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간 겁쟁이 외계인 시리즈
나는 늘 쿨한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예를 들면 누가 자길 싫어해도 ‘그래서?’ 라고 넘길 수 있는 사람들. 혹은 ‘원래 인생은 마음대로 안되는거야’ 하며 삶의 쓴 맛을 즐기는 사람들.
내가 어른이 된다면 나는 꼭 그런 사람이 되고싶었다. 울고, 떨고, 걱정하는 건 너무 멋이 없어 보였다. ‘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모든게 별게 아닌것 같아’ 의 ‘저 사람’이 나는 정말 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간절했던게 원인이었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정확히 ‘쿨’함과 정반대인 사람이 됐다. 같이 있으면 모든 게 별 것 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사소한 것에 열을 내며 발을 동동구르는 그런 어른이 됐다.
특히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 때 내 찌질함은 극에 달한다. 요즘 나는 러닝동호회에 나가고 있는데,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깊은 번뇌에 빠진다.
‘아까 나 왜 그런 말을 했지?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했을듯’
‘나 싸가지 없어 보였으면 어쩌지?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샤워를 하는 화장실에서,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나는 자꾸만 이상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운동으로 인한 피로 보다도 과도한 생각으로 인한 피로가 날 더 힘들게 할 정도였다. '제발 이런 생각 좀 그만하자!' 는 다짐은 그 생각을 또 다시 불러와 날 약올렸다.
내게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도로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갑자기 빨간 불이 켜지고, 예상할 수 없는 커브길이 나타나고, 어느순간 여러 개의 방지턱이 땅에서 솟아나는 도로를 벌벌 떨며 지나가야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살 땐 왠만하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정함을 잘 견딜 자신도 없었고, 내 주변엔 이미 좋은 사람들이 충분했기 때문에 굳이 그런 불안정함을 견딜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 온 뒤로 나는 그 도로를 울며겨자먹기로 운전해야 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이 낯선 땅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 당분간은 미국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괴로운 생각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정말이지 가죽잠바에 썬글라스를 낀 쿨한 언니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그 언니가 ‘널 싫어해? 그럼 너도 싫어해!’ 하며 핸들을 놓아버리려는 내 손을 꼭 잡아주면 좋겠다.
물론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 안에는 그러한 언니가 없다. 나보다도 더 벌벌 떨며 웅크린 소녀가 있을 뿐이다. 어쩌겠는가, 쿨한 언니가 될 운명이 아닌 것을. 한국에서도 쿨하지 못했는데, 타지라고 뭐 별반 다르겠는가.
나는 나에게 손을 뻗으며 말한다. 받아들여. 가끔은 뜨거움이 차가움을 이긴다. 합리화라 해도 이것 또한 타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미국으로 간 겁쟁이 외계인 시리즈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