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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Nov 10. 2021

'심적 소멸' 직전의 인간

한 인간이 소심해져 가는 과정에 대한 고찰이다.

이 글은 한 인간이 창의력과 의지력, 열정을 잃어가는 과정에 대한 보고서이며, 군중 속으로 사라져 소멸되어 버리기 직전의 자신을 스스로 구하고자 노력하는 이야기이다.


실패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과 노하우는 어디서든 넘쳐난다. 책, 유튜브, SNS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니고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많은 사람들의 '좋아요'와 '댓글'을 받는 반짝반짝 빛나는 인생을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주식과 재테크로 큰 부를 일으킨 사람들이 특히 화제이다. 같은 시도를 한 사람 중 실제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일 텐데 그 많은 실패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간접 경험일지라도 100만 장자가 되고 싶어 하고, 내가 공부를 잘 못했더라도 공부로 성공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 또한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비결을 배우기 위해서 콘텐츠를 많이 기웃거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 고난의 능선을 넘고 펼쳐진 부와 명예의 세계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 마음은 더 가난해졌다. 본능적으로 나는 이번 생에서는 그들처럼 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극한의 노력을 할 수 있는 것도 비범한 능력이다. 그 정도로 나를 몰아세워 세상에 없던 것을 일구어내게 만들 정도의 집중력, 근성, 에너지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특별하게 살 줄 만 알았다.


나는 내가 특별할 줄만 알았다. 사 남매의 셋째인 나는 똑똑했고 영민한 아이였다. 또래들보다 말도 곧 잘해서 발표도 도맡아 했다.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고 노래도 잘해서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해보라고 했을 정도였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내게도 한 때 그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어렵지 않았고 그걸 즐기던 때도 있었다.


뭔가 한 가지 딱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은 없었지만 뒤쳐지는 것도 없었다. 호기심도 왕성해서 이것저것 경험해보기를 좋아했다. 어른이 되어 깨닫게 되었지만 이것저것 고만고만하게 잘하는 것은 성공하고 유명해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꿈이 없었다.


내가 평범해진 원인의 뿌리는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모두 하얀 도화지 같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들이고 자기가 하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비슷하게는 이뤄나갈 수 있는 나이이다. 도화지에 무엇을 그려내고 싶은지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꿈이 없었다. 꽤 쓸만한 재주로 가지고 있었던 노래 실력을 꾸준히 키워냈더라면 가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꽤 빨랐던 달리기 실력을 꾸준히 연마했더라면 육상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나는 딱히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었다. 대학만 들어가면 되는 줄 알았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만 입학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지금 마흔 살이 넘어 평범하고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면, 더더욱 어려서 가지는 꿈과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니 고등학교 2학년이라도 치더라도 그때 모든 아이들은 같은 출발선에 있다. 아이들의 시간은 공평하고 아이들의 인생이 비슷한 시기가 있다. 그러나 서서히 아주 작은 차이로 인하여 한 아이가 그려내는 인생의 직선은 계속해서 0도를 그리며 쭉 평행선을 그을 수도 있고, 90도로 완전히 방향을 선회할 수도 있다. 출발이 같았던 두 아이가 40년이 지나서 자기가 그어온 인생의 선을 돌아보면 초반에 만들어진 작은 차이가 얼마나 큰 간격으로 벌어질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부모님의 관심과 열정, 집안의 부 등 외적 요인으로 인하여 아이의 경험치는 많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내면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떤 꿈을 그리면서 성장하는지. 그 내면의 동력으로 만들어내는 인생의 선이 그 아이의 미래를 끌고 나간다.


결론적으로 나의 평범함의 근원은 과거의 나로부터 온 것이다.



실패도 성공도 습관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성공도 성취해 본 사람만이 그 짜릿함을 안다. 나는 성공에도 공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연한 성공은 없다. 성공해본 사람은 스노볼 이론처럼 성공의 경험을 계속해서 눈덩이처럼 굴리게 되고 점점 더 대단한 성공을 일구어 낸다.


