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아빠가 복싱 경기를 보고 있으면
너무 싫었다. 서로 아플 걸 알면서 왜 때리는 걸까?
그러다 부작용으로 뇌에 이상까지 생긴 운동선수들을 보면서
아휴...그러게 왜 복싱은 해가지고...
저렇게 치고받는 야만적인 운동은 없어져야 해.
하지만 작년에 우연히 동네 아줌마들을 따라
킥복싱 비스므레 한 것을 하게 되고
글러브를 산 김에 본격적으로 배워보자 해서
복싱수업을 시작했다.
주 3회 오전 1시간씩 하느라
뭐 대단히 실력이 늘지는 않지만
하면 할수록 재밌다.
제일 재밌는 것은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
때리는 것보다 요리조리 피해다는 게 재밌고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기술을 간파하여
휙 피하면 너무나 내가 기특한 거다.
그래 오늘 한 대도 안 맞았군...
그리고 날렵하게 슉슉 피하다가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어
제대로 잽이 들어가면 크~ 그 쾌감
(주로 잘 없는 상황이지만...)
관장님이 나에게 링 위에서 스파링을 하라고 해도
“맞는 거 싫어요. 링 위에 올라간다는 건
맞는 것도 각오해야 하잖아요. 저 때리면 바로 고소장 날릴 거예요“
라고 내뺐다.
한 4개월 하다 보니 이제 링 위에 설만큼 용기가 생겼다.
때리면 피하고 피하다가 나도 때린다.
다리와 어깨를 계속 움직이며 상대를 지치게 한다.
원래 뭐든 쥐어 패려고 시작한 복싱이었는데
하다 보니 쥐어패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일단 내가 맞지 않아야 해서 굉장히 비장해진다.
“덤벼, 해보자”
이렇게 맷집이 늘어나나보다
아이가 고열로 응급실에 갈 때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일 때
“때리지 마~‘ 하지 않고 ’그래, 덤벼봐 어디‘
인생은 링이며, 태어난 이상 링 위에 설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우리는 타고났다고 누군가 그랬다.
또, 세계적인 복서 마이크 타이슨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쳐맞기 전까진”
쳐맞지 않기 위해, 쳐맞더라도 주저 않기 위해
오늘도 뛴다. 인생이란 링 위에서 즐기는 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정성스럽게 휙휙 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