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글방01] 서점에서 자취방으로

주제: 나의 공간 연대기

by 글동

고등학교 2학년, 나는 종종 야자 땡땡이를 쳤다. 이미 어두워진 골목길을 혼자 걸어 도착한 곳은 노래방도, 피시방도 아닌 서점이었다. 나는 서점에서 아빠가 데리러 오는 시간까지 버티다가 부리나케 다시 학교로 돌아가곤 했다. 서점은 이름 있는 대형 서점까진 아니었지만 내가 사는 도시의 유일한 서점답게 무척이나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었다.


서점에서는 항상 고소한 책 냄새가 났다. 나는 이런 냄새가 내게서도 풍겼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서점의 냄새보다도 내가 더 좋아했던 것은 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이질감’이었다. 서점은 현실세계 같지 않았다. 그곳은 책, 의자, 나, 이 세 가지만으로도 잘 돌아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서점에 들어서면 나는 나 스스로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늘 내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엄마의 주름진 손, 예쁘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공부까지 잘하는 친구의 성적표, 내 외모를 한층 더 다운 그레이드 시켜주는 이마의 여드름 같은 것들을 나는 완벽히 잊을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그 세계가 서점에서 자취방으로 옮겨갔다. 나는 웬만해서는 블라인드를 걷지 않았다. 낮에도, 밤에도 현실의 틈을 보여주는 창문을 꽁꽁 가린 채 살았다.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내 속을 끓이는 통장잔고, 내 머리를 어지럽히는 인간관계, 짙은 안개처럼 불투명한 미래 같은 것들을 다 잊을 수 있었다.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 혼자 남겨지는 그 순간만이 진짜 내 현실처럼 느껴졌다. 집만큼 좋은 친구는 없었다. 나는 밖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너무 오랜시간 나의 세계를 떠나있던 사람처럼, 허겁지겁 집을 향해 뛰었다.


다른 세계에 대한 열망은 꽤 큰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책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서점을 사랑하고 모든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는 내 집을 사랑한다.


사람들에 치여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내 눈앞에 갑자기 끝없는 하늘색 바다가 펼쳐지는 것. 칼바람이 부는 겨울, 어느 순간 손에 따뜻한 모래알이 잡히는 것. 나는 여전히 그런 것들을 동경한다. 어쩌면 나는 평생을 스스로 이 세계의 이방인이라 여기며 살아갈 운명인지도 모른다.




*주제는 양다솔작가님의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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