반면 성공의 과실을 맛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더라도 자기 확신이 없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마음속으로 목표는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 이 이야기를 내보는 건데, 여전히 '누가 이런 글을 읽고 감동할까?' '너무 부정적인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키보드가 빠르게 움직이지를 못한다.


거듭되는 실패는 습관이 된다. 작은 좌절이 모이면 큰 마음의 트라우마가 된다. 그렇기에 어려서부터 작은 성취를 조금씩 쌓아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목표를 조절해야 한다. 또한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이렇게 글을 한편 완성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취가 아닌가. 눈높이를 조절해서 작은 성공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 작은 좌절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이고 격려해야 한다.



남들의 성공을 공부할수록 초라해져만 갔다.


성공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읽어갈수록 나는 점점 초라해져만 갔다. 심적 소멸이 아니라 존재의 소멸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과 나의 능력치가 다른데 나는 자꾸 남의 이야기를 읽으며 '너는 왜 저렇게 못해'라고 그와 나를 비교해가며 나 스스로를 비난하고 책망했다.


세바시, TED, 유튜브의 영상들...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나와서 강연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그걸 듣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로부터 영감과 자극을 얻으려는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모두 건강한 자극만 받고 갈까? 어떤 사람 중에는 나처럼 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책망하기도 하고, 성공한 주인공을 질투하는 유치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없을까?


평범하고 실패만 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로 나의 이야기인데, 왜 다들 외면할까? 본인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서? 배울 점이 없어서..? 나는 실패한 사람들의 실패담만을 방송하는 방송국을 만들어볼까, 이런 실행도 하지 않을 방구석 사업계획을 수립해보기도 했다.



내 안에 있는 선생님을 죽이자.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매일매일의 인생이 정신병 초기인 나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내 안에서 끊임없이 나의 행동을 평가하고 지적하고 질책하는 내면의 선생님이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조차 내 선생님은 그 순간을 참지 않는다.



'왜 너는 못하니? 남들처럼 딱 마음먹으면 잠도 거의 안 자고 미친 듯이 몰입할 수는 없는 거야?'

'술은 왜 못 끊어? 아침에는 꼭 무슨 일이 있어야지만 일찍 일어나는 거지?'

'인생이 왜 이렇게 게으르고 무의식적으로 반복만 하는 건데? 집-회사-집-회사 하다 보면 뭐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아?'



내면의 선생님은 시간 날 때마다 나를 질책하고 나는 '그래, 내일부터는 달라져야지!' 하는 24시간도 안돼서 휘발되어버릴 짧은 다짐을 거듭한다.


선생님의 충고를 따라서 노력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태생부터 주의 산만하고 집중하는 호흡이 짧은 사람인 걸 어쩌라는 거냐.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금요일 저녁의 유혹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고, 주말 되면 침대와 한 몸이 되고 싶은 나는 그럼 죽어야 하나?


아니, 대신 나는 내 안에 있는 선생님을 죽이기로 한다.

남들과 비교만 하는 선생님, 나만의 개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선생님, 지금의 내 모습에 결코 만족해하지 않는 또 다른 나인 내 안의 선생님을 죽여야겠다.


그래서 지금 내 그대로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고, 타인의 성공에 배 아프거나 의기소침해지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들어야겠다.



튈 때마다 정 맞았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나는 인생에서 튈 때마다 사람들이 가만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튈 때마다 어김없이 정을 맞았다.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정 맞았던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 맞았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남들 앞에 서기 두려워하고, 내가 뭘 말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먼저 생각하게 만드는..

어떻게든 튀지 않으려고, 평범해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소시민을 만든 정 맞았던 경험들.


그 트라우마를 이 글들을 통해서 극복해보려는 게 나의 아주 큰 목표이다.

좌절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노력해보려고 한다.


세상에 내 이름 석자를 아는 사람이 천명을 넘지 않고, 통장 잔고는 바닥 가까이 늘 찰랑찰랑하는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나 잘 살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나처럼 무수히 많은 검은 점 같은 세상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으쌰 으쌰 하고 싶다. 그러고 싶어서 써보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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