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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방이 Apr 21. 2024

길고양이를 보다 쓴 시

어느 날, 어느 밤, 어느 골목길에서



영감

    우리 집 근처 골목길에 자주 보이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가끔 가깝게 만날 때면, 고양이를 쓰다듬곤 한다. 

photo by_윤방이


   어느 날 밤 골목길에서, 오랜만에 만난 고양이가  멀리 투덜투덜 지나가더라. 오늘 하루가 지쳤는지 고개는  숙인 , 꼬리는 시무룩해진 . 고양이 멈추게  곳은 쓰레기더미 앞이었다. 꼬리를 바짝 세우고선 열심히 무언가를 찾는구나.


   심각해진 시인은 어느새 집에 도착하고, 아주 조용히 시를 쓴.






  길고양이

                     윤방


오늘도 나는

사람들 틈을

피하며 살고


겨우 버텨낸 여기 길끝에서

겨우 찾아낸 나의 배부름은

누가 버려낸 작은 쓰레기들






   

시를 쓰는 삶

  

   마음이 너무 약해진 날 시인은 골목길 고양이를 만난 것이다. 고양이를 안쓰럽게 여기던 시인은 야밤에 안쓰러운 자신을 마주한다. 세상을 겨우 피해 돌아온 내 집에서 외로운 스스로를 발견하고 시인은 한없이 조용해진다. 마음의 힘이 약해진 시인이 쓴 시는 꽤나 슬플지 모른다. 외로운 인생에 대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그 현상 그대로 놓여있는 글자국들이 뚝뚝 끊겨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역꾸역 스스로의 안쓰러움을 글자로 눌러 담는다. 길고양이의 안쓰러움을 대신 빌려 꾹꾹 담는다. 그러나 그 고양이는 안쓰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시를 쓰는 삶은 때론 상상이 지나쳐 나의 생애를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듯 보일 때가 있다. 또한 하나의 감정을 수십 수백 개의 자연에 비유하여, 우유부단한 태도도 얻게 될 때도 있더라. 그러나 이렇게 살기를 택한 나는 오늘도 내가 쓴 시를 읽으며 흡족해하기도 아쉬워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시와 함께 산다. 꽤나 잔잔한 행복을 느끼며 말이다.



내성적이던


    E였는데 I가 된 순간을 경험해 본 적 있는가? 우리의 성격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크고 작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MBTI 이야기는 조심스럽지만, 재미 삼아 검사해 보면 나는 유일하게 맨 앞 알파벳만 자주 바뀐다. E, I, E, I. 


  어린 시절 배달 앱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그때, 전화로 짜장면을 주문해야 하는 일은 나에게 무서운 숙제였다. 어머니는 의도적으로 내가 주문하도록 시킨다. 나의 소심함이 일찍이 들켜버려 극복에 대한 강요를 종종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종이에 짜장면은 몇 그릇인지 탕수육은 '대짜'.. 아니, '大자', '제일 큰 걸로' 등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일명 [주문 대사]를 작성하곤 했다. 연습을 열심히 하고 겨우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봤자 통화음과 함께 웅장해지는 나의 긴장감에 말문이 막혀버리지만 말이다.

  그 시절과 비교하자면 지금의 나는 아주 달라졌다. 가끔 주문을 잘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더라. 그런 나에게 여전히 내성적인 순간들이 자주 찾아온다. 그럭저럭 버틸만한 수준의 적당한 내성적인 태도와 외향적인 사회성이 섞인 현재의 나.


  이런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어지럽게 치여 사느라 세상을 유심히 살펴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은 시끌벅적 소음에 둘러싸여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갈지라도 길고양이를 보고 시를 쓰며, 당신의 마음도 모르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차분하게 나를 진정시키게 되지 않았는가. 또 어느 날은 심심하고 조용한 하루를 버티지 못할 때즈음 어여쁜 꽃 한 송이를 보고 시를 쓰며, 칭얼거리지 않는 당신의 아름다움에 닮고 싶어 씩씩해지지 않았는가.



From. 시인 윤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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