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의 흉기(딥페이크)
(부제: 놀이가 된 범죄, 10대 딥페이크의 민낯)
여성청소년수사팀에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한 젊은 여성분이 쭈뼛거리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보통 범죄 피해자들은 화가 나 있거나 겁에 질려 있기 마련인데,
그분의 표정은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마치 들어오면 안 될 곳에 발을 들인 사람처럼, 입술을 파르르 떨고 계셨습니다.
"저... 고소장을 접수하고 싶은데요."
"어떤 일 때문에 오셨나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제 얼굴로... 성인용 영상을 만들어서 돌려본 사람들이 있어서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최근 급증하는 흔한 사이버 범죄 같지만,
이어진 말은 제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가해자가 바로 자신이 가르치는 학교의 남학생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제 사진을 딥페이크로 합성해서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돌려봤대요.
단톡방 내용을 우연히 본 다른 학생이 알려줘서 알았어요. 도저히... 도저히 용서가 안 돼요. 교단에 서면 아이들이 다 제 몸만 보는 것 같고, 수치스러워서 학교를 갈 수가 없어요."
선생님은 제자들을 고소하러 경찰서까지 와야 했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
이제 아이들의 스마트폰 속에서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 아닌,
클릭 한 번이면 조작 가능한 성적 노리개로 소비되고 있었습니다.
SPO(학교전담경찰관)가 된 후 마주한 학교 현장은 더 참혹했습니다.
117 신고 센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비명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경찰관님, 같은 학교 남자애가 제 인스타 사진을 캡처해서 이상한 영상을 만들었어요."
"모르는 번호로 제 얼굴이 합성된 나체 사진이 왔어요. 유포하겠대요."
피해 학생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누가 볼까 봐 무서워서 학교 화장실도 못 가겠다고.
친구들이 수군거리는 게 다
내 영상을 봐서 그런 것 같다고.
"제가 한 것도 아닌데, 꼭 제가 죄인이 된 기분이에요. 죽고 싶어요."
피해자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죄책감과 수치심은 온전히 피해자의 몫이 되어버린 세상.
이것이 지금 우리 아이들이
매일 등교하는 교실의 현주소입니다.
피해자들은 지옥 속에 살고 있는데,
정작 가해 학생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바로
가해 학생들의 태도입니다.
학교 강당에 모여 범죄 예방 교육을 할 때 "딥페이크는 명백한 성범죄다. 징역형이 나올 수 있는 중범죄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아이들의 반응은 기가 막히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심각하게 듣는 아이들도 있지만,
뒤에 앉은 몇몇 남학생들은 자기들끼리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낄낄거립니다.
"야, 니가 만든 거 걸리면 큰일 난다 ㅋㅋㅋ"
"에이, 저거 다 아는 건데 뭘. 안 걸려."
아이들에게 딥페이크는 범죄가 아니라,
그저 재밌는 놀이이자 자극적인 콘텐츠일 뿐입니다.
유튜브만 틀면 유명 연예인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합성한 영상이 쏟아지고,
대선 토론 때면 대통령 후보들마저 딥페이크 기술로 유세를 합니다.
아이들의 시선에선 대통령도 하는 기술을
내가 친구 얼굴로 좀 해보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식입니다.
접근성은 또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복잡한 코딩 기술이나 고성능 컴퓨터?
필요 없습니다.
텔레그램 방에 들어가서 단돈 몇천 원에서
만 원만 송금하면, 5분 만에 친구의 얼굴이 합성된 영상이 뚝딱 만들어져서 배달됩니다.
심지어 무료 어플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이들에게 타인의 인격을 살해하는 이 과정은,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를 사 먹는 것만큼이나 쉽고 가볍습니다.
스마트폰 액정이라는 얇은 막 뒤에 숨어, 자신들이 던진 돌에 누군가 맞아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외면합니다.
3. 부모님의 착각, 그리고 골든타임
가해 학생을 특정해서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면, 첫 반응은 99% 똑같습니다.
"경찰관님, 우리 애는 그런 거 할 줄 몰라요. 컴맹이에요."
"그냥 친구가 보내준 거 호기심에 한 번
본 거라던데요? 오해하신 거 아니에요?"
부모님은 내 아이가 성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부정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포렌식 결과를 들이밀고,
아이가 직접 용돈을 모아 '지인 능욕방' 제작자에게 송금한 내역을 보여주면
그제야 부모님은 할 말을 잃고 "죄송합니다"라며 무너져 내립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당황하고 흥분한 나머지 부모님들은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아이의 스마트폰을 뺏어서 사진을 지우거나,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다그칩니다.
"너 그거 누구한테 받았어? 당장 갤러리에서 지워! 방 나가기 눌러!"
하지만 삭제는 답이 아닙니다.
디지털 세상에 지우개는 없습니다.
이미 유포된 영상은 서버 어딘가에 박제되어 있고,
경찰 조사가 시작되면 아이의 폰뿐만 아니라 영상을 공유한 친구들의 폰,
해당 서버의 로그 기록까지 모두 수사 대상이 됩니다.
부모님이 급한 마음에 지워버린 데이터는 포렌식을 통해 복구될 가능성이 높고,
부모님들께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N번방 사건 이후 법이 강화되었습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은 만드는 것(제작)뿐만 아니라,
소지하거나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명백한 범죄이며 처벌 대상입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는
변명은 더 이상 법정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만약 지금, 아이의 폰에서 딥페이크 영상이나 제작 정황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절대 혼내면서 삭제하지 마세요.
부모가 직접 증거를 삭제하면 나중에 아이가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 소명할 기회를 날리는 것이기도 하고,
반대로 혐의가 인정될 때는 증거 인멸로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둘째, 즉시 화면을 캡처하고 휴대폰을 확보하세요.
대화 내용, 송금 내역, 영상이 저장된 경로 등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합니다.
셋째, 아이의 손을 잡고 경찰서로 오세요.
"우리 애 인생 망치면 어떡하냐"며 집 안에서 숨기려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됩니다.
가장 빠른 해결책은 자수와 상담입니다.
경찰은 아이를 감옥에 보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법적으로 정확히 인지시켜 주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게 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인생의 멈춤 버튼을 눌러주는 곳입니다.
범죄의 늪에 빠진 아이를 건져낼 수 있는 골든타임,
바로 부모님이 사실을 인지한 그 순간입니다.
오늘 밤, 아이가 잠든 후 조용히 방문을 열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