을 언어로 옮기자면 ‘Feel so Good’이 아니겠는가.
이 앨범의 대표곡인 ‘Give it all you got’은 KBS FM에서 황인용 아나운서가 진행한 영 팝스의 시그널 음악으로도 향수를 자아내지만 무엇보다 1980년 뉴욕의 레이크 플래시드 동계올림픽의 주제곡으로 알려져 있다. 도발적인 제목이 선사하는 기분 좋은 긴장감은 베이스의 아르페지오, 고양된 톤을 살려주는 기타 연주, 중후한 색소폰과 부드러운 플루 갤 혼의 풍부한 사운드가 뒷받침되어 한층 조화로운 재즈의 맛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이 음악의 귀한 순간은 연주자들이 서로 약속한 듯 소리를 멈추고 숨을 쉴 때다.
숨을 쉬어야 하는 순간을 정확하게 아는 음악은 언제나 훌륭하다. 악기들이 잠시 멈추고 숨을 쉬는, 그 찰나가 가져다주는 긴장과 이완의 향연에 멜로디의 색이 선명해진다. 이는 마치 잔잔한 물가에 막 닿은 물수제비처럼, 통통 튀어 오르는 다음 순간을 즐겁게 예감한다. 돌이 스친 물의 표면에 파동이 일고 그것은 연주자가 잠깐 쉰 숨의 여운이라는 것을 청중은 안다. 들이마셔야 뱉을 수 있다는 당연한 숨의 원리는 모든 관악기의 기초다. 그 사실이야 말로 음악의 진리라고 노래하듯 말하듯 미소 짓는 척 맨지오니에게서 우리는 행복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잔잔한 물가에 납작하고 매끈한 돌멩이를 던져 물수제비를 뜨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음악은 언제 시작되었고, 왜 시작되었는가. 음악이라는 구체적이고도 추상적인 예술의 형태를 구연한 최초의 일을 떠올리자면 그것은 바로 웃음이 아니었을까. 까르르, 깔깔깔, 호호호, 히히히, 헤헤헤, 하하하, 우와하, 이야호, 푸하하, 키키키, 크크크, 힉힉힉, 갈갈갈. 아이의 입가에 피어오른 작은 웃음소리가 엄마와 아빠의 미소로 전달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음악이 된다. 반대로 고통과 통증의 호소가 자신을 비롯한 타인의 눈물을 자아낸다면 그것 역시 음악이 된다. 음악은 결국 나와 타인이 가진 감정의 이음새에 소리가 스민 마음의 형태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 위로 조약돌 하나를 던져보자. 포말이 되어 퍼지는 물빛의 소리가 들리는가. 수면 위로 통통 튀어 오른 작은 돌멩이는 결국 바다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다. 수면을 이는 물결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육지에 놓인 돌 하나가 사라지고, 바다에 돌 하나가 쌓이게 된 셈이다. 바다는 제 안에 가라앉은 돌멩이의 부피만큼 육지를 적실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가진 다른 돌 하나를 육지로 밀어낼 것이다. 바로 그때, 파도가 치거나 돌이 구르는 그 순간이 지구를 움직이게 한다. 당신은 과연 어디까지 들을 수 있는가. 지구는 여전히 우주를 돌고 있고, 척 맨지오니는 턴테이블 위를 신나게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