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남겨야 하는 것
나는 <데미안>을 중학생 때 3번이나 읽었는데,
얼마 전 내무반에서 나눈 <데미안>에 대한 대화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아브락사스! 싱클레어!! 데미안!!! 새와 알!!!!"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 중 누구도 키워드와 줄거리 이상의 대화를 할 수 없었거나, 하지 않았으니까.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나도 이 책을 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왜 <데미안>을 읽었을까.
아니, 정말 읽은 걸까?
사실 교양이라는 것은 외제차, 명품가방을 소비하는 행위와 맥락이 비슷하다.
우리는 좋은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지 않나.
SNS를 봐도, 사람들은 주로 자신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 있는 것들을 포스팅한다.
이런 현상을 조나 버거는 '소셜 화폐'현상으로 설명한다.
교양은 어쩌면, 사회적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구입하는 수단인 것이다.
소셜 화폐(Social Currency)
: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높여주는 이미지, 물건 등을 공유/소비하는 행위.
예) SNS에 유용한 정보, 멋있는 여행사진 등을 올리거나, 좋은 브랜드의 물건을 사용하는 것 등
책 <컨테이져스(Contagious)>에서 인용
그래서 어느새 우리는 고전 목록을 답습하고
유명한 책만을 찾아 읽고 있지는 않나.
당신에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인가
'읽으면 멋있을 책'인가.
그런 독서는 자신에게 '아는 척'말고 어떤 것을 남겼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책을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나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데 나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열심히 살아도 삶이 나아지지 않으면 나능 ㅙ
질문 : 작년에 읽은 책 목록을 한 권도 빠짐없이 적을 수 있나요?
목록을 다 쓰고 나서,
읽었지만 잊어버리고 빠뜨린 책이 있다면
(그리고 내용이 기억이 안 난다면)
그 책을 정말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 책을 아예 읽어보지 않은 사람을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읽었으면 독서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독서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독서와 비독서는 여러 이유로 구분하기 힘들다.
기억력의 한계
한 권의 책에는 사람 수만큼의 해석이 따른다.
독서 방법의 차이 : 정독, 발췌독, 훑어보기, 요약만 보는 경우.
책의 내용이나 상황, 둘 중 하나만 아는 경우
그러니 책을 꼭 정독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독서법이 있다.
책을 정색하고 읽을 필요 없다. 그래봤자,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빨리 잊힌다.
중요한 건 책이 아니라 책을 관통한 당신의 이야기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사실보다는
왜 읽는지가 중요하다.
책이 이해시켜준 세상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더 새롭게 진전시키고 싶다면
이제 책을 넘어서야 한다.
즉 책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책혐시대의 책 읽기, 278p>
결국 책이라는 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하는 한 가지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읽지 않는 것도 괜찮다.)
우리는 책을 관통하여 세상에 나와 스스로 창작가가 되어야 한다.
독후감이나 감상문 보다 '나의 이야기'를 쓰고 외쳐야 한다.
그것을 글로 쓰고, 이야기로 만들어서 사람들과 나눠보자.
일기나 에세이를 써도 좋고, 독서 모임에 나가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눌 수도 있다.
표현하고 공유할 때 비로소 생각이 정리되고, 철학으로 남는다.
책의 의미가 '교양의 축적'이나 '정독의 의무'이기 전에
당신 삶 속의 공부, 성장, 위로, 감동, 재미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독가에게 가서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까요?'라고 물을 필요가 없다.
당신이 슬프고 힘든 것, 좋아하는 것, 궁금한 것, 탐구하고 싶은 것. 그것이 당신의 추천 도서 주제 목록이다.
가장 현명한 큐레이터는 누구도 아닌 당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끝.
참고 서적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책혐시대의 책읽기>, 김욱