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 있을 당시 정말 아끼던 학생이 하나 있었다. 처음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단계를 올리면서 수업을 하는데 영특하기도 했고 워낙 성실한 아이여서 실력이 눈에 띄게 쑥쑥 느는 것이 보이니 나도 신이 났고 아이도 유독 나를 따르고 좋아라 해줬다. 당시 몸담고 있던 학원은 1단계부터 최종 4단계까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최단기간 빠르게 레벨업을 해서 3년이 채 안됐는데도 3단계에 진입할 시점이었다. 평균 4년이 걸린다고 하는 과정을 그 학생은 1년 정도 단축한 것이니 학원에서도 다른 강사님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아이 어머니가 전화를 하셔서 "선생님, 너무 죄송한데.. 우리 아이 이제 학원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예상 못한 일이어서 어안이 벙벙해졌고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는 학원 그만둔다고 하면 나는 더 잡지 않았다. 엄마들은 오랜 고민 끝에 이미 마음 결정이 끝나고 통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학원 강사가 설득을 해도 넘어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제가 00을 정말 예뻐했어요. 저는 정말 성심껏 가르쳤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부족한 게 있으셨나요? 그만두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솔직한 이유를 알고 싶어서요." 나는 솔직하게 물어봤다.
"아니요, 선생님 무슨요. 선생님이 우리 00 정말 아껴주시고 열심히 가르쳐주신 거 알고 있어요. 00도 그만두자고 하니깐 울고불고 난리였어요.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거라고 막 소리까지 질렀다니깐요."
"아 진짜요? 그럼 혹시 더 큰 어학원으로 옮기려고 하시는 걸까요? 00 정도면 큰 어학원 가서도 잘할 테지만 지금 그만두는 것은 아깝기도 해서요."
"아니요, 선생님. 다른 학원으로 옮기는 거 아니고요. 저 00랑 엄마표로 해보려고 해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 엄청 고민했는데 해보지 않고 걱정하는 것보다는 일단 해보려고요."
"엄마표요? 요즘 엄마표 영어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기는 했는데.. 뭐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거예요?"
"아, 선생님은 학원에 계시니깐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요즘 정말 엄마들이 많이 하고 있어요. 제가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고 <잠수네 영어>라고 들어보셨을까요? 한번 읽어보세요. 선생님도 아이 키우시는 엄마시니깐 도움이 되실 것도 같아요. "
나는 이렇게 학원을 그만두는 학생 어머니로부터 '엄마표 영어'에 대해 처음 듣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 엄마표라고 하면 그저 집에서 문제집을 풀거나 엄마가 교재로 가르치는 것인가 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잠수네 영어> 책을 사서 정독을 했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이런 영어 공부법이 있었다니!
그동안 영어 학원 업계에 있었는데도 주변 선생님은 고사하고 원장님도 이런 공부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학원 시스템 안에 있으면 거기에 맞춰서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공부법이나 커리큘럼에 관해 연구하는 부지런함을 떨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구나 학원에서 '엄마표 영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있던 학원은 원장님부터 부원장, 그리고 다른 강사들도 다 싱글이거나 결혼을 했어도 아직 아이가 없었다. 학원에서 '엄마'의 신분을 갖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엄마로서 '학원표'와 '엄마표'를 정확히 비교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고민했던 '인풋이 너무 적다'는 문제의식에 엄마표 영어는 답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표 영어를 결정하기에 여러 걸림돌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엄마표 영어는 '하루에 영어 노출 3시간'이라는 주요 틀에서 진행된다. '내가 과연 하루 3시간을 할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일단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아이들과 하루 3시간 영어만 투자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엄마표 영어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 전의 내 삶을 완전히 바꿔야 할 것만 같았다. 적어도 완전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마주해야 하는 문제였다. 나는 과연 이 길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시작하기에 앞서 걱정이 샘솟았다. <잠수네 영어> 책에서 나오는 성공사례들을 읽을수록 더 주눅이 들고 나는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 길을 걷는 것이 옳다는 확신이 점점 들었다. 그 확신을 믿고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난 신랑과 상의한 후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고 학원에도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