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선생님이 엄마표로 돌아서다.
-영어 공부의 진짜 목적 찾아가기-
어쩌다 엄마표 영어를 시작한 지 이제 딱 1년이 되었다. 워킹맘에서 전업맘으로 신분 변화(?)를 꾀한지도 1년이 되는 셈이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고, 그 후로 내 삶에 꼬리표처럼 늘 따라다녔던 그놈의 영어. 내가 내밀 수 있는 간판은 결국 영어뿐이어서 나는 학생들을 학원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다. 가르치는 동안에 보람도 있었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제법 듣는 강사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난 후에는 학생들을 대하는 내 마음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저 밥벌이 수단으로 학생들의 영어를 내 손에 쥐고 쉽게 흔들 수 없었다. 그만큼 엄마들의 자녀 영어교육에 대한 절실함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무시할 만큼 나는 냉정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학원 시스템 안에서 학생들의 영어 교육에 대해 끝없이 의문이 들었고, 불신이 쌓여갔다. 커리큘럼이나 교재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교재나 커리큘럼을 보면 정말 요즘 아이들은 영어 교육의 최대 수혜자들이구나 싶을 정도로 최고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게 한국이다. 모국어를 영어로 쓰고 있는 외국 교재들과 우리나라 출판사 교재들을 비교하면 아무리 영어 무식쟁이여도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문제는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목표와 방향성의 문제였다.
예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비하면 요즘 초등영어는 '문법'위주의 입시 영어에서 벗어나 '실용'언어를 지향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너도 나도 학원의 캐치프라이즈가 점점 '모국어 기반'의 영어를 지향하면서 이제는 의사소통할 수 있는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엄마들에게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요즘 엄마 들치고 대학 교육 안 받아 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럼에도 원어민들 앞에서 위축되고 외국 가서 당당하게 영어로 길도 물어보지 못하는 자신의 영어실력에 개탄하면서 우리 아이만큼은 '의사소통'이 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이 3040세대 엄마들의 바람을 학원 시장에서 결코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소규모 공부방 영어 학원이 아니고서는 어학원들은 엄마들에게 '말하기와 듣기가 우선이 되고 최종적으로 읽기와 쓰기까지 되는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히는 것이다.
내가 일했던 학원도 '모국어 습득 방법'을 기반으로 하는 영어 교육을 일찍부터 도입해서 이 지역 커뮤니티에서는 꽤 엄마들 한데 입소문이 나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곳이었다. 처음 원장님과 면담을 했을 때, 원장님도 그런 영어 교육을 지향하고 있었고, 아이 엄마가 된 후로 나도 그런 영어 교육을 꿈꿨기 때문에 이 학원이라면 내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학원에서 제시하는 커리큘럼으로만 5년 정도 한다면 이 학원의 전체 커리큘럼을 마쳤을 때, 그 학생은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대화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어려운 시사 주제들로 심도 있는 토론도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실제로 유창하게 학생들끼리 영어로 토론하는 영상이 학원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홍보용으로 게시되어 있었고, 나도 처음 학원에 문의를 주는 학부모님들께 그 영상을 보여드리며 함께 꿈을 키웠다.
그런데 그 희망찬 꿈은 내가 학원에서 3년 정도 근무한 후 신기루였음을 알게 됐다. 물론 아이들의 영어는 성장했다. 파닉스도 모른 채 영어를 시작했던 친구들이 영어를 읽기 시작했고, 영어로 본문 내용을 요약해서 말할 수 도 있었다. 중간중간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공개수업을 통해 엄마들에게 학생들의 향상된 실력을 보여주면 대부분 놀랍다는 반응이셨고, 고맙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의심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가르치는 방법이 과연 맞는가? 에 관해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괴롭혔다. 동료 선생님들하고 이런 고민을 나누면 대부분 아가씨 선생님들이었는데 그들은 나를 마치 '이방인'대하듯 쳐다봤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거지?"라는 눈빛으로 말이다.
진짜 나는 도대체 뭘 원했던 것일까?
나는 내가 영어에서 느끼는 갈급함을 학생들이 느끼지 않는 영어 교육을 하고 싶었다. 당연히 나의 두 딸도 내가 지금 현재 겪는 영어의 고충을 느끼지 않길 바랬다.
나는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시험 영어가 아닌 다른 영어는 공부하지 못했다.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학교 공부에 임했다. 3040 세대 대부분의 우리들이 그랬을 것이다. 학교 영어 시험은 늘 좋았다. 학교 성적이 늘 상위권이었고, 영어 시험은 특히나 교과서만 달달달 외우면 만점 받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영어를 곧잘 잘한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겁도 없이 대학교를 진학할 때 영어영문학과 원서를 넣었고 덜컥 합격한 것이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국문과를 가기엔 점수가 너무 높았고, 경영학과를 가기엔 못 미쳤기 때문에 대학 커트라인 점수에 맞춰봤을 때 그중에 가고 싶었던 과가 영어영문학이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기대에 차서 대학에 간 나는 새 학기 첫날부터 벽에 부딪혔다. 교양수업으로 듣게 된 원어민 교수님과의 기본회화 수업에서 나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을 수업 50분 내내 몇 번이고 느꼈다. 교수님이 나를 지목해서 말을 걸까 봐 전전긍긍했고, 그날 잔뜩 멋을 낸다고 신고 간 하이힐만 속절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뒤로도 나는 수없이 많은 절망감을 느꼈다. 비단 원어민 교수님으로부터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영문과는 과 성격상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특례입학자들이 많았는데 외모는 나와 같은 토종 학국인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바이 링구얼이 가능한 아이들이었다. 난 점점 위축이 되었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피킹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입시 영어가 빛을 발했던 것은 읽기와 문법이었기에 오히려 어렵다고 하는 한국인 교수님들이 지도하는 영문학 이론 수업은 잘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프레젠테이션 수업을 하거나 토론 수업이 있는 클래스에서는 나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래서 부리나케 새벽반 회화학원에 등록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달달달 외워서 하는 기본 회화로는 어림없었다. 그러다 결론적으로 대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스피킹이 아니라 리스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수업 시간에 발표와 토론은 굳이 손을 들고 안 해도 상관없었기에 나중에는 요령껏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교수님이 영어로 하는 수업을 못 듣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험 준비를 할 수가 없었고 그러면 그 수업 학점은 펑크가 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잘 들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내가 진짜 영어를 마주했을 때 가까스로 찾은 제대로 된 질문이었다.
그래서 난 학원에서 나에게 이방인처럼 "도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라고 간접적으로 물었을 때, 내가 제대로 찾았던 그 질문을 생각해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들을 수 있을까?"
일단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말하기는 제대로 들어야 가능하고, 읽기와 쓰기는 그다음 수순인 것은 더 당연하다. 나는 이 답을 내가 있는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찾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일주일에 2번, 2시간 수업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냈다.
듣기는 결국 얼마나 많이 들었냐로 승부가 나기 때문이다. 끈질긴 인풋이 있어야 한다. 그 어떤 스킬과 좋은 교재로도 리스닝 실력을 높일 수는 없다. 그러나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정해진 학원 내에서 영어를 듣는 게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집에서 내주는 온라인 숙제도 기껏해야 하루 30분을 넘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내 아이들은 내가 겪은 영어 절벽을 느끼게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그 결론은 엄마표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