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와의 불편한 동거
감정 성인이 되고자 하는 수많은 현대인은 공감하겠지만, 나는 추악한 시기심과 샤덴프로이데를 꽁꽁 숨기며 사는 사람이다. 이런 불편한 감정들을 그대로 마주 본다는 선택지는 나에게 없었고, 늘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대로 느끼라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성인인 내가 그런 감정들을 그대로 둘 수가 있는가? 당연히 갈무리하고 표출하지 않으며 억눌러야 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다가 작가의 이야기에 감화되어 주장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분노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분노를 꼬아서 생각하지 말고,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료가 나의 실수를 지적하면 ‘저 사람 나를 음해해서 승진 누락을 시키려는 거야’가 아닌 ‘내가 틀렸고 저 사람이 지적한 것 때문에 창피해서 화가 나는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화자의 의도를 곡해해서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 보는 버릇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상처에서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해온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를 의식하지 않고 보통은 공격의 의도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작가가 이야기한 예시를 보며 거울 치료가 많이 되었고 앞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도 금방 지워버리고 분노를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앙심과 쌤통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이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꺾어 버리는 데 달려 있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유익했다. 나의 신념은 내가 가져가야 하는 것이고 타인으로 인해서 완성되면 안 되는데, 심지어 그 타인이 내가 반대하는 타인이라는 것은 불행하다.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삶인데 왜 시기와 샤덴프로이데로 인생을 낭비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시기심이 생길 때면 쿨하게 ‘그래, 난 지금 부러워’라고 인정하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범퍼 스티커 이상의 존재니까.
나의 정원에 사는 지렁이는 여전히 내가 보기에는 징그럽고 추악하다. 이런 감정을 가진 나에게 실망스럽고 가끔 소름도 돋는다. 그럼에도 나는 지렁이를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amor fati’니까. 내 감정에 두려워하지 말고, ‘감정 성인’이 되려는 시도를 그만두어야 한다. 아직 나는 지렁이를 용납하는 단계도 시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렁이를 서서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내가 되어야겠다. 그러면서 나를 온전히 알고 사랑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