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어느 워킹맘
오늘 아침 출근 준비는 정말이지 패닉이었다.
어제 밤사이 발목 주변에 모기에게 4,5군데를 뜯겼는데, 출근길 집 앞 좁은 도로를 건널 때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너무 정신없이 아침시간을 보내면서 아침 2시간 내내 못 느끼던 가려움이다.
오늘은 브런치에 맥락이 없는 괴발개발이더라도 꼭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택근무, 순기능과 역기능
2020년 2월 27일. 회사는 방송 필수 인력을 제외한 전 직원에 대해서 재택근무 실시 공지를 내렸다.
뉴스에서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라고 여러 번 잔소리 같은 보도가 있었을 때조차 답답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던 나도 마스크를 쓰고 다닌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날이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전염병, 코로나의 공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솔직히 재택근무 실시 첫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몹시 가벼웠다.
하루라도 월급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얻는 '휴가'같은 기분이 들었고, 살짝 들떴었다고 고백한다.
그때는 이렇게까지 '당연했던' 일상의 것들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리움으로 변해버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고, 이렇게까지 길게 갈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재택근무는 3일, 일주일씩.. 조금씩 연장되면서 2달이나 이어졌다.
아이의 일상이 여전히 멈춰있는 상황에서 내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초반의 혼란을 조금이나마 함께 적응해나갈 수 있었기에, 나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해 준 회사에 감사한다.
'재택근무? 웬 호사?'라고 생각하는 더 많은 워킹맘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녀들의 아이들에게 정말 마음이 쓰인다.
4월 말까지 재택근무를 하면서 있었던 순기능과 역기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재택근무의 순기능 *
1. 아이와 친해졌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주중에 육아를 도맡아 해 준 엄마 덕분에 그 힘들다는 미운 4살까지도 나는 찐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인정한다.
내 입장에서는 아이를 거저 키웠다.
그런데 그런 만큼 아이와의 교감도 얕았던 것 같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육아를 담당했던 엄마들에게는 욕먹을 얘기일 것 같지만, 24시간 동안 아이와 붙어있으면서 솔직히 약간 행복감도 느꼈다. 아빠와 더 친했던 아이와 부쩍 친해졌다.
나중에는 점심 메뉴 사다리 타기 등을 통해서 뻔한 메뉴라도 약간 놀이처럼 만들어 보았는데 아이가 몹시 좋아해 주었다. 내가 육아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근자감마저 느껴졌다.
(회사에서 들으면 또 횡당 하겠지만) 재택근무에서 얻은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었다.
2. 살림이 조금 늘었다.
어렸을 때 네 남매의 엄마였던 친정 엄마는 짜증이 많았었다.
아빠와의 결혼을 후회하는 얘기를 털어놓기도 했고, 밥하는 고충을 무심코 우리에게 얘기하기도 했었다.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어린 30대였다.
나이가 들고 엄마가 된 이후에 비로소 그때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엄마를 이해했다.
엄마는 혼자 독박 육아를 감당하기에 신체적으로 벅찼을 것이고, 또 아직은 어린 30대였을 것이다.
그 당시 엄마는 '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재택근무 동안 온몸으로 실감했다. 정말 우리 집 3식이가 된 아들은 꼬박꼬박 식사를 찾았고, 내가 '배달과 HMR'없이 준비하는 순도 높은 엄마표 식사를 준비하려고 욕심을 부릴수록 부엌에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밥상 차리기에도 경험도 없고 서툴러서 결과물이 간단해 보이는 소박한 한 끼를 완성하는데도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했다.
만 시간의 법칙도 있지 않은가. 연습하고 경험하면 다 어느 정도는 좋아진다.
나도 살림이 조금 늘었고, 그 덕분에 눈에 안보이던 일거리도 점차 눈에 들어왔다.
3. 상사의 즉흥적인 오더가 없어졌다.
'불필요한 업무가 없어졌다'라고 썼다가 제목을 고쳤다.
상사의 즉흥적인 오더도 다 업무의 일부니까.
사무실에 앉아있다 보면 상사들은 업무파악을 하면서 이것저것 일을 덧붙여 시킨다.
자료, 데이터, 급한 확인 등 우선순위의 업무를 치고 올라오는 다양한 중간 요청사항들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왜냐면 그 또한 그런 중간 요청사항들을 끊임없이 접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으면서 그런 즉흥적인 오더가 사라졌다.
오늘 '이 일을 하기로' 계획했으면 딱 그 일만 하면 되는 상황이 왔다.
물론, 재택근무가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되면 다른 형태로 좀 더 효율성 있는 업무환경이 구축되었겠지만 허겁지겁 임시로 시작한 재택근무 기간 동안 상사의 미세한 터치는 역시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 재택근무의 역기능 *
1. 무기력해졌다.
움직임이 극히 제한되면서 군살이 여기저기 붙기 시작했다. 원래 움직이는 것도 싫어하기도 하고 맥주 마시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출근이 만들어준 반강제성 규칙적인 생활이 사라진 상황까지 겹쳐 몸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몸이 무거우니까 무기력해졌고 바이러스 때문에 바깥출입도 제한되니까 더더욱 무기력해졌다.
