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로 인해 방황했던 마음들(전 연인)
비밀; 사랑할 때 우리가 감추고 있는 속마음
그녀로 인해
방황했던 마음들(전 연인)
오래된 시선에는 언제나 파도가 인다.
지난밤, 원고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질 때」의 교정을 마치면서, 원고는 이제 나의 품을 온전히 떠나게 되었다. 흰 여백이 작은 글씨로 촘촘해지는 동안, 문장들은 가족보다 다정했고, 연인보다 섬세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소중한 친구를 잃은 것만 같은 허전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니면 실연당한 사람처럼 빈 공간을 메꾸기 위해 방안에서 혼자가 될 것이다. 애써 그 허전함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충분히 외로울 거다. 그러는 편이 떠나간 것들에 대한 마땅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오면 새로운 인연을 찾아 나서겠지.
세상을 인식하는 나의 시선에는 ‘합’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오묘한 단어를 좋아한다. 합은 여럿이 한데 모인다는 의미를 가졌으나, 사전을 들여다보는 때 여럿이 한데 모여야만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로 자주 착시한다.
확실히 둘은 하나일 때 보다 강하다. 오래 전, 그 반대의 믿음을 가졌던 적, 믿음의 기간도 아주 오래였던 적, 나는 혼자의 힘을 믿고 모든 관계로부터 섬이 되었다. 합을 이루려는 시도에 질색했으며, 정교한 합을 답답해했다. 그러다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합을 믿게 되었다. 그 후로 텅 빈 공간을 보면 불안해하고, 무엇으로든, 어떻게든 채우려는 사람이 되었다.
놀이도 합 맞추는 놀이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레고. 브릭 밑면의 텅 빈 공간에 알맞은 브릭을 찾아 끼워 넣는 때 적막을 울리는 ‘탁’소리가 그렇게도 좋다. 한 번 합을 이루면 쉽게 빠지지 않는 레고의 만유인력을 흠모한다. 합을 이룬 것들끼리 만나 다시 합을 이루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수 천 조각의 레고 브릭은 하나의 합을 이루게 되고, 웅장한 합은 예술이 된다. 촘촘한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 같지 않은가. 그래서 누군가를 잃고 마음에 빈 공간이 생기는 때, 지금처럼 책을 탈고하고 허전함을 느끼는 때,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레고를 주문한다.
사랑은 결핍된 마음과 결핍된 마음이 합을 이루려는 시도이다. 안타깝게도, 마음의 합은 중국산 레고브릭과 같아서, 합이 거대해질수록 그 하중으로 인해 촘촘함의 정도가 떨어지고, 자주 무너진다. 그리하여 빈 공간이 생기는 때, 그 공간을 메꾸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도 자석의 힘이 그러하듯 거스를 수 없는 만유인력이다. 그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좋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 위안을 받는 순간, 그녀를 우주의 이치로 해석될 수 없는 완벽한 존재로 착시한다. 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감추거나 떠나거나.
나는 여태 감추는 선택을 해왔다. 너무도 완전하게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 뒤돌아서 의심했고, 아찔한 노을조차 눈속임으로 빚어진 착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밤, 내가 사는 세상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프리즘에 투영시켜 본질을 알고 싶었다.
세상을 착시한다. 그래서 세상은 아름답다.
돈과 명예를 쫒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지는, 그간 숱한 영화와 소설을 통해 간접경험 해왔다. 그럼에도 화창한 낮 시간,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돈과 명예를 쫒기 위해 블라인드 뒤에 숨어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세상을 착시한다.
우리는 사랑도 그렇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