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말로 천냥빛을 갚는 나라

미국에 간 겁쟁이 외계인 시리즈

by 글동

남편은 밖에서 외식을 할 때마다 핸드폰으로 계산기 앱을 켠다. 팁을 누구보다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하나의 습관이다. 가끔 어떤 식당에서는 세금까지 포함된 가격에 팁을 청구하기도 해서, 남편은 그런 꼼수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한다.


식당에서 있지도 않은 메뉴를 주문하거나 물을 쏟지 않는 이상, 팁을 얼마 주느냐는 서버가 얼마나 상냥했느냐에 달려있다. 서버가 친절하게 말한 정도, 다정한 표정을 지은 정도가 기준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서버가 식사 중 여러 번 우리 테이블을 살펴서, 나가기 직전까지 ‘남은 커피 싸줄까?’라고 물어봐서, 직원이 ‘네 셔츠 너무 예쁘다’라고 말해서 팁을 준다. 세상에.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정말 미국에서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 게 가능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런 기준으로 팁을 주고 나면 나는 잠시 묘한 기분에 휩싸이는데, 그건 사람이 사람에게 내비친 다정과 친절을 내가 돈으로 샀다는 생각 때문이다.

좋아하던 취미가 직업이 되어 ‘돈’과 연결되면 그 좋아하는 마음이 쉽게 변질되는 것처럼, 그 사람의 진심을 내가 변질시켰다는 기분이 종종 든다.


팁은 사람 간의 감정 교류에 대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그 사람의 정성에 내가 긍정적인 감정을 얻으면, 그 감정을 다시 돈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는 대면 상호작용을 중요시 여긴다. 한국에서는 방 한 칸짜리 가게를 가도 볼 수 있는 키오스크를 미국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게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시골이기 때문에 큰 대형마트에서나 키오스크를 볼 수 있고 웬만해서는 직원에게 직접 주문을 해야 한다. 영어를 잘 못하는 건 둘째 치고, 한국에서도 대면주문을 안 하던 나에게 키오스크가 없는 세상은 큰 재앙처럼 느껴졌다. 미국만큼 기술이 발전한 나라가 키오스크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어쩐지 모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팁 문화와 연결시켜 보면 키오스크가 미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팁은 사람 대 사람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사람 자리에 기계가 불쑥 들어오면 그 전제 자체가 깨져 팁의 의미는 모호해진다. 더군다나 기계는 정확하고 빠를 순 있어도 단골손님의 취향을 기억하거나,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지는 못한다.


그리고 사실 애초에 미국은 굳이 키오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키오스크가 성행하는 이유는 고용주들이 높은 인건비를 줄이고 싶어 하기 때문인데, 미국은 한국에 비해 고용주들이 받는 인건비 부담이 적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최저임금 제도로 시끄럽고, 고용주들은 인건비를 줄이고자 애쓴다. 어떤 고용주들은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피크 타임에만 짧게 사람을 쓰고, 그러다 아예 키오스크로 사람을 대신해버린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편이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만큼 최저임금 규제가 심하지 않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팁 노동자, 즉 서비스 직군의 직원에게는 정해진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줘도 합법이다. 물론 팁을 포함해 수입이 일정 달러 이상이 돼야 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그 조건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럼 노동청에 신고를 하면 되지 않냐 싶겠지만, 미국은 전반적으로 노동청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다. 주마다 노동 관련 기관이 따로 있지만 대응도 매우 느리고 조사 자체도 대부분 흐지부지 시간을 끌다 끝나버려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


이런 마당에 마지막 희망은 '노조'겠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은 우리나라보다도 더 노조 가입률이 낮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이런 영상을 본 적 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미국 회사에서 잘렸습니다.’ 애초에 이런 게 가능한 것도 노조들은 힘이 거의 없고, 애초에 국가가 기업들의 자유를 더 우대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뭐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미국에서 내세우는 ‘자유’마저 사실상 돈 많은 자들에게 유리하다는 걸 알고 나선,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다.


‘한 사회가 얼마나 문명화되었는지는 그 사회가 가장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로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철저한 약자로 살면서 나는 이 말을 늘 되짚어 본다. 내가 또 다른 약자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도 늘 생각해 본다. 아마 내가 사는 동안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니, 이러한 고민은 하등 쓸데없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더 약육강식을 따르는 정글이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내가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 한, 적어도 내 삶의 작은 반경 정도는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며 계속 살아갈 수밖에. 약자에게 아름다운, 나만의 아주 작고 소중한 사회를 소망하면서.



Q. 여러분의 아주 작고 소중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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