4월 말, 재택근무를 마치고 출근을 시작했다.
무기력함이 어느 정도는 사라졌지만, 이전의 활력을 되찾지는 못했다.
나는 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힘을 내는 편이었고, 기대감이라는 아드레날린을 장착하고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래를 생각하면 전혀 희망적이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희망을 일궈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약간 즐겁게 살아갈 내면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최근 들어 흘러가는 대로 두다가는 더더욱 무기력감이 심해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목표를 잡고 나를 좀 더 타이트하게 조여야 할 것 같다.
2. 일은 했는데 완결 짓지 못한.. 어중간한 기분이 내내 든다.
오늘 해야 할 일은 마무리를 했는데, 상사로부터 꼼꼼한 피드백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 잘된 것인지, 잘 안된 것인지.., 완료가 된 것인지.. 뭔가 보완해야 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면 미팅을 위한 출근이 필요했다.
게다가 나는 수출일을 하고 있다. 바이어들, 상품 협력사들과의 미팅이 원천적으로 막혀버리자
일이 잘 진척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얼굴을 마주한다 라는 의미를 가진 '대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저 얼굴만 보는 게 아니라 대면을 통해서 엄청나게 많은 언어적, 비언어적 정보와 교감이 생긴다는 것.
이를 통해서 비즈니스가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것.
그래, 전통적인 일처리 방식이었다.
이제 대면과 접촉이 없으면 허전하던 그 사이의 무언가를 채워나가야만 한다. 일을 완결하기 위해서.
세상은 그렇게 바뀌고 있다.
3. 지출은 줄지 않았다.
사 먹지 않고 집에서 해 먹으면 지출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바깥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니, 소비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식재료를 똘똘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나의 허술한 살림법과 냉장고 안에 들어갔던 같은 식단을 두 번 연속 먹지 못하는, 우리 가족의 까탈스러운 입맛 덕분에 버리는 재료, 그로 인해서 또 새롭게 사야 하는 쇼핑 목록이 점점 늘어만 갔다.
재택근무 초반에는 이것저것 도전하느라고 정말 식재료를 많이 구입했다.
결론적으로 사회활동이 줄어든 것과 지출이 줄어드는 것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았다.
내가 슬기로운 살림을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규모 있게 가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실감했다.
그런 의미에서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엄마들은 참 대단하다.
엄마의 효율적이고 전략적인 살림 운영이 있었기 때문에 아빠의 쥐꼬리만도 못한 월급으로도 우리 여섯 식구는 살아갈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조금씩 저축해서 집도 사고 살림도 불려 나갔던 엄마..
늘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다고 까칠한 소리를 하던 엄마를 생각하면, 진짜 그랬을 것이다.
맞벌이이기 때문에 쉽게 돈을 쓰는 것으로 많은 것을 해결해왔던 나는 살림도 맞벌이 방식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출이 줄지 않는 것은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아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지 않는 것과도 연관성이 있었다.
나를 둘러싼 사회의 배려과 행정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4. 배송 박스가 산처럼 쌓였다.
이것은 재택근무의 역기능이라기보다 코로나 시대의 역기능에 가깝다.
외출이 위험해지면서 이커머스를 통한 상품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나는 이커머스 업계에 있기도 하고, 워낙 예전부터 온라인에서 쇼핑하던 습관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쇼핑과 관련해서는 큰 변화가 없을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커머스에서 판매하기 어려운 카테고리, 신선식품.
이미 신선 식품의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던 쇼핑몰 충성도가 부쩍 증가했다.
거의 모든 장보기를 온라인에서 해결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쿠*의 노예가 되어갔다.
필요한 식재료도 다 있고,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에 우리 집 앞에 와있다.
배송이 빠르다는 것과 배송이 예측된다는 것.
두 가지의 시너지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지출의 대부분을 *페이가 차지했다.
그러면서 증가한 것은 배송 박스였다.
집에는 그득그득 박스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평소 환경을 깊이 생각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이거 이래도 되나'싶은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신선식품 배송에서 그나마 냉매로 얼음팩이 오면 다행이었다.
어떤 상품에는 3,4개씩 무거운 화학물질 냉매가 들어있는 배송이 오기도 하였다.
버릴 때 부피도 많이 차지하고, 또 단순히 냉기를 위해서만 쓰이는 냉매재를 보면 마음이 심란했다.
언택트와 배송 박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된 것 같다.
내가 직접 마트를 가서 물이며 식재료, 생활용품 등을 구매하고 하나의 박스에 담겨나 장바구니를 이용해서 운반하던 수고로움은 로켓 배송비와 배송 박스로 대체되었다.
내 노동을 대체하는 대가로 돈을 주고 편리함과 환경 파괴를 동시에 산 것이다.
'이 많은 종이들, 이 많은 비닐들은 다 재활용이 될까, 어떻게 될까..'
재활용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