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간 겁쟁이 외계인
얼마 전, 미국에서 남편 대학원 동기의 결혼식이 있었다. 미국스타일의 결혼식은 처음이라 출발하기 전까지는 굉장히 설레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식을 시작하자 내 입꼬리는 한계를 모르고 자꾸만 땅 밑으로 꺼져갔다.
미국은 한국과 멀리 떨어진 만큼 결혼식 문화도 한국과 정말 많이 달랐다.
일단 결혼식 진행 시간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나는 한국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나의 계획은 두 시간 정도 결혼식장에 머무른 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일곱 시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자는 내 말에 남편은 웃음을 터뜨렸다.
‘결혼식 자체가 열 시에 끝날텐데?’
나는 그 ‘열 시’가 밤 열시냐며 3번은 되물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아침 열 시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우리는 밤 아홉 시쯤 집으로 향했다. 놀라운 건 한 시간 일찍 빠져나온 우리가 가장 먼저 그 결혼식장을 나온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신랑의 지도 교수님까지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원래는 유교 한국인의 마음으로 '저 교수님만 집에 가면 우리도 가자' 라며 남편을 꼬셨으나 교수님이 집 가는 걸 기다리다가 밤을 새울 것 같아 도망쳤다.
물론 겁쟁이의 이러한 도망엔딩과는 별 개로, 미국 결혼식은 흥미로운 점들이 참 많았다.
첫 번째는 드레스 코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랑, 신부 어머님의 드레스코드. 요즘은 예전만큼 하객룩의 기준이 빡빡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신랑, 신부 어머님들은 정형화된 드레스 코드를 요구받는다.
보통 시어머니는 푸른 계열의 한복을, 친정어머니는 붉은 계열의 한복을 입는다. 예전엔 그 색깔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었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의미보다도 그저 시가와 친가를 구분하는 용으로 색깔이 쓰인다.
미국 결혼식에서는 신부, 신랑 어머님들이 자유롭게 옷을 입는다. 내가 갔던 결혼식에서는 신부 어머님이 초록 드레스를 입고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의 옷을 입고 딸의 결혼식에 참석한 미국 신부 어머님을 보고 있으니 우리 엄마와 어머님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도 좀 더 선택지가 넓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각자 본인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입장하는 어머니들을 혼자 상상했다.
두 번째로는 신랑, 신부의 입장이다. 한국에서는 화동 같은 이벤트를 제외하면 버진로드를 걷는 사람은 신랑, 신부와 부모님 정도이다. 그리고 하객들은 누가 입장하는지와 상관없이 성심성의껏 박수를 친다. 그건 한국에서 기본적인 예의로 여겨지고 가끔은 ‘예쁘다’ 라든가 ‘멋지다’ 같은 낯간지러운 말들이 버진로드로 쏟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신랑, 신부, 부모님뿐만 아니라 신랑, 신부의 형제자매 또는 친한 친구들도 버진로드를 따라 입장한다. 그리고 가장 신기한 점은 그들이 입장할 때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나는 어정쩡하게 올라간 손을 감추며 묵묵히 그들의 입장을 바라봤다.
후에 신랑의 외국인 동기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대부분 미국에서는 입장 노래에 집중하기 위해 박수를 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아마 미국에서는 박수 소리가 감동적인 입장의 분위기를 깨트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소심한 나의 성격에게 고마웠다. 괜히 자신감 있게 박수를 쳤다가 일생의 단 한 번뿐인 순간을 망친 민폐 하객으로 길이 기억에 남을 뻔했다.
세 번째는 밥이다. 한국에서 ‘밥’은 식장을 고를 때 가장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다. 반면 미국에서는 식사가 딱히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미국인들은 우리나라만큼 밥에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결혼식에 초대받는 것 자체를 굉장한 영광으로 여긴다. 우리나라처럼 대규모로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이 없고 소수가 모여 결혼식을 진행하는 게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실 밥보다도 함께 축하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핵심인 느낌이다. 뷔페 음식의 가짓수와 질이 결혼식에 대한 후기를 결정짓는 한국과 달리, 밥보다도 분위기에 중점을 두는 미국이 참 신기하고 색달랐다.
그래도 한국 결혼식 뷔페의 정석인 육회와 잡채가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네 번째는 부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부케 받을 사람을 미리 정한다. 단체사진 촬영 막바지에 사진기 사는 부케 받기로 지정된 사람을 앞으로 부르고 ‘높게 던져주세요, 예쁘게 받아주세요’ 등등의 요구를 한다. 부케 받는 사람이 꽃다발을 잘 잡지 못하면 부케를 3, 4번씩 더 던져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는 게 바로 한국의 문화다.
반면 미국에서는 그런 걸 딱히 먼저 정해두지 않는다. 애인이 있든 없든,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의 여성이라면 모두 부케를 받을 수 있다. 즉, 그날 누가 어디에 서 있는가와 누가 조금 더 팔을 빠르게 움직이는 가에 모든 운명이 맡겨진다.
심지어 요즘 한국에서는 부케를 받은 사람이 그 꽃을 정성스레 말려 신부에게 돌려줘야 하는 문화도 유행 중이다. 우리나라 웨딩업계에는 정말 이상한 게 많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문화가 제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문화는 그저 즐거움의 소재였던 부케 던지기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부케 받는 사람은 물론, 부케를 주는 사람까지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부케를 던지지 않았다. 부케 던지기 사진을 찍느라 하객들이 주린 배를 잡는 것도 싫었고,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내가 부담을 받는 것도 너무 싫었다. 내 부케는 날 예쁘게 낳고 기른 엄마에게 전달되는 걸로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시들었다.
마지막으로 놀라웠던 건 이들의 뿌리 깊은 파티 문화다. 사람들은 결혼식 내내 놀고, 마시고, 춤을 추며 놀았다. 미국인도 사람인지라 가끔 쉬긴 했지만 느낌 좋은 노래가 나오면 그들은 또다시 스테이지로 나가 몸을 흔들었다.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다 같이 춤을 추는 모습은 극내향형 인간인 내가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눈치가 보여 아주 잠깐 그 분위기에 머무르긴 했으나,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물과 섞이지 못하는 기름처럼 나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은 그렇게 3시부터 10시까지 쭉 계속 됐다.
한국에서 나는 결혼을 30분 안에 끝내야 했다. 순간순간들을 깊게 음미할 시간도 없이 직원들이 안내하는 대로 게임 속 NPC가 되어 하나하나 미션을 완료해야 했다. 신혼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야 비로소 내가 결혼을 했다는 것이 실감 났을 정도로 숨차던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미국 결혼식은 애초에 매우 긴 시간 동안 결혼식을 하기 때문에 모든 순간이 슬로 모션처럼 흘러간다. 당연히 신랑, 신부는 정신이 없겠지만 한국 신랑, 신부에 비하면 좀 더 결혼식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다.
물론 30분과 7시간 중 선택해야 한다면 난 30분을 선택할 것이다. 난 파티보다도 칼퇴에 익숙한 한국인이니까.
그럼에도 미국 결혼식은 점점 해괴해져가는 우리나라 결혼식 문화에 많은 귀감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