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담진담

다시, 쓰기로 했다.

망각의 저항

by 세리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었다.

마지막 발행된 글을 보니 작년 7월, 콩국수 글이 마지막이다. 몇 년이나 글을 안 쓴 기분이었는데, 막상 보니 1년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1년 남짓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매일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겠노라 브런치에 발행한 글 속에서 다짐했는데, 1년이나 게으름을 피운 것이냐고 누군가 혹여나 묻는다며, 단연코 그것은 아니라고 변명해두고 싶다.


지난 1년 동안 나름 꽤 치열한 글쓰기를 해왔다.

브런치에 쓰던 에세이와 장르는 다르지만, 창작을 향한 글쓰기로 매일 머리를 싸매고 질퍽한 늪을 조용히 걷는 사람처럼 글쓰기를 놓지 않았다.


어쩌다 품 안으로 굴러들어 온 호박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했던 동화가, 뜻밖에도 당선되었다. 나는 그 우연이 혹시 내 안에 숨어 있던 창작의 불꽃 때문이었을까 싶어, 1년 넘게 어린이 책 작가교실에서 글벗들과 함께 이야기의 씨앗을 틔우고,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시간을 보냈다.


작가 교실에서 내가 동화를 배우게 될 줄이야.

진정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흔하디 흔한 이 말이 딱 맞지 않는가. 난 동화 창작 기초반에서 6개월을 구르며(정말 구르는 기분이었다) 배웠고, 다음 6개월은 혼자 맨땅에 머리 박는 기분으로 무조건 동화를 썼다.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단편 장편도 따지지 않고 닥치는 대로 호기롭게 썼다. 그렇게 1년 만에 짠하고 대단한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어쩌다 굴러들어 온 복이 아니라, 진짜 내 실력으로 동화 공모전에 당선이 된 것이라 믿고 싶었을까. 1년 정도 갈고닦으면 실력이 더 빛을 발해서 세상에 내놓을만한 그럴듯한 작품이 까꿍 나올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욕망을 가득 품고 있었다는 것을 1년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이제 생각하니 그 당시 내가 어이없고 황당해서 볼기짝이라도 세게 때려주고 싶다. 그렇게 작가 교실 기초반이 끝나고 6개월을 혼자 써보다 줄줄이 공모전 낙방, 호기롭게 다섯 군데나 넣었던 신춘문예도 줄줄이 낙방... 그럼에도 좌절모드로 있을 수 없었다. 더 망설이기에는 나는 이제 마흔이 넘었고, 그동안 저지른 수없는 시행착오로 충분했다.


나는 다시 작가 교실 심화반에 들어가기로 다짐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이왕 이 길에 들어선 거, 칼을 갈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한다는 심정으로 등록했다. 물론 남편은 적극 지지했고, 아이들도 응원해 줬다. 나만 열심히 하면 될 일이었다.


열심히 했다. 그런데 심화반을 들으며 더 열심히 쓸수록 이상하게 좌절감이 더 심하게 몰려왔다. 창작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었다. 창작의 실체를 아주 조금, 그제서야 맛보았다고 해야 하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문학적 재능만으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 재능이 연료가 된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그 연료가 나에게 있는지 없는지는 일단 달려봐야 알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2년 가까이 내 안에 연료가 솟아나리라 기대하며 달려봤지만 점점 더 고갈되는 진실만 마주하는 것 같았다. 창작은 성실함과 필력만으로는 부족한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미 나올 것은 다 나온 것 같은 동화 소재, 주제, 구조를 넘어서는 나만의 그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꿈틀댔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글벗들은 나에게 소재를 캐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고 하는 감탄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번뜩이는 것이 내게 잠시 왔더라도 그것을 이야기 땔감으로 만들려고 하면 빈약하기 그지없는 마른 장작개비로 변하는 것이 계속 반복됐다. 지쳤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 와중에 함께 공부했던 글벗들은 공모전 당선 소식을 알렸고, 선배들의 쏟아지는 신간 소식에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하면 거짓이다. 그들의 글을 읽어보면 때론 평범한 이 소재로 이렇게 맛깔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고, 분명 나도 생각했던 소재인데 나는 이렇게 이야기로 완성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다시금 좌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묵묵히 내 길을 가겠노라고 마음을 다잡고 쓰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일단 심화반 과제가 많았고, 졸업한 글벗들과 함께 하는 공부방에서 매달 내야 하는 글도 있었다. 속해있던 합평 모임, 그루터기가 없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열심히 쓰고, 합평받고, 수정하며...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겠거니 하고 있다.


치열한 글쓰기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사실 지금은 또 다른 일을 저지른 상황이다. 사부작사부작, 가만히 있지 못하고 뭔가 일을 도전하고 좌절하고 또 힘을 내고.. 이것이 나의 숙명인가, 아님 인생이 원래 이런 것인가. 무슨 일을 시작했는지는 앞으로 서서히 브런치에 풀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브런치에 기록을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글쓰기는 시간이 주는 순간을 망각하지 않기 위한 저항이라고 했던 김기석 목사님의 글이 떠올라 오늘 다섯 줄만 적으며 다시 시작해야지.. 했는데, 일단 키보드 위해 손을 올려놓으면 이렇게 줄줄이 뭐라도 쓰게 되는 것 같다. 마침,남편이 선물해 준 키보드 리듬 소리와 하루키가 추천하는 클래식 음악이 뒤엉켜 내게 있는 이 공간이 나에게 다시 글쓰기에 힘을 내보라고 한껏 응원을 해주는 중이다. 다시 힘을 내서 브런치에 망각하지 않고 삶의 순간을 기록해 보리라.


시간 여행자인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이 시간을 어떻게 만났는지 기록하는 일, 삶을 순례자로 살아가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글을 쓰는 것은 시간이 우리 속에 새겨 놓은 무늬를 글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장르에 관계없이 글 쓰는 모든 행위는 망각에 대한 저항이다. 소멸이 예정된 무늬를 굳이 되살리는 게 허영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허영조차 없었다면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지도조차 없이 걸어가야 하는 인생길에서 가끔 누군가의 글이 길잡이 구실을 해줄 때도 있다. 시간이 새겨 놓은 무늬는 개인에게 속한 것이지만, 시간의 무늬를 기록하는 일은 공적인 직무에 속한다. 그 무늬는 시대의 총체성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석, <일상의 순례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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