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좋은 엄마는 뭐라고 하나요?
올해 4학년이 된 큰 아이는 피아노와 줄넘기 학원을 빼면 주요 과목 학원은 다니지 않은 채 '엄마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 '엄마표 영어'로 시작된 엄마표 공부는 그 맥을 이어서 자연스레 '수학'도 집에서 공부하게 됐다. 모태 수포자인 내가 아이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에 나는 애초부터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했다. 영어를 못해도 '엄마표 영어'를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설파하곤 했지만 사실상 수학에 관해서는 내 상황에 적용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그런데 옆에서 신랑이 그럼 자신이 수학은 맡아서 해보겠다고 호언장담을 해줬다. '아빠표 수학'이라. 잘만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인 모양새였다. 아이도 아빠와 수학을 하는 것에 기대감을 비치며 좋다고 했다. 그렇게 아빠표 수학이 진행된 지 어언 6개월.
주방과 연결되어 있는 알파룸에서 아이는 아빠가 매일 하라고 내준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주방으로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아이가 곁눈 길로 내 동선을 살피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유리문으로 되어 있어 엄마 눈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는 구조였던지라 아이가 수학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뭔가에 허둥대는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문을 열어 방으로 돌진.
아이는 최상위 문제집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수학 머리가 있는지 없는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때이지만 소위 상위권 아이들이 꼭 한다는 최상위 문제집을 나도 아이에게 풀게 하고 있었다. 응용문제가 많아서 복잡한 풀이과정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에 아주 정갈하게 답만 쌈박하게 쓰여있었다. 문제집을 걷어내자 아래 포개져있던 답안지가 들춰졌다. 내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늘 바르고 정갈한 행동으로 부모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라주던 첫째 아이에게서 이런 실망감을 느낄 줄이야.
어릴 적 기억이 선연히 겹쳤다. 수학이 하기 싫었던 과거의 나도 종종 답안지를 베끼는 만행을 저지르곤 했다. 나의 엄마에게 '엄마표'는 생각도 못하는 단어였고, 그저 때가 되면 학원과 과외를 열심히 보내주셨다. 당시 서울대에 조기 입학했던 언니 한데 배우던 수학 정석 시간은 지금도 가끔 꿈에서 나타나면 최고의 악몽으로 분류되는 종류의 기억이다.
당시 함께 과외를 받던 친구와 선생님이 오기 전에 반드시 했던 짓이 바로 답안지를 미리 보고 단원평가 답을 정석 구석 어딘가에 조그마한 글씨로 써놓는 것이었다. 수업 시간에 그 언니가 나 홀로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우리에게 단원 평가 문제를 풀라고 하면, 우리는 열심히 푸는 척을 하다가 구석에 나만 알아볼 수 있게 써놓은 답을 슬쩍 보고 다 푼 척 적어냈다. 우리의 정답률을 늘 100%에 달했고, 그 서울대 선생님은 자신이 가르치는데도 은사가 있음을 확인받은 듯 매번 뿌듯해하며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나와 친구는 점점 수포자의 길로 들어섰고, 엄마는 당시 매달 50만 원의 수학 과외비를 딸아이의 답안지 베끼기 신공을 부리는데 쏟아붓는 걸로 끝이 난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내 못된 수학 상습을 끝까지 알아채지 못했기에 배신감을 느꼈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밖에 다른 일로는 많이 느끼셨겠지만. 그런데 이제 고작 11살인 내 아이가 수학 답안지를 보고 답을 베끼는 것을 보는 것은 참담하고 아득한 심정이 밀려왔다. 아이의 아주 사소한 행동과 감정의 변화에도 옆에 바싹 붙어서 아이와 호흡을 함께하고 있는 엄마에게는 큰 파동을 던져준다.
"답안지는 왜 본거야?"
"...................."(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수학이 하기 싫었으면 하기 싫다고 엄마 한데 말할 수 있잖아. 왜 말도 안 하고 그랬어? 도대체 답안지를 본다는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 죄송해요."
"누가 죄송하다는 말 듣재?
엄마는 네 행동이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냐고? 어?!!"
" 죄송해요. 그냥 오늘은 하기 싫었어요. 답안지가 옆에 있어서 보고 싶었어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은 거짓이다. 수학이 하기 싫은 그 마음이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벌써 수학이 하기 싫었다니. 이제 고작 11살일 뿐이데.. 거기에서 난 허탈감과 두려움이 밀려왔던 것이다. 이제 수학을 열심히 달려 나가야 할 시기인데 벌써 하기 싫다고 답안지를 보는 꼴을 보고 말았으니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이끌어야 할지 막막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신랑은 내 이야기를 듣고 더 암담한 얼굴로 응수했다. 자기의 사랑스러운 모범생 큰 딸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자신이 자신 있게 수학은 맡아서 가르치겠다고 했는데 아이가 수학이 하기 싫다고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에 낭패감이 서리기도 했으리라.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영특함으로 학창 시절에 수학에 있어서는 늘 자신감이 넘쳤던 사람에게 답안지를 보고 답을 베꼈다는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같았다.
왜 아이는 아빠의 수학 머리를 닮지 못했을까. 뜬금없이 아이에게 미안함마저 느껴졌다.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이런 일에 아이에게 뭐라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곰곰이 도모했다. 그냥 '그럴 수 있어. 별일 아니야.'라고 쿨하게 넘겨줘야 하는 것인지, '이건 진짜 잘못된 행동이고 엄마 아빠를 기만하는 나쁜 행위야'라고 확실하게 혼을 내서 경고를 해줘야 하는 것인지 이정표가 쉽사리 서지 않았다.
말 그대로 '우리도 부모는 처음이라..'라고 항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실망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온다. 실망감이란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상한 마음이다. 결국 아이에게 느끼는 실망감은 그 바라던 일의 주체가 아이가 아니라 '나'이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보게 했다.
11살인 아이는 엄마가 그냥 시키는 대로 최상위 문제집을 풀었지만 그날 유독 문제는 어려웠고, 피곤함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마침 아빠는 답안지를 다른 곳에 두지 않고 문제집과 함께 둔 것을 아이는 발견하고 그만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답을 보고 베끼고야 만 것이다. 그 순간 아이는 자신이 답안지를 베끼면 앞으로 수학을 잘 못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거나, 수학을 못해서 소위 좋은 대학에 진학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 따윈 하지 못했다. 그저 빨리 문제집을 풀고 쉬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딸에게 '실망감'을 느꼈던 것은 수학을 잘해서 엄마는 가지 못했던 유능한 전공을 선택해서 갈 수 있길 바라는 나의 바람에서 삐끗하고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대로 바라고 기대하고 속단해서 벌어진 일이다. 내 아이는 그대로 고유한 완벽한 형상일진대 내 경험과 기대, 욕심에 딱 맞는 아이를 커주길 바라고 있었다는 내 민낯을 오히려 보게 했다.
그럼에도 난 아이를 향한 기대를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기대는 사랑 없이는 생기지 않는 감정 아니겠는가. 기대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것은 사람의 특권이고, 엄마의 특권이라고 믿고 싶다. 이 특권마저 엄마에게 없다면 무슨 낭만으로 아이들을 키우겠는가.
그나저나, 수학 답안지를 본 아이에게 좋은 엄마는 뭐라고 해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