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유독 내게만 어려운

미국에 간 겁쟁이 외계인 시리즈

by 글동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은 영영 가질 수 없다고 느껴지는 능력이 하나씩 있다. 길 찾기나 혼자 여행하기, 아침 일찍 일어나기나 자연스럽게 사과하기 같은 것들. 살다 보면,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데 유독 내게만 어렵게 느껴지는 것들.


내게는 그게 바로 운전이다.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운전’ 이 아주 필수적이지만, 내게 운전이란 평생을 노력해도 해낼 수 없는 것, 영원히 닿지 못할 우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굳이 운전을 할 필요가 없었다. 대중교통과 내 두발만으로도 충분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귀찮아서 안 간 적은 있어도, 갈 방법이 없어 못 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차를 가지고 있는 게 손해처럼 느껴졌다. 자동차가 편히 살아남기에는 내가 살던 서울 땅이 너무 좁고도 비쌌으니까.


그래도 면허를 따긴 땄다.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가 미국에 오기 5개월 전쯤 간신히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어차피 미국에 가면 필기시험부터 다시 봐야 했지만(내가 사는 곳은 국제면허증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한 번 운전을 하고 가는 것과 아예 무면허로 미국에 가는 건 다를 것 같았다.


따는 과정은 당연히 순탄치 않았다. 애초에 운전면허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하는 게 큰 산이었다. 당장의 생존에 필요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니, 자꾸만 뒤로 미루게 됐다. ”미국에 간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면허를 꼭 따야 돼?” 하며 남편에게 의미 없는 투정도 부렸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들은 소녀시대 언니들의 노래가 내 마음을 날카롭게 찔렀다.


’ 겁이 나서 시작조차 안 해봤다면, 그대 투덜대지 마라 좀 GG‘


나는 그 길로 뉘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운전면허 학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등록 완료를 알리는 경쾌한 문자 소리가 영영 끝나지 않을 수업 종소리처럼 들렸다.


처음 운전대를 잡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이 커다란 물체를 온전히 움직여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는 겁쟁이답게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특히 속도 내는 것에 벌벌 떨었다. 고작 20km로 달렸을 뿐인데 자동차가 하늘 위로 치솟는 느낌이 들어 심장이 아플 정도였다.


결국 나는 도로주행 시험에서 40km의 속도로 달리다 저속 감점을 당했다. “이렇게 달리면 뒷 차 답답해서 죽습니다.” 지금 운전대를 잡은 내 심장이 사망 직전인 것도 모르고 감독관은 얄밉게 떠들어댔다.


너덜너덜해진 심장을 끌어안고 ‘합격’이라 적힌 종이를 손에 쥐었을 때는 정말 짜릿했다. 하지만 미국에 온 지 벌써 5개월째,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운전대를 잡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타지에 적응하면서 내 마음을 먼저 돌보는 사이, 운전과 나 사이의 빈 공간에 불안이 가득 들어찬 것 같다.


내가 핸들을 잡는 순간, 갑자기 자동차가 제멋대로 움직일 것만 같고, 남의 차가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올 것만 같다. 주차를 하다가 남의 차를 긁는 상상,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다치게 하는 상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한국에서 딴 운전면허는 내가 만들어낸 기적이 아니라, 학원비 80만 원이 만들어낸 기적일지도 모른다.


소녀시대 언니들의 가사마저 힘을 잃었다. 나는 이제 “투덜대지만 않으면 괜찮은 거죠?” 하며 언니들을 달랜다. 어느 날은 그냥 미친 척 운전을 해버릴까 하다가도, 막상 운전대 앞의 나를 상상하면 다소곳이 손이나 간절히 모으게 된다. “제발, 혼자서 달리는 자동차를 더 빨리 만들어주세요.” 아마 지구에 사는 인구 중 적어도 백 명은 내 기도 덕에 행복해질 게 분명하다.


언젠가는 이 글을 보면서 웃을 수 있을까. 남편 대신 운전대를 잡고, 밥 먹듯이 운전하며 도로를 누비는 날이 올까?


피할 수만은 없다는 것도 알고, 막상 해 보면 별게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나는 자꾸만 동그란 운전대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나는 결국 오늘도 운전에 대한 생각 자체를 애써 지워본다. 일단은 조수석에 앉는 것만으로도 벌렁거리는 나의 콩알만 한 간을 좀 더 키워내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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