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간 겁쟁이 외계인 시리즈
요즘 잡생각이 많다. 한국에서 살 땐 9시, 10시만 돼도 쏟아지던 잠이 미국에서는 새벽 2시를 넘어가도 도통 오지 않는다. 나는 숙면에 대해 꽤 자부심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남들이 말하는 좋은 수면 습관을 다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인류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인 ‘자기 전 핸드폰 멀리하기’를 옛날부터 잘 실천해 오던 사람이랄까.
그런데 요즘은 어쩐 일인지 아무리 핸드폰을 멀리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일종의 치트키라고 할 수 있는 ‘밤에 책 읽기’로 잠을 유도해 봐도 쉽지 않다. 눈을 감으면 ‘자 이제 시작이야’ 하곤 하루 종일 뒤에 숨어있던 생각 주머니들이 요란하게 등장한다.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트램펄린이 되고 그들은 자유롭게 그 안에서 뛰어다닌다.
오늘 너 뭐 했어? 정말 부지런했어? 에이 남들도 그만큼은 살잖아. 너 자신 있어? 근데 그 사람, 너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아. 네가 쓴 글 진짜 쓰레기야. 어차피 의미 없어. 고치지 마. 솔직히 너도 의미 없다고 생각하잖아.
어쩜 이렇게 말도 많고 질문도 많은지. 심지어 그들의 질문은 내 아픈 곳을 너무나 잘 찌른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려 애를 쓰다가 결국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버린다.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끄적거리며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우울이 ‘이때다!’ 하고 취약해진 내게 달려들곤 하는데,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을 한다. 울 새도 없이 손을 빠르게 움직이는 거다. 그리고 죄 없는 눈꺼풀이 이젠 내려가고 싶다며 통곡할 때가 돼서야 잠에 든다.
사실 나는 그 생각 주머니들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수수께끼, 몇십 년 동안 내가 한 번도 풀지 못했던 그 문제에서 탄생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살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미스터리.
‘인생을 왜 살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이 질문은 중학생 때부터 시작됐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상했고, 열심히 사는 건 기괴했다. 하지만 그 이상한 것을 나도 계속 하긴 했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니까. 나중에 사람답게 살고 싶으면 지금 그런 고민할 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우라고 하니까. 나는 당장에 닥쳐올 시험과 모의고사 성적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았다.
대학생이 돼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다. ‘너는 인생의 원동력이 뭐야?’ 대답은 다양했다. 자기가 전공하는 과목이 너무 좋다는 미치광이의 답변도 있었고(그는 대학원에 갔다), 이루고 싶은 소중한 꿈을 비밀스럽게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시큰둥한 얼굴로 ‘그런 게 어딨어, 인생은 그냥 사는 거지’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어느 것도 정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처럼 취업에 의미를 뒀다. 안정적인 직업, 나도 당시에는 그게 가장 간절했으니까. 그걸 가지지 못하면 패배자가 될 것 같았다. 인생을 왜 사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패배자가 되는 건 싫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안과 현타를 꾸역꾸역 밀어내며 취업에 매달렸다.
그렇게 꼬박꼬박 돈을 받는 직장인이 됐던 첫날, 나는 그때 느꼈던 허무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합격 소식에 펑펑 울어놓고는 바로 몇 시간 뒤 ‘뭔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수능 기출문제를 인쇄했다. 인생의 의미가 또다시 단박에 사라진 기분, 손에 쥐고 있던 소중한 것이 저 멀리 달아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이번엔 나름 편안하긴 했다. 그토록 원하던 돈과 자율성이 내 손에 있었으니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죄책감 없이 주말에 쉴 수 있었고,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었다. 재미있어 보이는 취미를 도전할 수 있었고 남들에게 계산 없이 베풀 수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정해진 일과 덕분에 수수께끼를 모른 척하는 게 가능했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둘러 쌓인 수수께끼는 점차 작아졌다.
그런데 최근 그 수수께끼가 몸을 불렸다. 나와 함께 낯선 땅에 온 수수께끼는 불안과 막연함을 먹으며 순식간에 더 크게 자랐다. 열심히 혼자 영어 공부를 할 때, 안 써지는 글을 끌어안고 끙끙댈 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올 때, 아무도 없는 헬스장에서 혼자 운동할 때, 나는 예고도 없이 갑자기 커다란 수수께끼와 맞닥트리게 된다. 그런 날은 밤새 생각한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이게 지금 다 무슨 소용이 있지? 왜 살아야 하지?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외로워진다.
아마 나는 평생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없겠지. 하지만 다행인 건 내가 그 수수께끼와 함께 몇십 년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점이다. 그건 앞으로도 내가 수수께끼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내 일상을 미국에서 새롭게 세워 나가는 동안 수수께끼는 시도 때도 없이 날 무겁게 짓누르겠지만, 언젠가는 또 ‘그냥 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고 가벼워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인생은 별거 없어. 그냥 그 무의미함과 계속 싸우는 거야’
세네 번쯤 중얼거리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물론 그때도 ‘왜 싸워야 되는데’, ’ 매일 싸워야 하는 게 어떻게 별게 아니야’ 하는 생각 주머니들이 머릿속에 나타나곤 하지만 괜찮다. 살아갈수록 ‘맞아 별거 아냐’ 하고 응원해 주는 생각 주머니들도 생겨나고 있으니까.
모두가 승리하고 또 패배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를. 싸운다는 건 어찌 됐든 살아남았다는 증거니까.
Q. 당신의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