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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Jan 09. 2023

마흔아홉에 말할 수 있는 것들3

섹스란

“그래서 말인데...난 요즘 섹스에 관심 많다.” 재희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어느 저녁 샤워 후 재희는 거울 속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배가 늘어지긴 했어도 아직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불현듯 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붓다는 몸에 대해 ‘똥이 가득 찬 가죽 주머니’라고 설 했지만 몸은 생명활동이 왕성히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우주다. 그런데 재희는 제 몸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좀 더 젊을 때 섹스를 많이 하지 못한 거야. 남편이나 나나 나이 드니까 어렸을 때처럼 몸이 활발하지 않거든.” 재희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 중 재희 네가 그쪽으로 제일 선구적이었어.” 서로의 섹스 생활에 대해 대략 알고 있는 내가 지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맞아. 너는 이벤트도 열심이었잖아. 매년 결혼기념일에는 남편과 호텔에 가기도 하고....그런데 너 이벤트 의상은 아직도 사용해?.“ 지원은 목소리를 더 낮추며 킬킬거렸다.


”이제 그런 의지가 없다는 게 문제지. 그러니까 아직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우리 몸을 더 사랑해 보자구.“ 재희는 가방에서 분홍색 상자를 두 개 꺼냈다.

상자를 자세히 훑어보던 나는 상자의 겉면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흠칫 놀라 재빠르게 가방 속에 상자를 넣었다. 


”이게 그 딜도야?“ 지원은 눈이 동그래져 물었다. 

”응. 우리의 마흔아홉을 기념해서 선물하는 거야. 잘 사용해 봐. 이제까지와 다른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재희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우리에게 건넸다.     

 

사랑하는 남녀는 섹스를 꼭 해야 하는 걸까? 정신적인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 여겼던 적이 있었다. 결혼 이후에도 마지못해 몸을 나누기는 했지만 즐기지는 못했다. 섹스는 대화의 다른 방식 같다. 말로 주고받는 대화, 표정과 몸짓으로 나누는 대화, 그리고 섹스는 몸으로 하는 대화하는 것.


몸은 오감을 느끼고 발산하는 역할을 한다. 상대에게 온기를 나누어 주고 포용하며 지지를 표현한다. 몸은 사랑을 얘기할 때도 절대적 역할을 한다. 만약 사랑하는 상대와 나누는 포옹과 키스가 없다면 사랑을 어떻게 온전히 받아들일까? 섹스는 몸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하는 자연물이다. 뜨겁고 부드럽게, 때론 차갑게 완급을 조절하며 나를 드러낸다. 섹스는 삶의 방식을 완성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오십을 지천명이라고 하잖아. 그런데 난 이제 불혹 같아.“ 지원이 커피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공유가 와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 있어?“ 재희는 짖궂게 물었다.


”잠시 흔들릴 수는 있겠지. 그런데 옛날처럼 마음이 이리저리 쉽게 넘어 다니진 않아. 마흔아홉이 되고 보니까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되었어.“ 지원은 말을 마치고 커피잔 바닥에 남은 커피를 마셨다. 


”우리 다 그랬지. 진짜 우리 오십이다.“ 실감 나지 않는 표정으로 재희가 우리의 오십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도 아직 우리는 세 달 동안 마흔아홉으로 살아야 해. 오십은 오십을 위해 남겨두고 지금은 마흔아홉으로 살아 보자.“ 파이팅 넘치게 팔을 들어 올리며 재희가 힘차게 말했다.


”시간 참 빠르다.“ 지원과 내가 동시에 말하며 웃었다.     


에티오피아 게샤빌리지 오마는 커피잔에 까만 테두리를 남았다. 우리 셋은 다른 모습으로 살아 왔고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도 그냥 아메리카노나 스페셜한 커피 에티오피아 게샤빌리지 오마처럼 같은 모습으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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