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한 토론 수업에서의 일이다. 1학년 때 겁 없이 수강했던 수업은 국제사회 이슈에 관해 각각 주제를 정해서 조별로 토론을 하고 최종 프레젠테이션까지 하는 커리큘럼이었다. 내 수준에는 수강포기 기간에 그만뒀어야 마땅한 수업이었는데 쓸데없는 객기를 부렸었다. "까짓 껏, 나도 할 수 있다고!!!" 이러면서 말이다. 아, 난 그 뒤로 인생은 도전할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법. 어떤 친구들은 그냥 학점을 포기하고 계절학기 때 만회한다는 식으로 거의 수업에 나오지도 않는 경우도 많았다. 보통 1학년 때 이런 수업을 소화할 수 있는 신입생들은 거의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특례로 온 친구들이었다. 그때 만난 친구 하나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 그 친구가 토론하고 발표하는 것을 들으면서 난 당연히 '얘도 외국에서 좀 살았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발음, 억양뿐만 아니라 표현력도 원어민 못지않게 무척이나 훌륭했다. 어쩌다 같은 조가 돼서 학식을 같이 먹게 됐는데 "너는 어디에서 살다왔어?"라고 내가 물어보자 그 친구는 "나 외국에 나가본 적 없는데?!" 하는 것 아닌가. 아니, 나랑 같은 출신인데 왜 너는 나와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그래서 절실한 심정으로 물어봤다. "그럼 너는 영어 공부 어떻게 한 거야? 나는 네 영어 듣고 당연히 외국에서 살다 온 줄 알았어. 발음이랑 억양 완전 대박이야!" 그 친구가 전해준 비결은 이랬다.
" 우리 엄마가 학습지 영어 선생님이었거든. 어릴 때부터 그 학습지에서 하는 영어 CD 맨날 집에 틀어놓고 나한데 그대로 따라서 하라고 했었어. 처음에는 진짜 싫었는데 하다 보니깐 똑같이 따라 하는 게 재밌어지더라? 그러다가 중학교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토크쇼나 팝송 들으면서 똑같이 따라 하기도 했고. 일종의 흉내내기를 한 거지."
이 친구 어머니는 그 당시에 이미 집중듣기와 셰도잉 기법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셰도잉은 엄마표 영어에서는 '연속 따라 말하기'라고 칭한다. 줄여서 '연따'라고 하는 것. 처음에 엄마표 영어를 시작할 때 주변을 둘러보니 의외로 엄마표 영어를 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내가 관심이 없을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관심이 생길 때만이 비로소 보이는 법. 다들 묵묵히 조용히 이미 몇 년씩 진행하고 있던 그레이스 친구 엄마들도 많았다. 역시 알짜배기 교육 정보는 서로 공개를 안 하는 것인가. 여하튼 소개를 받아서 만난 아이 친구 엄마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다. 분명 엄마표 영어에 관련된 책을 정독을 하고 갔는데도 처음에는 바로 잘 와 닿지 않았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용어 때문이었다. '집듣'이니 '연따'이니 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설명을 하니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별 것도 아닌데 왜들 용어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는지.
중요한 것은 엄마표 영어의 두 축은 '흘려듣기'와 '집중 듣기'라는 것이다.
물론 연따(셰도잉)가 중요해지는 타이밍이 있다. 그렇지만 일단은 처음에 집중할 것은 '흘려듣기'와 '집중 듣기'이다. 흘려듣기는 말 그대로 흘려듣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작정 영어 동요나 노래를 틀어놓는 것으로는 영어를 외국어로 받아들이는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상황의 우리한데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주로 흘려듣기는 영상과 함께 들어야 한다. DVD를 보는 방법이다. 아이들이 영어 DVD를 잘 본다면 일단 엄마표 영어는 반은 성공이다. 영어 DVD를 잘 보게 만드는 것을 일종의 '터잡기'라고 말한다. 이 터잡기가 잘 되기 위해서는 초반에 엄마 노력이 절실하다. 아이들마다 각각 DVD 취향이 있다. 그 취향을 저격해서 적절한 콘텐츠를 찾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요즘 두 녀석이 빠져 있는 dvd들
우리 집 두 녀석은 다행히도 그 전에도 한글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안되어 있어서 거부감을 덜했다. 그럼에도 둘째인 조이는 계속 영어만 보여주자 "나 차라리 안 볼래!" 이러면서 거부한 적도 많았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내용을 계속 보고 있자니 고역일 법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작정 DVD를 사지 말고 유튜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일단 DVD 정보를 수집한 후에 유튜브에 짧게 나오는 영상을 아이들에게 먼저 보여줬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면 그때 구입을 하거나 대여를 하면 된다. 영어 만화에 익숙해지는 기간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3달까지 가기도 한다. 처음부터 큰 욕심부리지 않고 하루 10분부터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좋다. 그렇게 적응이 되면 보통 한 에피소드는 짧게는 30분부터 길게는 90분짜리도 있다. 나중에는 아이들이 "더더 보여줘요!!"라고 떼를 쓰는 날이 온다. 그렇게 영상으로 흘려듣기를 한 후에 그 음원으로 아이들이 놀거나 자기 전에 다시 흘려듣기를 해준다. 그렇게 음성으로만 들으면 이미 영상으로 본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용을 이미지화시키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을 꼭 하라고 추천한다. 꼭 한 번 영상으로 시청한 음원으로 흘려듣기를 음성만 다시 해줄 것!
두 번째 축은 '집중 듣기'다. 집중 듣기는 영어책을 보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엄마표 영어를 할 때 '그림책 1000권 읽어주기' 같이 영어책을 엄마가 많이 읽어주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건 정말 엄마 품이 너무 많이 든다. 그리고 나처럼 초등학교 이후에 시작한 친구들한데 너무 쉬운 그림책을 읽어주면 흥미를 끌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리더스 북으로 집중 듣기'하는 것이다. 리더스 북은 그림책보다는 아이들 읽기용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파닉스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고, 읽기 레벨을 올릴 수 있게 최적화된 책이다. 집중듣기는 책을 펴고 음원을 튼 다음에 손으로 음성을 따라가면서 보는 것이다. 절대 처음에는 소리로 읽으라고 하면 안 된다. 일단 듣는 것이다. 다만 들을 때 소리와 글자를 매칭 해서 보면서 효과적으로 글자를 눈에 익히게 하는 것이다.
집중 듣기 하고 있는 조이
처음 집중듣기할 때 추천하는 <클리포드>, <리틀크리터>
흘려듣기를 할 때는 꼭 엄마가 옆에 있지 않아도 된다.(물론 같이 있어주면 최고지만 엄마도 할 일이 많으니깐). 하지만 집중듣기를 할 때는 엄마가 꼭 옆에 있어줘야 한다. 아이들이 집중력을 갖고 끝까지 소리에 맞춰 글자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엄마표 영어 '하루 3시간'이란 말에 나도 처음에 겁을 많이 먹었다. 그런데 막상 진행해보니 내가 진짜 같이 해주는 시간은 하루에 1시간도 채 안된다. 그러니 꼭 엄마가 옆에 있어줘야 하는 집중듣기 때는 아이 옆에서 도와주도록 한다.
일단 시작해보면 처음에 지레 겁먹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겁게 영어를 공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방법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바로 시작해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