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부터 알바로 영어 과외를 줄곧 했다. 대학생이나 됐으니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도 '영어영문과'라는 간판이 그럴듯했는지 줄곧 과외는 끊이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대학생 과외를 할 때 뭐 대단한 사명감을 갖고 하는 이가 얼마나 있겠나. 나 또한 그저 한 달 용돈이 궁해서 한 것이 사실이었고, 내가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노하우와 적절한 문제집을 골라서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는 것으로 하루 수업을 마치곤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학생들과 어머니들이 어린 나를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불러주는 것에 책임감이 느껴져 정신 차리고 과외 준비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일단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학생의 역량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학원에 들어갈 때 '레벨 테스트'를 보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단순히 레벨 테스트로 평가하는 '레벨'의 문제가 아닌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의 차이를 느끼게 됐다. 처음에 학업 수준이 낮은 학생이어도 기본 역량이 큰 아이들은 금방 레벨이 향상됐고, 객관적인 시험 지표로도 기대 이상의 점수를 받아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들은 선물까지 주시면서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라고 치켜세워주곤 했다. 겸연쩍게 그 칭찬을 받기는 했으나 사실 나는 그 아이들의 실력 향상의 진짜 이유는 나한데 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방법을 제시했을 뿐, 그 방법을 가지고 목표에 도달한 것은 그 학생 스스로 한 것이고 그것은 본디 그 아이가 갖고 있던 역량에 있었다. 난 그 차이가 궁금했다. 같은 교사와 같은 교재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그 아웃풋이 달라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유전적으로 타고난 두뇌 차이가 물론 압도적인 이유다. 하지만 가르치다 보면 비슷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인데도 성실하게 끝까지 해내는 것까지 도달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보였다. 그런 의문을 가지고 그 이후로 나는 학생들 집에 갈 때 그 집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과외로 학생 집을 방문하면서 의도적으로 집을 탐색하는 것은 실례였기 때문에 구석구석 볼 수는 없었다. 다만 현관에 들어가서 바로 보이는 거실과 과외를 주로 하는 아이 방을 보면 대략적으로 그 집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 배움에 있어 그릇이 크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집에 '책'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신기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니?"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중학교 때 시험공부한다고 많이 못 읽었지만 초등학교 때는 많이 읽었어요."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작년에 엄마들 사이에 <공부머리 독서법>이란 책이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책에서 주지하는 '독서가 학습 역량을 키운다'는 것을 나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몸소 체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집들은 신기하게도 거실에 다들 큰 책장이 놓여 있었다. 도서관에 가면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데 굳이 집에 책을 많이 사둬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소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의 환경이 어떻게 조성됐는지에 따라 그 라이프 스타일이 결정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엄마표 영어를 시작할 때 나도 이 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무슨 콘텐츠로 엄마표 영어를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우리 집 레이어드부터 바꿔줘야 한다. 소프트웨어 못지않게 하드웨어가 중요한 것이다. 일단 우리 집도 엄마표 영어를 하기 전에 큰 책장은 거실에 있었다. 내가 비록 아이들 유아 때 영어를 제대로 못했을지라도(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생각한 점도 컸다) 독서로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은 알았기 때문에 '책 읽기'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래서 거실에 텔레비전도 없었다.
엄마표 영어를 위해서는 텔레비전이 필요하다. 영어로 된 콘텐츠를 흘려듣기를 위해서 가장 필요하다. 없던 TV를 다시 샀다. 대신 인터넷 TV는 연결하지 하지 않았다. 통신사에서 몇 차례 "진짜 인터넷 TV 신청은 안 하시나요? 인터넷만 이용하는 거랑 TV까지 이용하는 것은 요금 차이가 얼마 없는데요."라고 확인하기도 했다. 한글 프로그램이 나오는 통로를 애초에 차단한 것이다. 대신 우리 집은 두 가지 플랫폼은 돈을 내고 보고 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프리미엄'이다. 넷플릭스도 공유넷을 통해 한 계정을 나눠서 보는 것으로 신청해 저렴하게 신청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엄마표 영어를 할 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 신청하기를 권장한다. TV 설치는 가능하다면 거실이 아닌 방에 하도록 한다. 영어 듣기를 할 때 극장에서 들었을 때는 전혀 안 들리던 말이 이어폰을 끼고 집중해서 들으면 조금 더 들렸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영어를 들을 땐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 하울링 없이 듣는 것이 더 선명하게 들리고, 아이들을 집중하게 만든다.
거실에는 큰 책상을 하나 준비했다. 큰 아이 그레이스가 엄마표 영어를 시작할 때가 2학년 때였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기념으로 본인 방에 예쁜 핑크 책상을 세팅해주고 거기에서 공부하도록 했었다. 그런데 엄마표 영어를 할 때는 이제 엄마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래서 함께 편하게 앉을 수 있는 큰 책상이 필요하다. 가성비 좋은 6인용 식탁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책상에서는 주로 영어책 읽기나 집중듣기를 같이 하게 된다. 엄마가 계속 옆에 앉아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엄마가 집안일을 할 때도 그 반경 안에서 아이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면 된다. 그래서 거실에 책상을 두는 것을 추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CD플레이어나 블루투스를 집안 곳곳에 배치하도록 한다. '육아는 장비 빨'이라고 했던가. 이 말인즉, 장비가 엄마들의 육아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는 것이다. 엄마표 영어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루 3시간 노출'이라는 거대한 부담감을 장비빨로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아이들이 놀 때, 잠자기 전에 영어 스토리나 노래를 손쉽게 틀어주기 위해서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곳에 하나씩 도구를 마련해두는 것이다.
뭐 엄마표를 하는데도 이렇게 돈을 쓸게 많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사 공짜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겠는가. <연금술사>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산티아고에서 그 길을 알려줄 테니 대가를 지불하라고 했던 살렘 왕의 말처럼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기꺼이 투자를 해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엄마표 영어를 시작할 때 나는 방향 설정을 바르게 해야 하는 것을 알았고, 이후로는 그 길을 제대로 걷기 위해 이정표를 잘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첫 이정표가 바로 우리 집을 엄마표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길이 어디로 향해 갈 것인지 설레면서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