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살고 있다. 이 지역 특징이 특정 대기업을 중심으로 급성장한 신도시여서 이 곳에 사는 엄마들은 연고 없이 남편의 직주근접(직장과 주거가 가까운 것)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 경우가 많다. 최근 근처에 역이 개통되면서 맞벌이 비율이 늘었다고 하지만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갔을 때 반모임을 가보면 맞벌이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아무 연고 없이 모여서 비슷한 환경에 육아를 하다 보니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가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최근에 온라인에서 논란이 있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긴급 보육이 아닌 정상 등원은 다 중지된 상태였는데 한 어린이집에서 전업맘인데도 불구하고 '긴급 보육'을 신청해서 아이를 맡기는 것을 워킹맘이 목격한 모양이었다. 그 워킹맘은 용기 있게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워킹맘들을 어쩔 수 없이 긴급 보육으로 아이들을 맡길 수밖에 없지만 전업맘이시면 이 시국에 집에 데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취지의 글이 논란의 불씨가 된 것이다. 엄청난 댓글이 달리자 결국 원글 작성자는 글을 삭제하기까지 이르렀다. 그 댓글을 일일이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대략 두 가지 경우로 나뉜 것 같다.
<왜 전업맘은 긴급 보육을 쓸 수 없는가.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 보는 것도 힘들 때가 있으며, 엄마가 아프거나 특별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와 <나도 전업맘이지만 솔직히 특별한 경우도 아닌데 어린이집에 아이 보내는 것 보면 이해 안 된다> 였던 것 같다. 워킹맘과 전업맘 사이의 묘한 신경전은 나도 워킹맘 시절에 느껴본 적이 있다. 이제는 전업맘이 되고 보니 양쪽의 마음이 다 이해가 가서 이쪽저쪽 다 마음이 쓰이게 된다.
한참 전에는 <엄마표 영어>의 유용론에 관해 찬반으로 의견이 많이 갈려서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그때 한 엄마가 단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워킹맘인데 엄마표 영어는 전업맘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엄마표 영어를 못해주면 아이가 영어를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워킹맘으로서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없다는 것에 자책감을 들게 해서 불편하다"
어쩌면 내가 올린 <엄마표 영어>에 관한 글들에서 현재 워킹맘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대목들이 많지 않았나 싶다. 워킹맘이었던 내가 <엄마표 영어>를 위해서 일을 그만두고 전업맘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1년을 진행하고 보니 엄마표 영어는 결코 전업맘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아이들 영어 교육은 단기에 끝나지 않는다. 그 목표가 최종 입시에 있든, 언어로서 원어민의 레벨에 도달하는 것에 있든지 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분명하다. 통설적으로 하나의 언어에 익숙해지는 최소 시간을 3000시간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루 3시간이라고 잡으면 일주일에 5번 공부한다고 했을 때 꼬박 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긴긴 시간을 매일같이 아이 옆에서 함께 3시간씩 영어를 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나는 못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나의 한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나는 두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 자신도 참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을 육아할 때 영어 공부뿐 아니라 요리, 살림, 그리고 다른 과목 공부까지 봐줘야 하는데 꼬박 5년을 그렇게 아이 옆에서 해 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엄마표 영어로 방향을 정한 다음에 나에게 충격을 줬던 <잠수네 영어>를 도전해보려고 했을 때, 처음에 느낀 것은 '나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일일이 정보를 찾고, 우리 아이에 맞는 책과 dvd를 고르고, 함께 읽어주기까지. 엄마 할 일이 끝도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이 길을 걷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편한 방법으로 엄마표를 할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찾아봤다. 그랬더니 '엄마표 영어'도 말만 '엄마표'이지 이미 영어 시장에서는 엄청 큰 규모로 발전하고 있었다.
엄마표는 학원표의 반대가 아니다. 아주 단순하게 방향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방법이 달라진 것이다.
이미 엄마표로 길을 닦아 놓은 많은 분들의 개척정신 덕분에 지금 우리는 편하게 엄마표를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 모든 것을 엄마가 스스로 알아보고 찾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엄마표 영어의 큰 축인 '흘려듣기'와 '집중 듣기'만 기억한다면 그에 맞게 필요한 콘텐츠를 이용하면 된다. 영어도서관을 이용하거나, e-book을 사용하는 방법도 아주 효율적이다. 나는 한 업체의 e-book의 도움으로 내가 영어책을 일일이 읽어주지 않았어도 큰 아이가 스스로 혼자 영어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영어책과 dvd는 대여할 수 있는 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일정 커리큘럼을 제공해서 엄마들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커리큘럼에 맞춰 책과 dvd를 빌려서 아이와 함께 진행할 수 있다. 어쩌면 학원에 매달 쓰는 돈만큼 엄마표에 필요한 콘텐츠 이용료를 지불하게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엄마의 확신이다. 방향을 분명히 정하고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길은 보인다. 내 주변에 많은 워킹맘들이 나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 하루를 분으로 쪼개가며 열심히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들 때가 많다. 전업맘이니 워킹맘이니 편 가르기 할 때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막상 엄마들 세계로 깊이 들어오면 결국 모두의 바람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디 우리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 이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